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 이거가 이적과 이창신의 사람됨을 비판하다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이거(李琚)가 와서 아뢰기를,
"이조(吏曹)에서 이르기를, ‘돈녕 정(敦寧正)이 될만한 사람은 그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였으나, 그 말은 잘못입니다. 조정(朝廷)에 어찌 돈녕정(敦寧正)이 될 만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만약 그 적당한 사람이 없다면 돈녕부(敦寧府)는 치사(治事)하는 관사가 아니니, 잠시 궐(闕)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하필이면 부정(副正)을 승차시켜 제수하겠습니까? 이적(李績)의 얻지 못할까 근심하고 잃을까 근심함은 신 등으로 하여금 배척하여 말하게 한 것입니다. 대저 대간(臺諫)은 동료(同僚)와 더불어 모두 함께 가부(可否)를 의논한 뒤에야 혹은 상언(上言)하기도 하고 혹은 상소(上疏)하기도 하는 것이 예(例)인데, 이적은 정언(正言)이 되어 홀로 소장(疏章)을 지어 소매 속에 넣고 와서 스스로 진달하였으므로, 그 당시의 사론(士論)이 수중 상소(袖中上疏)라고 기롱하였으니, 이것이 곧 얻지 못할까를 근심함입니다. 뒤에 남원 판관(南原判官)으로 체임(遞任)되고, 예조 정랑(禮曹正郞)으로 천전(遷轉)되었는데, 끝내 육조 낭관(六曹郞官)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교대(交代)하지 않고서 왔으니, 이것이 바로 잃을까를 염려함입니다.
또 들으니 전교(傳敎)하여 이미 사문(赦文)을 내렸는데도 또 이계통(李季通)과 신자건(愼自健)을 죄주었으니, 이것은 실신(失信)함입니다. 신(臣) 등의 생각으로는 이계통(李季通)이 스스로 이르기를, ‘쌀 15석(碩)과 면포(緜布) 10여 필(匹)을 형(兄) 이숙통(李叔通)의 종에게 주었다.’고 하였으니, 어찌 스스로 취하지 않았음을 알겠습니까? 신자건은 도사(都事)로서 또한 전최(殿最)985) 에 참여하여서 수령(守令)의 증유(贈遺)를 받았습니다. 대저 장오(贓汚)는 사열(赦列)에 있지 않으니, 비록 장안(贓案)986) 에 기록되었더라도 또한 실신(失信)함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숙감(李淑瑊)과 최관(崔瓘)의 죄도 또한 버려 둘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창신(李昌臣)을 돈녕정(敦寧正)으로 제수하는 것이 미편(未便)하다면, 만약 다른 관사(官司)의 정(正)으로 제수하면 어떠하겠느냐? 이적(李績)의 일은 장차 대신에게 의논하게 하겠다. 이계통과 신자건은 아뢴 바를 따름이 옳으나 이숙감은 이미 파직(罷職)하였으니 다시 무엇을 더하겠는가? 최관(崔瓘)은 비록 증유(贈遺)를 받았더라도 스스로 구하여 청한 것이 아니고, 또 용류(庸流)가 아니니, 만약 사유(赦宥) 전의 일이라 하여 추론(追論)하여 과죄(科罪)하면 대체(大體)에 어떠하겠느냐?"
하였다. 이거(李琚)가 말하기를,
"이창신은 죄가 있는 사람이니, 돈녕부(敦寧府)도 오히려 불가(不可)하거늘, 하물며 다른 관사이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이창신은 재주가 있고 또 한어(漢語)에 능(能)하니, 그 사람을 폐기(廢棄)할 수는 없다. 우리 나라는 편소(褊少)한 나라로써 인재(人才)가 얼마 되질 않으니, 작은 잘못으로 버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또 한 번의 과실(過失)이 있다고 해서 종신토록 버린다면 누가 능히 개과(改過)하여서 스스로 새로워지겠느냐? 내가 보건대 지금 세상에 죄가 있는 자는 비록 혹 의심할 만하여도 반드시 헐뜯은 뒤에야 그만둔다. 이창신의 죄(罪)는 일부러 범한 죄가 아니고 곧 그 처(妻)의 소위(所爲)이다. 내가 보건대 이창신은 홍문관(弘文館)에 전임(前任)하였는데, 비록 그 마음을 알더라도 어찌 다 알 수가 있겠느냐? 장령(掌令)은 이창신과 더불어 홍문관(弘文館)에 동임(同任)하였으니 족히 그 마음을 알 것이다."
하였다. 이거(李琚)가 아뢰기를,
"신이 이창신과 더불어 5, 6년을 같이 근무하였습니다만, 그러나 어찌 그 마음을 알겠습니까? 신은 일찍이 그의 과실(過失)을 보지 못하였으나, 정욕(情欲)을 이기지 못하고 재리(財利)에 빠졌으니, 그 과실이 어느 것이 이보다 클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개정(改正)하소서."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고, 이거에게 참연(參宴)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25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92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정론-간쟁(諫諍)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司憲府掌令李琚來啓曰: "吏曹云: ‘爲敦寧正者無其人。’ 其言非也。 朝廷豈無人可爲敦寧正者乎? 若無其人, 敦寧府非治事之官, 姑闕焉可也。 何必以副正陞授乎? 李績之患得患失, 令臣等斥言之, 大抵臺諫與同僚僉議可否, 然後或言或疏, 例也。 績爲正言, 獨製疏章, 袖來自達, 其時士論, 以袖中上疏譏之, 此卽患得也。 後遞南原判官, 拜禮曹正郞, 俄遷工曹正郞, 恐終失六曹郞官, 不交代而來, 此卽患失也。 且聞傳敎旣降赦文, 而又罪季通、自建, 是失信也。 臣等謂, 李季通自云: ‘以米十五碩、緜布十餘匹, 給兄叔通之奴。’ 安知不自取之? 愼自建, 以都事亦參殿最, 而受守令贈遺。 大抵贓汚不在赦列, 雖錄贓案, 亦非失信也。 李淑瑊、崔瓘之罪, 亦不可棄。" 傳曰: "以昌臣授敦寧正爲未便, 若授他司正則如之何? 李績事, 將議于大臣。 季通、自建, 可依所啓。 淑瑊, 旣罷職, 復何加哉? 崔瓘雖受贈, 非自求請, 又非庸流, 若以赦前事, 追論科罪, 則於大體何如?" 琚曰: "昌臣, 有罪之人, 敦寧府尙不可, 況他司乎?" 傳曰: "昌臣, 有才又能漢語, 其人不可廢棄也。 以我褊小之國, 人才幾許, 不可以小過捨之也。 且一有過失而終身棄之, 則孰能改過而自新乎? 予觀今世有罪者, 雖或可疑, 必毁之而後已, 昌臣之罪, 非故犯, 乃其妻所爲也。 予觀昌臣, 前任弘文館, 雖知其心, 豈能盡知乎? 掌令與昌臣同任弘文館矣, 足以識其心矣。" 琚啓曰: "臣與昌臣, 同任五、六年矣, 然何以識其心乎? 臣未曾見其過失, 然而不勝情欲, 陷於財利, 其過孰大於是? 請改正。" 不聽。 命琚參宴。
- 【태백산사고본】 40책 25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92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정론-간쟁(諫諍)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