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 261권, 성종 23년 1월 6일 정축 7번째기사
1492년 명 홍치(弘治) 5년
공조 정랑 조영휘가 색리 박귀손과 짜고 관가의 철물을 재상집의 질 나쁜 철과 바꾸어 관에 납품하다
공조 정랑(工曹正郞) 조영휘(趙永暉)가 동(銅)과 철(鐵)로 기명(器皿)을 주조(鑄造)하는 일을 관장하면서 색리(色吏)006) 박귀손(朴貴孫)과 상통해 짜고 관가의 철물을 재상(宰相)집의 질 나쁜 철과 바꾸어서 주조해 관에 납품하고는 문안(文案)에 기록도 하지 않았는데, 뒤에 주장(鑄匠)007) 김금질동(金金叱同)에게 주조물 납품을 책징(責徵)하자, 김금질동이 등문고(登聞鼓)를 쳐 그 억울함을 호소하므로 이를 유사(攸司)008) 에 내려 변별하게 하였다. 그런데 조영휘와 철을 바꾼 재상이 뇌물을 후히 주고는 애절하게 간청하여, 김금질동으로 하여금 그의 증언을 뒤집게 하여 해면함을 얻었다. 또 사역원(司譯院)의 노비가 장문(狀文)을 내어 형조(刑曹)에 고하기를,
"공조 좌랑(工曹佐郞) 노공유(盧公裕)가 난신(亂臣) 집에서 몰수한 놋쇠[鍮]와 동(銅)의 기명을 장인(匠人) 박모(朴某)에게 주어서 다시 주조하여 나누어 썼으며, 또 서적전 판관(西籍田判官) 소사식(蘇斯軾)에게 보내어 양곡과 바꾸었다."
하였는데, 형조 판서(刑曹判書) 성준(成俊)이 노공유의 부형(父兄)이기 때문에 덮어 두고 묻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261권 4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130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공업-관청수공(官廳手工) / 신분-천인(賤人)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