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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257권, 성종 22년 9월 4일 정축 3번째기사 1491년 명 홍치(弘治) 4년

서사명이 고산리에서 전투 상황을 아뢰다

서북면 도원수(西北面都元帥) 이극균(李克均)이 갑사(甲士) 서자명(徐自明)을 보내어 적의 머리 39급(級)을 바치니,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고산리(高山里)에서의 접전(接戰)한 절차(節次)를 서자명에게 자세하게 물어서 서계(書啓)하라."

하니, 서자명이 말하기를,

"지난 8월 21일에 분토 연대 갑사(分土煙臺甲士) 하수영(河水永)이 치보(馳報)하기를, ‘적(賊)의 수효를 기억할 수는 없으나, 황천평(黃川平)으로부터 들어왔다.’ 하였고, 갑사(甲士) 박원산(朴元山)도 또한 치고(馳告)하기를, ‘적(賊)이 자피선(者皮船)954) 을 타고 만포(滿浦)로부터 강을 뒤덮고서 내려온다.’ 하였으며, 이튿날 이른 아침에 첨사(僉使) 강지(姜漬)가 신 등에게 이르기를, ‘적(賊)이 이미 만포(滿浦)를 포위했으니, 즉시 가서 구원(救援)하지 않으면 국가에서는 반드시 우리들에게 죄를 줄 것이다. 그러니 마땅히 우리 관군(官軍)을 나누어 절반은 성(城)을 지키고 절반은 가서 구원하자.’고 하기에, 신이 저지시키며 말하기를, ‘우리 진(鎭)의 군졸(軍卒)은 고단하고 약하며 이곳과 만포(滿浦)와의 거리는 70여 리(里)입니다. 장수(將帥)가 정예(精銳)한 군졸을 다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고 이약(羸弱)955) 한 군졸만이 성(城)을 지키다가 적(賊)이 만약 만포(滿浦)에서 불리(不利)하여 우리 성(城)으로 옮겨 와서 포위한다면, 우리 군사는 비록 돌아와 구원하려고 하여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니, 첨사(僉使)와 조방장(助防將) 유호(兪灝)가 신의 계책을 옳게 여기어 군중(軍中)에 경계하기를, ‘너희들은 활을 잘 쏘지 못하니, 만약 적(賊)이 멀리 있는데 대전(大箭)을 쏘면 화살길이 빠르지 못하고 또 맞힐 수도 없어서 도리어 적(賊)의 업신여김만 받게 된다. 너희들은 모두 활집[弓家]을 숨기고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이 하고 있으면 적(賊)이 반드시 성(城) 아래까지 들이닥칠 것이니, 가히 쏘아서 맞히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3인으로 하여금 1인은 방패를 갖고, 1인은 장창(長槍)을 갖고, 1인은 궁시(弓矢)를 갖게 하되, 각각 활집을 지키면서 적변을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진시(辰時) 초각(初刻)에 신 등은 장수(將帥)를 따라서 제승루(制勝樓)에 올라가 서쪽으로 강두(江頭)를 바라보니, 적(賊) 1백여 기(騎)가 강 밖으로부터 말을 달려서 오고 있었는데, 그 뒤를 따르는 무리는 그 수효를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선봉(先鋒) 30여 인(人)이 강변(江邊)에 도착하니, 우리 진(鎭)과의 거리는 2백 보(步) 남짓하였습니다. 혹은 활을 당기고 칼을 뽑았으며, 혹은 몽둥이를 휘두르고 부르짖으며 종횡(縱橫)으로 짓쳐 돌진하기를 도전(挑戰)하는 형상과 같이 하였습니다. 한 적(賊)이 우리 통사(通事)를 두세 차례 부르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오호(惡呼) 오호(惡呼).’ 【오호(惡呼)는 호어(胡語)로 없다고 말함이다.】 하니, 적(賊)이 부르짖기를, ‘너희들을 약탈해 가려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적(賊) 백 수십 명이 자피선(者皮船)을 타고 달전연(達田淵)을 건너 분토(分土) 아래 장사천(長蛇川)을 지나 진(陣)을 쳐 성황당(城隍堂) 고개 위에 둔취(屯聚)하였고, 또 2백여 명이 자피선을 타고 물을 따라 내려와 고도암(高都巖) 상단(上端)에서 물을 건너 아울러 성황당 고개 위에 둔취(屯聚)하여 모이니, 사방의 둘레가 70여 보(步)는 될 만 하였습니다.

