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 황필의 잘못을 대사성에게 고하지 않고 조정의 관원에 고한 생원 진사들을 국문하게 하다
성균관 동지사(成均館同知事) 이극증(李克增)·성현(成俔)과 대사성(大司成) 홍귀달(洪貴達)이 와서 아뢰기를,
"어제 성균관의 모임에서 생원(生員) 진사(進士)들이 고하여 말하기를, ‘생원 황필(黃㻶)이 저자 사람을 불러서 유기(鍮器)를 매매(賣買)하였는데 근량(斤兩)의 경중을 직접 살펴 점검하는 등 그 행동이 장사꾼과 같았으니 학궁(學宮)에서 내치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는데, 황필은 말하기를, ‘어머니가 경상도(慶尙道)에 살고 있는데, 종을 시켜 유기를 사오라고 하자, 어리석은 종이 재(齋) 안으로 가지고 와서 보였기 때문에 제생(諸生)들이 이것을 허물로 삼아, 심지어 학궁에서 내치려고 하고 있어 몹시 민망합니다.’고 하였습니다. 제생들이 또 글로 써가지고 와서 청하였으나 신들이 금지시키지 못하고, 모임에 참석한 모든 재상(宰相)에게 두루 보였는데, 이를 본 사람 주 누가 이를 옳다고 하였겠습니까? 황필이 문예(文藝)에 능하고, 이 일이 전해 11월에 있었으나, 직접 사장(師長)032) 에게 고하지 않고 반드시 이날 고한 것은, 그 의도가 기필코 그 악함을 온 조정에 전파(傳播)하여 내쫓으려는 것입니다. 예조 판서(禮曹判書) 성건(成健)도 사은(謝恩)하려고 대궐에 들어갔다가 인해 아뢰기를, ‘황필의 일은 본래 대단한 잘못이 아닙니다.’고 하였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어버이 때문에 오욕(汚辱)된 이름을 얻는다.’고 하였는데, 황필이 만약 어미의 명으로 마지 못해 하였다면, 무엇이 불가하겠습니까? 유생(儒生)이 사장(師長)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조정(朝廷)의 〈관원이〉 모인 곳에 고하였으니, 죄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것이 큰 과실도 아닌데, 사장의 말을 듣지 않고 굳이 이와 같이 하였으니, 그들을 사헌부(司憲府)에 내려 국문토록 하라."
하였다.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이목(李穆)과 최순(崔珣) 등이 사장의 말을 따르지 않고 독단하여 황필 등을 쫓아내려 한 죄는, 율(律)이 장(杖) 80대에 해당합니다."
하니, 명하여 이를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보이게 하였다. 심회(沈澮)·윤필상(尹弼商)·홍응(洪應)·이극배(李克培)·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아뢴 바에 의하여 시행케 하소서."
하고, 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재(齋) 안은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며, 유생들이란 그 뜻이 본래 광간(狂簡)하기 때문에 이를 보고 추하게 여겼으니, 일은 비록 등위(等位)를 넘었으나 심정은 혹 용서할 만합니다."
하니, 명하여 모두 내버려두도록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황필이 재명(才名)이 있었는데, 성균관 안에서 문예(文藝)를 시험하는 데에 누차 수석에 올랐다. 그리고 일찍이 동배(同輩) 중에서 명망(名望) 있는 자 28인과 더불어 계(契)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참여하지 못한 자가 자못 그를 원망하여 28수계(二十八宿契)라고 지칭(指稱)하기도 하였다. 민양(閔樑)·이윤번(李允蕃) 등은 황필이 유기를 산 일로 인해 크게 모인 자리에서 쫓아내려고 한 것인데, 이극증 등이 황필이 죄가 없다는 이유로 극력 막았다. 유사(儒士)들이 서로 시기(猜忌)하고 모함(謀陷)함이 이와 같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261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135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교육(敎育) / 역사-편사(編史) / 윤리-강상(綱常) / 인물(人物) / 상업-시장(市場)
- [註 032]사장(師長) : 대사성(大司成)의 별칭.
○成均館同知事李克增、成俔、大司成洪貴達來啓曰: "昨日館中之會, 生員、進士等告曰: ‘生員黃㻶招致市人, 買賣鍮器, 斤兩輕重, 親自審檢, 行同商賈, 請黜學。’ 黃㻶曰: "母居慶尙道, 使奴買鍮器, 癡奴持示于齋內, 故諸生以此爲咎, 至欲黜學, 痛悶。’ 諸生等又以書來請, 臣等不能禁, 遍示參會諸宰相, 見之者孰曰可乎? 黃㻶善文藝, 此事在前年十一月, 然不卽告師長, 而必告於是日者, 意必播惡於朝廷而欲黜之也。" 禮曹判書成健亦以謝恩詣闕, 仍啓曰: "黃㻶之事, 固非大惡。 古人云, 以親故受汚辱之名, 㻶若以母命而不獲已爲之, 則何不可乎? 儒生不聽師長之言, 擅告朝廷會處, 不可不罪也。" 傳曰: "此非大失, 不聽師長之言, 乃敢如是, 其下司憲府鞫之。" 司憲府啓: "李穆、崔珣等, 不從師長之言, 擅黜黃㻶等罪, 律該杖八十。" 命示領敦寧以上。 沈澮、尹弼商、洪應、李克培、尹壕議: "依所啓施行。" 盧思愼議: "齋內非買物之所, 儒生等志本狂簡, 見而醜之, 事雖越次, 情或可恕。" 命竝棄之。
【史臣曰: "㻶有才名, 館中試藝屢居最, 嘗與同輩有名望者二十八人作契, 其不與者頗怨之, 指爲二十八宿契。 閔樑、李允蕃等因㻶買器事, 欲於大會黜之, 克增等以㻶無罪力止之。 儒士之相媢忌傾陷如此。"】
- 【태백산사고본】 40책 261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135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교육(敎育) / 역사-편사(編史) / 윤리-강상(綱常) / 인물(人物) / 상업-시장(市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