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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58권, 성종 22년 10월 16일 기미 1번째기사 1491년 명 홍치(弘治) 4년

음사에 쓰이는 신미(神米)를 관에서 몰수하고 음사를 금하게 하다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 김극검(金克儉)이 치계(馳啓)하기를,

"여러 번 내리신 전지(傳旨)로 인하여, 나주(羅州) 금성산(錦城山)의 음사(淫祀)는 항상 금단(禁斷)을 더했습니다. 그러나 그 신미(神米) 60섬을 해마다 귀후서(歸厚署)에 바치는데, 이 때문에 본읍(本邑)의 수령(守令)이 사족(士族) 부녀(婦女)의 출입(出入)은 금하고, 서인(庶人)은 금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조령(條令)에 기재된 도승(度僧)·선승(選僧)·신포(神布)1061) ·신미(神米)의 유(類)는 성조(聖朝)에서 이단(異端)을 물리치고 음사(淫邪)를 금하는 뜻과 크게 서로 모순이 되고 있으니, 신미를 바치는 법을 혁파(革罷)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명하여 대신(大臣)들과 의논하게 하였다. 심회(沈澮)·윤필상(尹弼商)·이극배(李克培)·이철견(李鐵堅)·어세겸(魚世謙)·이숭원(李崇元)·이극돈(李克墩)·여자신(呂自新)·권건(權健)·김우신(金友臣)은 의논하기를,

"음사(淫祀)를 금하는 것은 《대전(大典)》1062) 에 실려 있습니다. 금성(錦城)의 음사(淫祀)에 대해 여러 번 교지(敎旨)를 내려 엄하게 금하였지만, 어리석은 백성들이 사설(邪說)에 현혹되어 법을 어기고 행하니, 이는 수령(守令)이 살펴서 단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찌 다시 신법(新法)을 만들지 않습니까? 그 신미(神米)는 곧 금법(禁法)을 범한 물건이므로, 마땅히 관(官)에서 몰수(沒收)해야 할 것입니다. 청컨대 옛날대로 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258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101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법제(法制)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1061]
    신포(神布) : 신(神)을 섬기는데 사용한 폐백(幣帛) 가운데 나라에서 세금으로 거두던 포목(布木). 처음에는 무당(巫堂)이나 판수[盲人]에게서 거두었으나, 나중에는 일반 민호(民戶)에서 1년에 1포씩 거두어 수령·감사·국가에서 각각 3분하여 그 비용으로 썼음.
  • [註 1062]
    《대전(大典)》 : 《경국대전(經國大典)》.

○己未/全羅道觀察使金克儉馳啓: "累因降旨, 羅州 錦城山淫祀, 常加禁斷, 然其神米六十碩, 歲納歸厚署, 以此本邑守令, 只禁士族婦女, 而不禁庶人。 當今條令所載, 度僧選僧神布神米之類, 與聖朝闢異端禁淫邪之意, 大相矛盾, 請革納神米之法。" 命議于大臣。 沈澮尹弼商李克培李鐵堅魚世謙李崇元李克墩呂自新權健金友臣議: "淫祀之禁, 《大典》所載, 錦城淫祀, 屢降敎旨痛禁, 而愚民惑於邪說, 冒法行之, 是守令不檢察耳, 何不更立新法? 其神米乃犯禁之物, 當沒官。 請仍舊。" 從之。


  • 【태백산사고본】 40책 258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101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법제(法制)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