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안도 관찰사 성준을 인견하고 공을 치하하니 성준이 해자 설치와 진의 조정에 대해 건의하다
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 성준(成俊)이 부름을 받고 오자,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서 인견(引見)하고 말하기를,
"북정(北征)808) 때에 경(卿)이 심히 근고(勤苦)하였다."
하고는, 인하여 민간의 폐막(弊瘼)을 물으니, 성준이 말하기를,
"무슨 폐막이 있겠습니까만, 단지 허종(許琮)이 관찰사(觀察使)가 되었을 때에 도내(道內) 여러 고을에서 부모에게 불효하고 형제에게 불화(不和)하며 인리(隣里)에게 불목(不睦)한 자는 모두 사변(徙邊)하게 하였는데, 간혹 부모의 노비(奴婢)를 합집(合執)809) 한 것과 세 번 득신(得伸)810) 한 뒤에도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도 불화(不和)로 논하니, 이로 인하여 민심이 소란합니다. 청컨대 이를 정지하소서."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성준이 말하기를,
"갑산(甲山)·삼수(三水)의 깊숙하고 먼 땅은 방어(防禦)를 일삼지 아니하였는데, 전오륜(全五倫)이 삼수를 지키면서 비로소 방어하는 설비를 하여 성밑에 해자(海子)811) 를 팠지만, 이 성이 협착하여 성 안에 사는 사람이 단지 36호(戶)뿐입니다. 청컨대 물려 쌓아서 1백 호(戶)를 수용하도록 하소서. 또 삼수(三水)는 함흥을 가로막고 있는데, 만약 삼수가 없으면 함흥이 그 적로(賊路)에 해당할 것이니, 청컨대 사변(徙邊)하여 입거(入居)시키소서. 또 삼수(三水)·인창(仁昌) 사이에 청컨대 진(鎭)을 설치하고 만호(萬戶)를 두어 방어를 튼튼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성준이 또 아뢰기를,
"경원(慶源) 이하는 장성(長城)이 없기 때문에 적(賊)이 자주 와서 침범하니, 만약 만세(萬世)의 계책을 삼는다면 장성을 쌓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땅이 진펄[沮洳]이 많고 또 돌이 없어서 쌓기가 어렵습니다. 해자(海子)를 파되 해마다 준설(浚渫)한다면 약한 성(城)보다 나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
하였다. 성준이 또 아뢰기를,
"전번에 경흥(慶興)에 백성이 적으므로 백성을 옮겨서 채우게 하였습니다만, 경흥은 성(城)이 작아서 원주민[元居民]도 수용할 수 없으니, 청컨대 물려서 쌓게 하소서. 북청(北靑)은 절도사(節度使)가 있는 곳이니 급히 쌓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
하였다. 성준이 또 아뢰기를,
"남도 절도사(南道節度使)가 지금 북청에 진(鎭)을 두고 있는데, 혜산(惠山)과 거리가 4백 50여 리(里)이고 또 길이 험하니, 위급[緩急]한 때에 어떻게 달려가겠습니까? 청컨대 북도(北道)의 예(例)에 의하여 겨울과 봄에는 갑산(甲山)에 있고 여름과 가을에는 혜산에 있게 하소서. 또 부령진(富寧鎭)은 산 위에 있어서 경작할 만한 땅이 없음을 근심하여 홍응(洪應)이 체찰사(體察使)가 되자, 그 민원(民願)에 따라 산밑으로 옮기기를 청하였는데, 신이 생각하건대 만약 산밑에 진(鎭)을 설치하였다가 적(賊)이 산에 올라가서 쏘면 무엇으로 능히 대적하겠습니까? 청컨대 옮기지 말거나 혹은 옥련보(玉連堡) 등지에 설치하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271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241면
- 【분류】호구-이동(移動) / 왕실-국왕(國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신분-천인(賤人)
- [註 808]북정(北征) : 1491년(성종22년)에 있었던 야인 정벌(野人征伐). 당시 성준(成俊)이 부원수(副元帥)로서 도원수(都元帥) 허종(許琮)과 함께 야인(野人)을 정벌하고 돌아왔음.
- [註 809]
합집(合執) :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가져야 할 노비(奴婢)와 전토(田土)를 한 사람이 모조리 강제로 차지하고 있는 것을 말함.- [註 810]
득신(得伸) : 뜻을 펴게 됨.- [註 811]
해자(海子) : 성(城) 주위에 빙 둘러가면서 파서 물을 채운 것을 말함. 적(敵)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임.○癸未/永安道觀察使成俊承召而來, 御宣政殿, 引見曰: "北征時, 卿甚勤苦。" 仍問民間弊瘼, 俊曰: "有何弊瘼, 但許琮爲觀察使時, 道內諸邑有父母不孝、兄弟不和、隣里不睦者, 盡令徙邊, 其或父母奴婢合執者及三度得伸後猶訴冤者, 亦論以不和, 因此民心騷擾, 請停之。" 上曰: "可。" 俊曰: "甲山、三水深遠之地, 不事防禦, 全五倫守三水, 始爲防禦之具, 城下鑿海子, 但此城狹窄, 城中居民只三十六戶。 請退築, 使容百戶。 且三水爲咸興之蔽, 若無三水, 則咸興當其賊路, 請徙邊入居。 且三水、仁昌之間, 請設鎭置萬戶, 以固防禦。" 上曰: "可。" 俊又啓曰: "慶源以下無長城, 故賊屢來犯之, 若爲萬世計, 不可不築長城。 但地多沮洳, 又無石築之爲難, 如鑿海子, 逐年開濬, 則勝於殘城矣。" 上曰: "然。" 俊又啓曰: "頃以慶興民少, 令徙民實之, 但慶興城少, 元居民亦不能容, 請退築之。 北靑乃節度使所在, 不須急築也。" 上曰: "然。" 俊又啓曰: "南道節度使, 今留鎭北靑, 距惠山四百五十餘里, 又道里艱險緩急, 何以馳赴? 請依北道例, 冬春在甲山, 夏秋在惠山, 且富寧鎭在山上, 民以無可耕之地爲患, 洪應爲體察使, 從其民願請移於山下, 臣意若設鎭山下, 則賊登山射之, 何以能敵? 請勿移, 或設於玉連堡等處。" 上曰: "可。"
- 【태백산사고본】 42책 271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241면
- 【분류】호구-이동(移動) / 왕실-국왕(國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신분-천인(賤人)
- [註 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