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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265권, 성종 23년 5월 28일 정유 4번째기사 1492년 명 홍치(弘治) 5년

태평관에 거둥하여 중국 사신을 접대하고 조서를 받아 승문원에 보내다

임금이 태평관(太平館)에 거둥하니, 양사(兩使)가 중문(中門) 밖에까지 영접을 나와서 말하기를,

"공관(公館) 중에서는 우리들이 주인이고 국왕(國王)은 손님이니, 청컨대 국왕께서 먼저 들어가십시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온 것은 중국 조정(朝廷)을 공경하고 대인(大人)을 공경함인데, 어찌 관사(館舍)를 논하겠오?"

하고, 서로 사양하며 들어갔다. 양사(兩使)가 임금 앞에 나아가서 말하기를,

"이렇게 혹심하게 더운 때에 저를 위하여 수고해 주시니, 매우 감사하고 매우 감사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예가 곧 그러한 것인데, 무슨 감사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정사(正使)가 말하기를,

"오늘 현세자(賢世子)를 보니, 국왕의 복경(福慶)이 무궁함을 알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남산(南山)에 대(臺)가 있고 북산(北山)에 내(萊)가 있도다. 즐거울사 저 군자(君子)여 방가(邦家)의 기틀이네.’424) 라고 하였는데, 지금 두 대인(大人)을 보니, 기쁨을 금할 수가 없오."

하니, 정사도 그 시를 외고 또 말하기를,

"현왕(賢王)의 말씀을 제가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성천자(聖天子)께서 재위(在位)하시고 법도(法度)가 매우 준엄(峻嚴)하므로, 조신(朝臣)들이 조심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현왕께서 보내 주신 인정물(人情物)을 하나라도 감히 받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과인(寡人)의 하찮은 성의였는데, 대인께서 모두 거절하시니, 주인이 손을 공경하는 정의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오?"

하니, 정사가 말하기를,

"이미 현왕의 성의(盛意)는 받은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무신년425)동 대인(董大人)이 성지(聖旨)를 선유(宣諭)하며 이르기를, ‘국왕(國王)이 만약 조서(詔書)를 두고 가기를 희망하면 그 말을 들어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두고 가기를 청했었는데, 이번에 두 대인께선 어떻게 조처하겠오?"

하니, 정사가 말하기를,

"조서를 두고 가는 것은 관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 대인이 왔을 적에도 성지(聖旨)는 없었습니다. 동 대인은 현왕께서 두고 가기를 매우 간절하게 청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들어준 것입니다. 동 대인과 저라면 조서를 두고 갈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은 반드시 감히 마음대로 두고 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 왕부(王府)와 각처의 포정사(布政司)나 안남(安南) 등지에도 모두 조서를 두고 가지 않고 복명(復命)하는 날 하나하나 회주(回奏)합니다. 그러나 왕께서 만약 지성으로 청하신다면 두고 가는 것이야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곧 소방(小邦)의 만세(萬世)의 보화(寶貨)인데, 어찌 지성으로 청하지 않겠오?"

하였다. 정사(正使)가 뒤의 대청(大廳)으로 추창해 들어가서 조서(詔書)를 가져다가 안상(案上)에 올려놓으니, 임금이 조서를 받들어 영의정(領議政) 윤필상(尹弼商) 등에게 주어 승문원(承文院)으로 보내게 하였다. 음악(音樂)이 들어오니, 정사가 말하기를,

"성천자(聖天子)께서 동궁(東宮)을 세우고 천하(天下)에 포고(布告)하며 우리를 종1품(從一品)의 직(職)으로 조칙(詔勅)을 반사(頒賜)하게 하였으니, 소원은 제명(帝命)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중국 조정에서는 여악(女樂)을 쓰지 않으니, 청컨대 내보내 주소서."