처음은 대각(大角)을 불고, 다음에 소각(小角)을 부니, 3인이 수은갑(水銀甲)956)수은 두무(水銀兜䥐)957) 를 착용하고 상모(象毛)를 달고는 큰소리를 지르고 손을 휘두르는데, 우러러보면 제적(諸賊)이 수보(數步)를 물러나고, 굽어보면 제적(諸賊)이 수보(數步)를 진군했습니다. 혹을 칼을 빼어 활을 희롱함이 화살끝을 놓는 형상을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에 60여 명이 선봉(先鋒)이 되고 3백여 명이 후원(後援)이 되어, 학익진(鶴翼陣)을 만들어 방패를 끼고 길게 몰면서 들어와, 동납포(銅納浦)에 이르러 주둔하였는데, 모두가 보군(步軍)이었고 말을 타 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봉(前鋒) 60여 명이 한 사람이 방패를 갖고 아울러 2인을 엄폐하면서 갱참(坑塹)958) 까지 진군하여 화살을 성안으로 쏘아대었는데, 화살 쏘기를 빗발치듯 하여 혹은 화살이 성 안의 가사(家舍)에 미치고, 혹은 화살이 성첩(城堞)에 부딪쳤습니다. 갑옷을 입은 한 사람이 몸을 구부리고 성밑에 이르자 두 사람이 사다리를 들고 둘은 따라서 이르렀기에, 신이 성밑의 적(賊)을 쏘았더니 귀 아래를 뚫었으므로 땅에 넘어져 죽었습니다. 적들이 방패를 끼고 갱참(坑塹)의 깊은 속에 들어가 엎드리자 신이 10여 개의 화살을 쏘았는데, 두 사람은 즉시 죽었으나 화살을 맞고 죽지 않은 자는 다 알 수가 없었습니다. 첨사(僉使)도 또한 적(賊) 1인을 쏘아서 죽였고, 남성(南城)의 활집을 지키는 갑사(甲士) 하석지(河石池)·김계후(金繼厚)·박연수(朴延壽)·김귀손(金貴孫)·김효련(金孝連)·임산(林山)·이안석(李安石)도 다투어 화살을 쏘았습니다. 이에 적(賊)이 포위를 풀었는데, 혹은 방패를 지고서 달아나고 혹은 방패로 가리고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러자 유호(兪灝)강지(姜漬)가 급히 문을 열도록 하고 군졸(軍卒)을 인솔하였는데 혹은 말을 타고 혹은 걸어서 문을 나서서 갱참(坑塹)에 이르러 보았더니, 세 사람이 쓰러져 죽어 있었으므로 곧 머리를 베었습니다.

적(賊)이 물러가 동납포(銅納浦)를 건너니, 유호 등이 60여 명을 거느리고 추격하였는데 우리 군인으로 잇따라 이르른 자가 1백여 인이었고, 이석동(李石同)이 보낸 구원군(救援軍) 10명도 잇따라 이르러 추격하여 강변(江邊)에 도착하였더니, 적(賊)이 방패를 끼고 열진(列陣)하고 맞아 싸우면서 그 무리가 도강(渡江)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적(賊)이 반쯤 건넜을 때 아군(我軍)이 급히 공격하니, 적의 형세가 곤궁하여 무너져, 갑옷과 방패를 버리고 다투어 언덕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아군이 승세를 타고 추격하여 언덕 위를 점거하여 내려보고 활을 쏘니 적(賊)은 언덕 아래에서 올려 보고서 쏘았는데, 혹 군사 가운데에 화살을 맞은 자가 7명이었으나 상(傷)하지 않았습니다. 적(賊)은 혹 알몸으로 헤엄쳐서 가기도 하였는데, 아군(我軍)이 이를 쏘니, 적은 모두 빠져 죽었고, 혹은 4, 5명이 한 척의 배를 타려고 다투었는데, 뱃전이 물에 빠지자, 우리 군사가 수 많은 화살을 일시에 쏘았습니다. 그런데 혹은 배를 맞히기도 하고 혹은 적(賊)을 맞히자 스스로 서로 요동(搖動)하여 온 배가 뒤집혀 가라앉는데 또한 그 수효를 알 수가 없었으며, 6명만이 화살을 맞아 크게 상하였으나 물을 헤엄쳐서 건너갔습니다. 적으로 화살을 맞아 죽은 자를 모두 언덕 위로 끌어올려 참(斬)하여 적(賊)에게 보이었더니 적들의 곡성(哭聲)이 하늘에 사무쳤고, 혹 말을 아래위로 달리며 부르기를, ‘와거(吪呿) 와거(吪呿).’ 【와거(吪呿)는 호어(胡語)인데, 이는 다 죽었다고 이름이다.】 하였습니다.

