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관 남세주가 이미 납채를 한 곽인의 딸을 금혼시킨 것이 부당함을 아뢰다
석강(夕講)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검토관(檢討官) 남세주(南世周)가 아뢰기를,
"곽인(郭璘)의 딸에게 일찍이 허혼(許婚)하도록 명하였으므로, 그 집에서 이미 납채(納采)까지 하였는데, 지금 다시 금혼(禁婚)한 것은 매우 옳지 못합니다."
하니, 전교(傳敎)하기를,
"그대들의 말이 옳다. 다만 전일(前日) 차자(箚子)에서 당 태종(唐太宗)이 정씨(鄭氏)를 맞이한 일을 인용(引用)하였으므로, 내가 매우 놀랐었다. 곽인의 딸은 내가 스스로 맞이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이미 납채(納采)한 것을 알았으면 비록 세민(細民)의 집안이라고 하더라도 불가(不可)한 것인데, 더구나 광양군(廣陽君)의 집안이겠는가? 광양군(廣陽君)이 금혼했다는 말을 들었으면 곧 다른 집으로 납채했을 것이니, 지금 비록 다시 허혼(許婚)을 한다고 하더라도 광양군(廣陽君)이 어찌 다시 곽인의 집과 혼인하기를 의논하겠는가? 그렇다면 금혼(禁婚)해도 무방(無妨)할 것이다."
하였다. 남세주가 다시 아뢰기를,
"받든 전교(傳敎)에 이르기를, ‘비록 이미 납채(納采)하였더라도 금혼한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예(禮)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어찌 대신(大臣)이 납채한 것을 알고서 금혼하였겠는가? 나의 마음은 그렇지가 아니하였다. 전교(傳敎)를 받든 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인데, 그대들이 말해 주니 내가 매우 기쁘다."
하고, 승지(承旨) 등에게 말하기를,
"전교를 받든 것이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 나의 마음은 이미 그렇지가 아니하였는데, 내가 하지 아니한 일을 가지고 승정원(承政院)에서 잘못 전하는 것이 옳겠는가? 상전(尙傳)이 잘못 전했으면 책임이 상전에게 있고, 승정원에서 잘못 들었으면 책임이 승정원에 있다. 내가 옛사람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도 항상 분개하였는데, 내가 직접 감히 그렇게 하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258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105면
- 【분류】사법-법제(法制) /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풍속-예속(禮俗)
○御夕講。 講訖, 檢討官南世周啓曰: "郭璘女, 曾命許婚, 其家已納采, 而今復禁婚, 甚未便。" 傳曰: "爾等之言是也, 但前日箚子, 引唐 太宗納鄭氏事, 予甚驚駭。 郭女非予欲自娶也, 若知其已納采, 雖細民之家亦不可, 況廣陽乎? 廣陽聞禁婚, 卽納采他家, 今雖復許婚, 廣陽豈更議婚於郭家乎? 然則禁婚無妨。" 世周更啓曰: "其承傳云: ‘雖已納采, 亦令禁婚。’ 是則有違於禮。" 上曰: "予豈知大臣納采而禁婚乎? 予心則不然, 承傳必誤也, 聞爾等言, 予甚嘉悅。" 謂承旨曰: "其承傳, 何以如是? 予心旣不然矣, 以予所不爲之事, 而政院誤傳, 可乎? 尙傳誤傳則責在尙傳, 政院誤聞則責在政院。 予於古人失擧, 每常慨然, 於予身敢爲之乎?"
- 【태백산사고본】 40책 258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1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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