하므로, 드디어 남악(男樂)을 썼다. 연회(宴會)에 이르러 임금이 술을 돌린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정사가 임금 앞에 나아가서 회배(回杯)하고자 하므로, 임금이 아직 예(禮)가 끝나지 않았다고 사양하니, 정사가 말하기를,

"《시경》에 이르기를, ‘이미 술에 취하였고, 또다시 덕(德)에 배불렀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조용히 마시는 밤술이여,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오늘은 술이 이미 취했고 밤이 또 깊었으니, 비단 우리들만 피곤할 뿐 아니라 현왕(賢王)께서도 피로하실 것이므로, 하직하는 술잔을 돌리고자 합니다."

하므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부사(副使)가 술을 다 돌리고 나니, 정사가 임금 앞에 나아가 말하기를,

"《시경》에 이르기를, ‘석 잔 술을 마시고도 정신을 못차리는데, 더구나 많이 마실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두 사람이 마신 것은 석 잔뿐이 아니니, 파연(罷宴)하기를 청합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그 시는 술을 경계시키기 위함인데, 대인(大人)은 덕(德)으로 주도(酒道)를 지키므로, 진실로 술로 실수함이 없었으니, 청컨대 예가 끝나기를 기다려 주시오."

하고, 임금이 또 말하기를,

"두 대인께서 돌아가야 할 길이 매우 바쁘니, 다시 한 잔을 드리고 싶소."

하니, 정사가 말하기를,

"‘나에게 맛좋은 술이 있어 훌륭한 손님이 잔치하며 즐기네.’라고 하였는데, 우리 두 사람이 이미 취하고 배불리 먹었으며, 이미 현왕의 성의(盛意)를 받았으니, 파연하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마음속으로 좋아하는데, 어찌 말하지 않으리오. 마음속에 새겨 두었는데, 언제나 잊으랴!’ 하였는데 두 대인의 도덕(道德)을 과인(寡人)이 언젠들 잊을 수 있겠오? 청컨대 다시 한 잔을 드리겠오."

하니, 정사가 기뻐하며 그 시를 두 번이나 외고 말하기를,

"현왕(賢王)의 마음은 은연중 고인(古人)과 부합하여 우리 두 사람으로서는 감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넘실거리는 저 양주(楊舟)에 잠겼다 떠올랐다 하네.’ 하였는데, 현왕께서, ‘마음에 새겨 둔다’고 하신 말씀은 마땅히 가슴에 새겨 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관반(館伴) 노재상(盧宰相)은 신중하고 치밀하여 조리에 알맞게 행동하니, 현왕께서 사람을 알아보고 옳게 맡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사별(辭別)하니, 정사가 말하기를,

"훌륭하십니다. 국왕(國王)이시여."

하며, 중문(中門) 밖의 뜰 아래까지 전송하면서 어여(御輿)426) 가 대문(大門) 밖에 있는 것을 보고 큰소리로 말하기를,

"빨리 수레를 대령하라."

하고, 수레에 오르기를 간곡하게 청하였다. 양사(兩使)가 문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정사가 부사에게 넌지시 말하기를,

"훌륭하십니다 국왕이시여, 훌륭하십니다 군왕이시여!"

하였다. 임금이 노공필(盧公弼)에게 말하기를,

"중국 사신의 성품이 아주 조급한데, 경(卿)이 그 사이에서 주선(周旋)하여 한 가지도 그르친 일이 없었으니, 내가 매우 기쁘다."

하고, 이어 옷 한 벌을 하사(下賜)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1책 265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186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역사-고사(故事)

  • [註 424]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남산(南山)에 대(臺)가 있고 북산(北山)에 내(萊)가 있도다. 즐거울사 저 군자(君子)여 방가(邦家)의 기틀이네.’ : 《시경(詩經)》 소아(小雅) 남산유대(南山有臺)편으로, 원래 이 편 자체가 어진이를 얻어서 나라를 다스리고, 태평(太平)한 기틀로 삼는다는 뜻이 있다. 그리고 시 속의 대(臺)와 내(萊)는 향부자(香附子)와 풀로서, 산에 초목이 있어 스스로 덮어 그 크고 높은 것을 이른다는 것이며, 임금이 어진 신하를 얻어서 스스로 존현(尊顯)하게 되는 것을 비유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의 뜻은 중국 천자에게 두 사신과 같은 어진 신하가 있음을 칭송한 것임.
  • [註 425]
    무신년 : 1488 성종 19년.
  • [註 426]
    어여(御輿) : 임금의 수레.

