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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256권, 성종 22년 8월 25일 기사 3번째기사 1491년 명 홍치(弘治) 4년

성절사 박숭질이 건주위의 달자 복화독 등이 변방을 침범할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아뢰다

성절사(聖節使) 박숭질(朴崇質)이 중국에서 돌아오다가 요동(遼東)에 도착하여 치계(馳啓)하기를,

"신(臣)이 이달 15일 아침에 통사(通事) 김맹경(金孟敬)을 보내어 총병관(摠兵官) 나웅(羅雄)에게 나아가 호송(護送)할 군사를 청하니, 나웅(羅雄)이 묻기를, ‘그대 나라의 변경(邊境)에 무슨 일이 있는가?’ 하기에, 김맹경(金孟敬)이 대답하기를, ‘성식(聲息)이 있음을 들은 까닭으로 지금 호송(護送)하는 군사를 청합니다.’ 하였더니, 나웅이 말하기를, ‘건주위(建州衛)의 달자(㺚子) 복화독(卜花禿) 등이 9, 10월이나 11, 12월 사이에 그대 나라의 변경(邊境)을 침범하려고 하나, 그대 나라는 예의(禮義)의 땅이므로 중국(中國)과 더불어 한 집안과 같으니, 총병관(摠兵官)이 군사로 팔참(八站)까지만 호송케 하면 비록 달자(達子)일지라도 무엇이 두렵겠는가?’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야인(野人)의 일은 보첩(報牒)이 이곳에 도착했으니 내일 다시 와서 초(抄)해 가라.’고 하였습니다. 16일 아침에 김맹경이 초해왔는데, 그 글은 이러하였습니다.

‘성지(聖旨)로 임명하여 개원(開原) 등지에 나누어 지키게 한 우참장(右參將) 도지휘사(都指揮使) 최승(崔勝)이 오랑캐의 사정(事情)을 전해 보고한 일은, 개원 비어 도지휘사(開原備禦都指揮使) 배진(裵震)의 정문(呈文)에 의거하고, 홍치(弘治) 4년935) 7월 초10일에 통사(通事)인 백호(白戶) 백홍(白洪)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해서(海西) 갈림위(葛林衛) 여진(女眞)의 지휘(指揮) 답한출(答罕出) 등 5명이 시장(市場)에 도착하여 보고해 말하는 것을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금년 6월 28일에 흑룡강(黑龍江) 야인(野人)의 두아(頭兒)936)주공혁(主孔革)이 2, 3백의 인마(人馬)를 거느리고는 말하기를, 「개원(開原) 지방에 와서 도둑질하려고 하는데, 너희들 해서 산장(海西山場)과 송화강(松花江) 삼채(三寨)의 사람이 개원(開原)에 먼저 알릴까 두렵고, 그 곳의 인마(人馬)가 뒤쫓아와서 빼앗아갈 수 없을까 두려우므로 아매(我每)가 너희 삼채(三寨)의 산장(山場) 사람을 빼앗아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했으며, 또 말하기를, 「7월 초1일에 아매 도독(我每都督) 도리길마우(都里吉馬牛)의 백성 마홀(馬忽) 등 30명의 많은 인마(人馬)가 거짓으로 요하(遼河)에서 물고기를 잡는다고 말하고는 한인(漢人)의 땅에 와서 물건을 훔치고 빼앗아 갔다.」고 했으며, 또 해서(海西) 흠진하위(欽眞河衛)의 여진(女眞) 합답(哈答)이 또한 보고하기를, 「7월 초3일 건주(建州)의 두아 도독(頭兒都督) 복화독(卜花禿)이 우리의 본채(本寨)에 와서 말을 삯을 주고 빌려가면서 그가, 아매(我每)가 먼저 고려(高麗)937)후문(後門)에 가서 두 번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왔으니 지금에 또 와서 말을 삯을 주고 빌려가는 것은 고려(高麗)에 가서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으며, 또 아매(我每)와 더불어, 남조(南朝)938) 의 인마(人馬)가 추간(秋間)에 이르러 너희 해서(海西) 일대(一帶)의 사람을 정벌할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고 하였는데, 아매가 이야기를 듣고는 두려워하여 개원 마법(開原馬法)에 나아와서 보고를 올려서 알게 되었는데, 보고에 의거하여 정문(呈文)을 갖추어 성지로 임명하여 개원(開原) 등지에 나누어 지키게 한 곳에 도착하여 모였습니다. 태감(太監) 남간(藍看)이 보고한 바를 알고 앞서 행속(行屬)을 제거하고 방비를 엄근(嚴謹)하기를 청한 외에 수본(手本)을 사용하여 번거롭게 알리기를 청하였으니, 수본(手本)이 이르게 된 것은, 홍치(弘治) 4년 7월 초10일에 우참장(右參將) 도지휘사(都指揮使) 최승(崔勝)이 「성지로 임명하여 개원(開原) 등지에 나누어 지키게 한 우참장(右慘將) 도지휘사(都指揮使) 최승(崔勝)이 전해 보고하게 된 일은, 개원 비어 도지휘사(開原備禦都支揮使) 배진(裵震)의 정문(呈文)에 의거하고 통사(通事) 백홍(白洪)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해서(海西) 갈림위(葛林衛) 여진(女眞)의 지휘(指揮) 답한출(答罕出)이 보고한 말을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건주(建州)의 두아(頭兒) 복화독(卜花禿)이 친히 와서 우리 해서(海西)의 두아(頭兒) 올가(兀可)의 푸른 말을 고용(雇用)하려고 하니 올가(兀可)가 그에게 주기를 즐겨하지 아니했는데, 하룻밤을 쉬고 난 후 그에게 네가 말을 빌려주었는가를 물으니 얼마에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복화독(卜花禿)이 돌아와 말하기를, 5, 6월에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서 고려(高麗)의 집을 세 번이나 빼앗았는데, 지금 좋은 말을 고용(雇用)하고 인마(人馬)를 많이 수습(收拾)하는 것은 가서 빼앗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려(高麗)의 후문(後門)을 알지 못하고 한인(漢人)의 지방에 가서 어떤 것을 빼앗았는지도 알지 못하므로, 내가 친히 와서 개원마법문(開原馬法們)의 보고를 보고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홍치(弘治) 4년 7월 22일.’"