어떤 적이 석혈(石穴)에 들어가기에 아군(我軍)이 물가를 따라가면서 쏘려고 하였으나 되지가 않아 신이 장목(長木)을 가지고 끝에 긴 새끼줄을 매달고 새끼줄 끝에 목추(木槌)959) 를 달아 갑사(甲士) 나옥(羅玉)으로 하여금 바위 위에 서서 마구 치게 하니, 마침 적의 머리를 쳤습니다. 적 가운데에서 우리 나라의 말을 아는 자가 활을 분질러 물에 던지고 크게 부르짖기를, ‘내가 처음에 금하였더니 너희가 굳이 나에게 청하여 나로 하여금 처자(妻子)를 볼 수 없게 하고 죽게 하였다.’ 하고, 곧 물가에 넘어졌습니다. 김귀손(金貴孫)이 언덕에 내려가 참(斬)하니, 어떤 적이 머리를 숙이고 손을 모아 울면서, ‘우리 아비를 죽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적 가운데에 우리 나라의 말을 아는 자가 또한 부르짖기를, ‘이미 악인(惡人)을 만났으니, 어찌 다시 살기를 구(求)하겠느냐? 너희들을 반드시 죽여 먹을 것이다.’고 하기에, 신이 편전(片箭)으로 강밖의 말을 탄 적(賊)을 쏘았더니, 곧 땅에 떨어졌고, 갑사(甲士) 전철석(田哲石)이 또 편전(片箭)으로 한 사람을 쏘아 맞히니, 또한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적(賊)은 여러 곳에다 불을 살랐는데, 이것은 반드시 쑥으로써 화살의 상처를 찜질함이었습니다. 화살에 상한 6인을 말에 싣고서 갔으나, 반드시 멀지 아니하여 죽었을 것입니다. 신은 대개 헤아려 보건대 머리를 참(斬)한 자, 익사(溺死) 한 자, 화살에 상하여 죽은 자의 총계(摠計)도 거의 80여 인에 이를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257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90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법(兵法) / 어문학-어학(語學)

  • [註 954]
    자피선(者皮船) : 짐승의 털가죽으로 만든 소형의 배. 주로 여진인(女眞人)이 강을 건널 때 사용하였음. 일명 피선(皮船).
  • [註 955]
    이약(羸弱) : 연약함.
  • [註 956]
    수은갑(水銀甲) : 쇠로 만든 갑옷의 하나.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의(五禮儀) 군례 서례(軍禮序禮)에 보면, "쇠로 미늘[札]을 만들고 수은(水銀)을 입힌 다음 가죽끈으로 가지런히 꿰어 짜서 만든 것을 수은갑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음.
  • [註 957]
    수은 두무(水銀兜䥐) : 수은 투구.
  • [註 958]
    갱참(坑塹) : 참호.
  • [註 959]
    목추(木槌) : 나무로 만든 망치.