○上幸太平館, 兩使出迎中門外曰: "公館中, 我輩爲主, 國王爲客, 請國王先入。" 上曰: "我來, 敬朝廷, 敬大人也, 何館舍之論?" 相讓而入, 兩使就上前曰: "如此酷熱, 爲我勞動, 多謝多謝。" 上曰: "禮則然, 何謝之有?" 正使曰: "今日見賢世子, 知國王福慶之遠。" 上曰: "《詩》云: ‘南山有臺, 北山有萊, 樂只君子, 邦家之基。’ 今見兩大人, 其喜庸有極乎?" 正使亦誦其詩, 且曰: "賢王之言, 吾何以當之? 聖天子在位, 法度甚峻, 朝臣小心畏愼, 故賢王所遺人情物件, 一不敢受。" 上曰: "寡人區區之誠, 大人皆却之, 在主人敬客之情, 能無愧乎?" 正使曰: "已領賢王盛意。" 上曰: "戊申年大人宣諭聖旨云, 國王若留請詔書, 可從其言, 以此請留, 今兩大人何以處之?" 正使曰: "留詔非例事, 大人之來, 亦無聖旨, 大人見賢王, 請留甚切, 故從之。 如大人與我, 可以留詔, 他人必不敢擅留也。 諸王府、各路布政司、安南等處, 皆不留詔, 復命之日, 一一回奏, 王若至誠請之, 留之何難?" 上曰: "此乃小邦萬世之寶, 何不至誠請之?" 正使趨入後大廳, 捧詔書置于案上, 上奉詔書, 授領議政尹弼商等, 送于承文院。 樂入, 正使云: "聖天子建東宮, 布告天下, 以我等爲從一品之職, 擎頒詔勑, 所願不辱帝命耳。 朝廷不用女樂, 請去之。" 遂用男樂, 及宴上行酒未幾, 正使就上前欲行回杯, 上辭以禮未完, 正使曰: "《詩》云: ‘旣醉以酒, 旣飽以德。’ 又云: ‘厭厭夜飮, 不醉無歸。’ 今日酒旣醉, 夜又深, 非特我輩困倦, 賢王亦勞動, 所以欲行謝杯。" 上從之, 及副使行酒訖, 正使就上前曰: "《詩》云: ‘三爵不識, 矧敢多!’ 又今日我兩人所飮不止三爵, 請罷宴。" 上曰: "此詩乃戒酒也, 大人以德將之, 固無酒失, 請俟禮完。" 上又曰: "兩大人回程甚忙, 欲更進一杯。" 正使曰: "‘我有旨酒, 嘉賓式燕以敖? 我兩人旣醉飽, 已領賢王盛意, 請罷宴。" 上曰: "‘心乎愛矣, 遐不謂矣, 中心藏之, 何日忘之。’ 兩大人道德, 寡人何日忘之? 請更進一盃。" 正使欣然再誦其詩曰: "賢王之心, 暗合古人, 我兩人不敢當。 《詩》云: ‘汎汎楊舟, 載沈載浮。’ 賢王 ‘中心藏之’之言, 當服膺勿失。 館伴宰相, 謹愼詳密, 曲當條理, 知賢王能知人善任。" 上辭別, 正使曰: "賢哉! 國王。" 送至中門外階下, 見御輿在大門外, 厲聲曰促進輿, 固請乘輿。 兩使將入門, 正使微語副使曰: "賢哉! 國王, 賢哉! 國王。" 上謂盧公弼曰: "天使性躁急, 卿能周旋其間, 一無誤事, 予甚嘉悅。" 仍賜衣一領。


  • 【태백산사고본】 41책 265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186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