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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76권, 성종 24년 4월 27일 신유 5번째기사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성절사 행차에 금을 가져가는 일을 의논하다

정언(正言) 민수겸(閔壽謙)이 와서 아뢰기를,

"이번 성절사(聖節使)의 행차에 금박장(金箔匠)으로 하여금 금(金)을 가지고 따라 가게 한다고 하는데, 신(臣) 등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우리 나라에서는 전조(前朝)377) 부터 금은(金銀)을 면제(免除)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지금 만약 가지고 가서 중국 사람이 보게 되면, 반드시 금은이 본국(本國)에서 생산된다고 생각할 것이니, 청컨대 정지하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傳敎)하기를,

"비밀히 취련(吹鍊)하는 방법을 익히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하였다. 민수겸이 말하기를,

"금은을 비록 우리 나라 장인으로 하여금 취련케 한다 하더라도 조종조(祖宗朝)부터 지금까지 국용(國用)에 모자라지 아니했는데, 어찌 반드시 중국에서 익히게 하겠습니까? 국가(國家)의 금령(禁令)이 비록 엄(嚴)하다 하더라도 오히려 금은을 다투어 서로 매매(賣買)하는 자가 있는데, 지금 가지고 가서 전습(傳習)하도록 허락한다면, 형세가 비밀히 하기 어려울 것이니, 사람들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비록 대답하기를, ‘연해(沿海)에 사는 백성들이 왜(倭)에게서 산 것이다.’라고 한다 하더라도 왜(倭)와 서로 통한다는 것 또한 중국 조정에 들리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니, 승정원(承政院)에 전교(傳敎)하기를,

"해사(該司)에서 전습한다는 뜻으로 계청(啓請)한 것이니, 간원(諫院)에서 말한 것과 함께 영돈녕(領敦寧) 이상 및 정부(政府)에 의논하도록 하라."

하였다. 윤필상(尹弼商)이 의논하기를,

"우리 나라 조종조에서 여러 번 금은의 제공을 면제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다가 왕자군(王子君)으로 하여금 거듭 주청(奏請)케 한 후에야 허락받았습니다. 지금 비록 은밀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 장인이 반드시 삼갈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하겠습니까? 하물며 《대명일통지(大明一統誌)》에 본국에서 생산되는 금은에 대한 것이 첫머리에 있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다시 조공(朝貢)을 책임지우면 장차 무슨 말로 대답하겠습니까? 우리 나라 장인의 연금술(鍊金術)도 스스로 좋으니, 중국에서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 이극배(李克培)·윤호(尹壕)·이철견(李鐵堅)·정문형(鄭文炯)은 의논하기를,

"사간원(司諫院)에서 아뢴 바가 옳은 듯합니다.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소삭(銷鑠)378) 하는 것을 아끼지 않고 여러 차례 취련(吹鍊)하면, 보통의 금(金)이 적금(赤金)379) 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노사신(盧思愼)·허종(許琮)·이극균(李克均)·유지(柳輊)는 의논하기를,

"금(金)을 가지고 갈 필요는 없고, 단지 금박장(金箔匠)으로 하여금 인정(人情)380) 을 많이 가지고 가서 취련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상의원 제조(尙衣院提調)가 연금술(鍊金術)을 중국[中朝]에서 배우게 할 것을 계청하였는데,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 나라에서 금(金)을 쓰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만약 쓴다면 반드시 매우 정련(情鍊)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에, 윤허(允許)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세종조(世宗朝) 때 함녕군(咸寧君)이 금은의 조공(朝貢)을 면제해 줄 것을 청하여 고생[艱難]하였고, 이는 급한 일이 아니니, 정지하도록 하라."

하고, 인하여 정원(政院)에 전교(傳敎)하기를,

"왜인(倭人)이 금을 잘 사용하니, 후하게 인정(人情)을 주고 취련(吹鍊)하는 방법을 익히게 함이 옳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276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305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정론-간쟁(諫諍) / 광업-제련(製鍊)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註 377]
    전조(前朝) : 고려(高麗).
  • [註 378]
    소삭(銷鑠) : 쇠붙이를 녹임.
  • [註 379]
    적금(赤金) : 붉은 빛을 띤 황금.
  • [註 380]
    인정(人情) : 선물(膳物).

○正言閔壽謙來啓曰: "今聖節使之行, 令金箔匠賫金隨去, 臣等未知其由, 但我國自前朝請免金銀, 今若持往, 爲中朝人所見, 則必以爲金銀産於本國, 請停之。" 傳曰: "令秘習其吹鍊之方耳。" 壽謙曰: "金銀雖使我國匠人吹鍊, 自祖宗朝至於今, 國用不乏, 何必習於中朝乎? 國家禁令雖嚴, 猶有以金銀爭相買賣者, 今許賫去傳習, 則勢難秘密, 人豈不知? 雖使答之曰: ‘沿海居民, 覓之於。’ 與相通, 亦非可聞於中朝也。" 傳于承政院曰: "以該司啓請傳習之意與諫院之辭, 議于領敦寧以上及政府。" 尹弼商議: "我國, 祖宗朝屢請免金銀貢而不得, 使王子君更奏而後乃准。 今雖使秘密, 安保其匠人必謹也? 況《大明一統誌》, 本國所産金銀居首, 若更責貢, 則將何辭以對? 我國匠人鍊金自好, 不須學於中朝。" 李克培尹壕李鐵堅鄭文炯議: "司諫院所啓, 大槪似是, 臣意妄謂, 不愛其銷鑠, 累次吹鍊, 則常金可至於赤金。" 盧思愼許琮李克均柳輊議: "不須持金, 而只令金箔匠, 多賫人情而去, 學其吹鍊之方何如?" 傳曰: "尙衣院提調啓請, 學鍊金之術於中朝, 予以爲我國不用金則已矣, 若用之則必欲極其精鍊, 故允之耳。 然世宗咸寧君艱難請免金銀貢, 此非急務, 其停之。" 仍傳于政院曰: "倭人善用金, 厚與人情, 令習其吹鍊之方可也。"


  • 【태백산사고본】 43책 276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305면
  • 【분류】
    출판-서책(書冊) / 정론-간쟁(諫諍) / 광업-제련(製鍊) / 외교-명(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