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 등지의 축성에 대해 논하다
전교하기를,
"일찍이 의주(義州) 등지에 성을 쌓기를 명하였는데, 그 절목(節目)을 상고하여 아뢰라."
하니, 좌승지(左承旨) 권경희(權景禧)와 좌부승지(左副承旨) 신수근(愼守勤)이 대답하기를,
"신이 일찍이 축성 종사관(築城從事官)이 되었기 때문에 이 일을 갖추어 알고 있습니다. 의주에서 인산(麟山)까지 성을 쌓아 관문[關]을 만드는 일은 이미 조치한 바인데, 마침 벽단(碧團)의 축성(築城)으로 인하여 잠시 정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은 크고 힘은 미약하여 5, 6년을 기다려야 일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의주는 경계가 중국과 닿아 있고 또 야인(野人)의 근심이 있는데, 읍성(邑城)이 낮고 약하니, 먼저 주성(州城)을 쌓아야 마땅합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과연 아뢴 바와 같다면 지금 비록 축성사(築城使)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따로 가선(嘉善)599) 재상(宰相)을 보내어 왕래하면서 축성을 감독하게 하려고 하니, 먼저 의주에서부터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이를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의정부(議政府)에 의논하게 하라."
하니, 심회(沈澮)는 의논하기를,
"이제 듣건대 중국에서 동팔참(東八站)600) 사이에 큰 진(鎭)을 벌여 둔다고 하니, 우리 나라 경계와 더욱 가까와서 큰 폐단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청컨대 일을 익숙하게 하는 재상을 골라서 의주 강변(江邊)의 성을 쌓게 하고 또 읍성(邑城)을 고쳐 쌓게 할 것입니다."
하고, 윤필상(尹弼商)은 의논하기를,
"의주 장성(長城)과 읍성을 수축(修築)하는 일의 선후(先後)·완급(緩急)과 별도로 사람을 보내는 일의 적당 여부를 축성사(築城使)로 하여금 상의하여 아뢰게 한 뒤에 다시 의논할 것입니다."
하였다. 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성을 쌓는 것은 큰 일입니다. 그러므로 축성사(築城使)와 부사(副使)가 있고, 또 종사관(從事官)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역사를 독려할 일이 있으면 큰 것은 축성사(築城使)가, 작은 것은 부사(副使)가, 혹은 종사관이 가는 것이 가한데, 어찌 따로 재상을 보내어 그 임무를 나눌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고, 허종(許琮)은 의논하기를,
"이미 축성 도체찰사(築城都體察使)와 부사가 있으니 따로 재상을 보낼 수 없습니다. 또 의주 읍성은 고쳐 쌓지 않을 수 없지만, 만약 장성(長城)을 쌓는다면 읍성은 급하게 고쳐 쌓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 정문형(鄭文炯)·홍귀달(洪貴達)은 의논하기를,
"이미 축성사(築城使)와 부사(副使)가 있고 또 종사관(從事官)이 있으니, 별도로 다른 재상을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축성사와 부사로 하여금 장성(長城)과 읍성(邑城)을 쌓는 일의 완급(緩急)을 잘 헤아려서 계문(啓聞)하게 한 뒤에 다시 의논하여 시행할 것입니다."
하자, 전교하기를,
"나는 광릉(廣陵)601) 은 나이가 많고, 좌이상(左二相)602) 도 갈 수 없기 때문에 나이가 젊은 재상으로 하여금 가서 살피게 하려고 하였는데, 이제 여러 의논을 보니 모두 불가하다고 하고, 또 흉년이 들어서 역사를 일으킬 수 없으니, 우선 이를 정지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269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225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註 599]가선(嘉善) : 가선 대부.
- [註 600]
동팔참(東八站) : 압록강(鴨綠江)에서 중국의 산해관(山海關) 사이에 있던 여덟 군데의 역참(驛站). 우리 나라의 사신이 중국에 왕래하는데 중요한 요로(要路)였음.- [註 601]
광릉(廣陵) : 이극배(李克培).- [註 602]
좌이상(左二相) : 좌찬성(左贊成).○傳曰: "嘗命城義州等處, 其考節目以啓。" 左承旨權景禧、左副承旨愼守勤對曰: "臣嘗爲築城從事官, 備知此事, 自義州至麟山, 築城以爲關, 業已指置, 屬因碧團築城, 姑停之。 然事鉅力微, 須五、六年乃可訖功。 但義州境連上國, 又有野人之虞而邑城低微, 當先築州城。" 傳曰: "果如所啓, 今雖有築城, 使予欲別遣嘉善宰相, 往來監築, 先自義州始役何如? 其議于領敦寧以上及政府。" 沈澮議: "今聞中朝東八站之間, 列置巨鎭, 益近我國之境, 恐生巨弊, 請擇諳練宰相, 先築義州江邊城, 又改築邑城。" 尹弼商議: "義州長城、邑城修築, 先後緩急, 與別遣人便否, 令築城使商議以啓, 然後更議。" 盧思愼議: "築城大事也, 故有使、副使, 又有從事官, 若有督役之事, 大則使, 小則副使或從事官可往也, 何必別遣宰相, 以分其任乎?" 許琮議: "旣有築城都體察使及副使, 不可別遣宰相, 且義州邑城不可不改築, 然若築長城, 則邑城不必急急改築。" 鄭文炯、洪貴達議: "旣有築城使、副使, 又有從事官, 不必別遣他宰相, 令使、副使, 長城、邑城造築緩急, 商搉啓聞後, 更議施行。" 傳曰: "予以廣陵年深, 左二相亦不可往也。 欲使年少宰相往審之, 今觀群議, 皆以爲不可, 且凶歉未可擧役, 姑停之。"
- 【태백산사고본】 42책 269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225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註 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