이라고 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경연(經筵)의 재상(宰相)에게 보이게 하고는, 이내 전교(傳敎)하기를,

"김주성가(金主成可)의 고변(告變)이 서장(書狀)의 말과 서로 합(合)한다. 그러므로 적(賊)이 비록 계획을 세우더라도 지금처럼 물이 불은 때에 변방을 침범하는 자는 좀도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군사를 크게 일으켜 침구(侵寇)할 수가 없을 것은 의심이 없다. 다만 도원수(都元帥)가 돌아올 때 변사(邊事)를 조치(措置)한 후에 서울로 올라오겠다고 말하였으므로, 나 또한 허락했는데, 지금 만약 서울로 올라온다면 적(賊)이 틈을 타서 쳐들어올런지를 알 수가 없다. 절도사(節度使)가 비록 조치(措置)하여 변경을 방비(防備)한다 해도 원수(元帥)가 함께 모의(謀議)하여 미리 준비하여 막는 것보다는 못할 것이니, 즉시 교서(敎書)를 내려서 그대로 변진(邊鎭)에 머물러 있도록 하고 별도로 조신(朝臣)을 보내어 이런 뜻을 개유(開諭)하고, 또 원수(元帥)의 의사(意思)를 듣고 와서 아뢰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이극배(李克培) 등이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진실로 적당합니다."

하자, 전교(傳敎)하기를,

"이거(李琚)가 이문(吏文)을 알고 있는데, 오늘 경연(經筵)의 일 때문에 올 것이니, 그로 하여금 번역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거(李琚)이창신(李昌臣)이 이문(吏文)을 번역하여 들어오니, 전교(傳敎)하기를,

"비록 번역했다고 하나 여전히 알아볼 수 없는 것이 있으니, 2본(本)을 써 오라. 내일 1본(本)을 내가 볼 것이고, 1본(本)은 이창신이 친히 읽어서 아뢸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256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86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군사-군정(軍政)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어문학-어학(語學)

  • [註 935]
    홍치(弘治) 4년 : 1491년 성종 22년. 홍치(弘治)는 명나라 효종의 연호.
  • [註 936]
    두아(頭兒) : 두목(頭目).
  • [註 937]
    고려(高麗) : 조선을 지칭함.
  • [註 938]
    남조(南朝) : 조선을 가리킴.

