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이가 살곶이 목장·정수의 상소·구치홍 등의 일로 아뢰다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민이(閔頤)가 와서 아뢰기를,
"살곶이[箭串]는 다른 목장(牧場)과 다릅니다. 조종(祖宗)께서 처음 도읍(都邑)을 정하고서 물과 풀의 알맞음을 살피고 넓고 좁음을 참작하여 계획을 세워 창설하였으니, 국가를 위해 염려한 것이 지극히 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듣자니, 안양군(安陽君) 이항(李㤚)에게 떼어 주었다고 하는데, 이는 매우 옳지 못합니다.
사간원(司諫院)에서는 정수(鄭洙)가 정조(政曹)의 낭청(郞廳)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여 여러 달 동안 서경(署經)하지 아니하자 정수가 상소하여 자송(自訟)하니, 이를 사간원에 내려서 변정(辨正)하게 하였는데, 현재 정수는 참판(參判) 김제신(金悌臣)과의 상피(相避)456) 로 인하여 공조 좌랑(工曹佐郞)으로 환차(換差)되었습니다. 그런데, 사간원에서 마침내 변정(辨正)하지 않으니, 이는 매우 옳지 못합니다. 정수가 비록 타조(他曹)에 체임(遞任)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흠이 있고 없음은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치홍(具致洪)은 비록 무과(武科) 출신(出身)이기는 하나 활쏘기와 말타기에 익숙하지 못하고 몸도 노쇠해졌는데, 지금 훈련원 도정(訓鍊院都正)이 되었습니다. 본원(本院)은 시재(試才)하는 곳이고, 도정(都正)은 우림위(羽林衛)의 으뜸 벼슬로서 곧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비교할 수 있으므로, 그 직임이 지극히 중합니다. 그리고 구치홍은 청렴하고 신중한 사람이 못되니, 외람되게 그 직임을 맡게 할 수가 없습니다.
강화 부사(江華府使) 한충순(韓忠順)은 본래 재간이 없는데다가 경력도 얕으니, 큰 고을인 강화를 어떻게 감당해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앞서 옥천 군수(沃川郡守)가 되었을 적에 고(考)457) 가 중(中)으로서 첨정(僉正)으로 옮겼었는데, 1년이 못되어 곧 부사(府使)로 승진하였으니, 인품과 기량이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만(箇滿)이 되어야 승진시켜 서용(敍用)하는 법에도 해가 됩니다.
홍계용(洪繼庸)은 광패스럽고 무식하여 법리(法吏)를 잡아다가 모욕을 주고서도 사령(使令)이 구타를 당했다고 거짓으로 입계(入啓)하였었는데, 의금부(義禁府)에 내리자, 그 사령이 구타를 당하지 아니하였다고 사실대로 말하여 홍계용의 속인 사실이 저절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찮은 일이라 하여 놓아두고 죄를 다스리지 아니하면, 아마도 거짓으로 속이는 일이 풍속을 이룰까 깊이 염려스럽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살곶이 목장을 안양군(安陽君)에게 떼어 준 것은 환수(還收)하도록 하고, 정수(鄭洙)가 상소한 일은 분간(分揀)하여 아뢰도록 하라. 구치홍(具致洪)·한충순(韓忠順)·홍계용(洪繼庸)의 일은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의논하게 하라."
- 【태백산사고본】 41책 266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194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교통-마정(馬政)
○司憲府持平閔頤來啓曰: "箭串, 非他牧場之比, 祖宗定都之初, 相其水草之宜, 酌其廣狹, 規畫創設, 爲國家慮至重。 今聞割與安陽君 㤚, 甚不可也。 司諫院以鄭洙不合政曹郞廳, 累月不署經, 洙上疏自訟, 下司諫院辨正, 今洙以參判金悌臣相避, 換差工曹佐郞, 司諫院遂不辨正, 此甚未便, 洙雖遞爲他曹, 其痕咎有無, 不可不辨。 具致洪雖出身武科, 未慣弓馬, 身且衰耗, 今爲訓鍊院都正, 本院試才之地, 都正羽林之宗, 卽成均館大司成之比, 其任至重, 且致洪非廉謹之人, 不宜濫居此任。 江華府使韓忠順, 本無才幹, 履歷亦淺, 江華大邑, 豈能堪治? 前任沃川郡守, 以考中遷僉正, 未滿一年, 乃陞府使, 非但人器不合, 有妨箇滿陞敍之法。 洪繼庸狂悖無識, 拿辱法吏, 詐以使令被歐入啓, 及下禁府, 使令以不被歐直招, 繼庸欺罔之狀自露, 今謂細事, 釋不治罪, 深恐詐僞成風。" 傳曰: "箭串牧場割與安陽者, 還收之。 鄭洙上疏事, 其畢分揀以啓。 致洪、忠順、繼庸事, 議于領敦寧以上。"
- 【태백산사고본】 41책 266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194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교통-마정(馬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