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극돈·정숭조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극돈(李克墩)을 숭정 대부(崇政大夫) 행 경상도 관찰사(行慶尙道觀察使)로, 정숭조(鄭崇祖)를 자헌 대부(資憲大夫) 호조 판서(戶曹判書)로 삼았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정숭조는 본래 별 재능(才能) 없는 용렬한 사람으로 시정(市井)의 무뢰배(無賴輩)와 이득을 꾀하여 생활을 영위하며 하지 않은 짓이 없었고, 경상 감사(慶尙監司)가 되어서는 관기(官妓)를 몹시 사랑하여 음란(淫亂)한 행동을 자행(恣行)하였다. 〈조정(朝廷)으로〉 들어와 호조 판서가 되니, 모두 그 인망(人望)에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는데 대간(臺諫)이 말하지 않았으므로, 당신의 평론이 이를 기롱하였다." 하고, 또 논평하기를, "이극돈의 사람됨은 상세(詳細)하고 분명하며 정밀(精密)함이 그 형제보다 월등하여 비록 이극배(李克培)라 할지라도 무릇 난처(難處)한 일을 만나면 반드시 이극돈에게 물었다. 아우 이극균(李克均)이 정헌 대부(正憲大夫)가 되고 조카 이세좌(李世佐)가 가정 대부(嘉靖大夫)가 되었어도 이극돈이 오랫동안 가선 대부(嘉善大夫)에 침체(沈滯)되어 있었는데, 성상께서 그 재능을 다 아시고 자헌 대부(資憲大夫)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에 발탁해 제수(除授)하셨고, 이에 이르러 다시 숭정 대부(崇政大夫)로 품계(品階)를 뛰어넘어 제배(除拜)하여 이극균의 윗자리에 나아가도록 하니, 모든 사람의 기대에 만족되어 이를 헐뜯는 말이 없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261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137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