○聖節使朴崇質回到遼東馳啓曰: "臣本月十五日朝, 遣通事金孟敬詣摠兵官羅雄, 請護送軍, 問: ‘汝國邊境有何事乎?’ 孟敬答云: ‘聞有聲息, 故今請護送軍。’ 曰: ‘建州衛 達子 卜花禿等, 九十月、十一二月間, 欲犯汝國邊境, 汝國禮義之地, 與中國似一家, 摠兵官使兵護送於八站, 則雖達子何畏。’ 又云: ‘野人事報牒到此, 明日更來抄去。’, 十六日朝, 孟敬抄來, 其文曰: ‘欽差分守開原等處右參將都指揮使崔勝爲傳報夷情事, 據開原備禦都指揮使裵震呈, 弘治四年七月初十日, 據通事百戶白洪呈, 審得海西 葛林衛 (女直)〔女眞〕 指揮答罕出等五名, 到市報說: 「今年六月二十八日, 有黑龍江 野人頭兒主孔革, 領著二、三百人馬, 說稱要來開原地方上偸搶, 又怕爾海西山場幷松花江三寨的人, 先去開原報道, 怕他人馬趕殺不得搶時, 我每說搶爾三寨幷山場的人回去。」 又說: 「七月初一日, 我每都督都里吉馬牛的百姓馬忽等三十多人馬, 詐說遼河打魚, 要來漢人地上偸搶行間。」 又有海西 欽眞河衛 (女直)〔女眞〕 哈荅亦報: 「七月初三日, 有建州頭兒都督卜花禿來我本寨雇馬, 他說: 『我每先去高麗 後門搶了兩遭回來了, 如今又來雇馬, 還要去搶高麗。』 又與我每說: 『南朝的人馬, 要到秋間, 征伐爾海西一帶的人。』」 我每聽得這話害怕, 就來開原馬法, 每上報得知道, 據報備呈到來會同。 欽差分守開原等處, 太監藍看得所報, 前請除行屬, 嚴謹隄備外, 合用手本, 煩請知會, 須至手本者。 弘治四年七月初十日, 右參將都指揮使崔勝, 欽差分守開原等處, 右參將都指揮使崔勝爲傳報事, 據開原備禦都指揮使裴震呈, 據通事白洪呈, 審得海西 葛林衛 (女直)〔女眞〕 指揮答罕出報說: 「建州頭兒卜花禿親來租我海西頭兒兀加的靑馬, 有兀加不肯與, 他歇了一夜, 問他: 『爾租馬要做甚麽?』 卜花禿回說: 『五、六月船上過江, 搶了高麗家三遭, 如今租好馬, 多收拾人馬, 還要去搶。』」 不知高麗 後門, 不知漢人地方上去搶有這等事。 我親來見開原馬法們報得知道。 弘治四年七月二十二日。’" 命示經筵宰相, 仍傳曰: "金主成可告變與書狀之言相合, 賊雖作謀, 如今水漲犯邊者, 不過鼠竊狗盜, 不得大擧入寇無疑矣。 但都元帥歸時言, 邊事措置而後上來, 予亦許之。 今若上來, 賊之乘間入寇, 未可知也。 節度使雖措置備邊, 不如元帥共謀備禦之爲善, 卽令下書, 仍留邊鎭, 別遣朝臣, 以諭是意, 又聽元帥之意來啓何如?" 李克培等啓曰: "上敎允當。" 傳曰: "李琚解吏文, 今日因經筵來矣, 使之飜譯。" 李昌臣飜譯以入。 傳曰: "雖飜譯, 尙未解見。 書二本, 明日一本予見之, 一本昌臣親讀以啓。"


  • 【태백산사고본】 39책 256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86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군사-군정(軍政)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어문학-어학(語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