○西北面都元帥李克均遣甲士徐自明獻賊首三十九級。 傳于承政院曰: "高山里接戰節次, 詳問自明書啓。" 自明曰: "去八月二十一日, 分土煙臺甲士河水永馳報: ‘賊不記數, 自黃川平入來。’ 甲士朴元山亦馳告: ‘賊乘者皮船, 自滿浦蔽江而下。’ 翌日詰朝, 僉使姜漬謂臣等曰: ‘賊已圍滿浦, 不卽往救, 國家必罪我等, 當分我官軍一半守城, 一半往救。’ 臣止之曰: ‘我鎭軍卒單弱, 此距滿浦, 七十餘里, 將帥盡率精銳往救, 而羸弱守城, 賊若不利滿浦, 移圍我城, 我師雖欲還救無及矣。’ 僉使與助防將兪灝以臣計爲然, 戒軍中曰: ‘汝等不善射, 若賊遠在而發大箭, 則矢道不疾, 又不能中, 而反爲賊所侮矣。 汝等皆潛匿弓家如無人焉, 賊必薄城下, 可發無不中矣。’ 令三人一持盾, 一持長槍, 一持弓矢, 各守弓家而待變。 辰初, 臣等隨將帥登制勝樓西望江頭, 賊一百餘騎自江外走馬而來, 其隨後之衆, 不知其數。 先鋒三十餘人到江邊, 距我鎭二百步許, 或引拔劍, 或揮杖叫呼, 縱橫馳突, 若爲挑戰之形, 一賊呼我通事再三。 臣答曰: ‘惡呼惡呼’ 【惡呼, 胡語言無也。】 賊呼曰: ‘欲搶去汝等而來。’ 賊百數十人乘者皮船, 渡達田淵, 過分土長蛇川, 陣屯聚城隍堂岾上。 又二百餘人乘者皮船下流, 自高都巖上端渡涉, 竝聚城隍堂岾上屯聚, 周回可七十餘步。 初吹大角, 次吹小角, 三人着水銀甲、水銀兜鍪懸象毛, 高聲揮手, 仰則諸賊退數步, 俯則諸賊進數步, 或拔劍揮杖, 若爲擊刺之狀; 或抽弄弓, 若爲舍括之形。 於是, 六十餘人爲先鋒, 三百餘人爲後援, 作鶴翼陣, 擁盾長驅而入到銅納浦留駐, 皆步軍, 無一騎馬者。 前鋒六十餘人, 一人持盾, 竝蔽二人而進, 至坑塹射矢城中, 矢發如雨, 或矢及城中家舍, 或矢着城堞。 着甲一人, 鞠身至城底, 二人擧梯二隨至, 臣射城底賊, 洞穿耳下, 倒地而斃。 賊等擁盾入伏坑塹深處, 臣發十餘矢, 二人卽斃, 其中矢不死者, 未悉知之。 僉使亦射賊一人而斃, 南城守弓家甲士河石池金繼厚朴延壽金貴孫金孝連林山李安石爭發矢。 於是, 賊解圍, 或負盾而走, 或蔽盾却步而退。 兪灝姜漬, 急令開門, 率軍卒或騎或步, 出門到坑塹視之, 則三人斃死, 卽斬頭, 賊退渡銅納浦等率六十餘人追逐, 我軍繼至者百餘人。 李石同所送救援軍十人繼至。 追到江邊, 賊擁盾列陣, 逆戰以俟其黨渡江, 賊半渡, 我軍急擊, 賊勢窮而潰, 棄甲盾爭墮岸下, 我軍乘勝逐之, 據岸上俯射之, 賊在岸下仰而射之, 或軍中箭者七人而不傷。 賊或赤身游水而去, 我軍射之, 賊皆斃溺, 或四、五人爭乘一船, 水沒船舷, 我軍百矢俱發, 或中船或中賊, 自相搖動, 全船覆沒, 亦不知其數。 六人中矢大傷, 游水而渡, 賊之中矢死者, 俱曳岸上斬之, 以示賊, 賊衆哭聲徹天, 或走馬上下呼曰: ‘吪呿吪呿。’ 【吪呿, 胡語此云盡死。】 有一賊入石穴, 我軍欲從水滸射之, 不得, 臣以長木端懸木槌, 令甲士羅玉立巖上亂打, 適擊賊頭, 賊能曉我國之語者, 折弓投水大呼曰: ‘我初禁之, 汝固請我, 使我不得見妻子而死矣。’ 卽仆水滸, 金貴孫下岸斬之。 有一賊, 叩頭攅手, 泣曰: ‘勿殺我父’有一賊, 亦解我國之言者, 呼曰: ‘旣逢惡人, 何更求生? 汝等必殺食之。’ 臣以片箭射江外騎馬賊人, 卽墜地。 甲士田哲石, 又以片箭射中一人, 亦墜地, 賊燃火四處, 是必以艾灸矢瘡也。 箭傷六人, 載馬而去, 必不遠而死矣。 臣大槪料之, 斬頭者、溺死者、箭將死者, 摠計幾八十餘人矣。"


  • 【태백산사고본】 40책 257권 1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90면
  •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법(兵法) / 어문학-어학(語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