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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50권, 성종 22년 2월 15일 신유 2번째기사 1491년 명 홍치(弘治) 4년

영안북도 절도사 성준이 친대하여 남도의 백성을 이주시켜 줄 것을 요청하다

영안북도 절도사(永安北道節度使) 성준(成俊)친대(親對)189) 하기를 청(請)하자,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 인견(引見)하고 이르기를,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하였다. 성준이 대답하기를,

"조산(造山)·경흥(慶興) 등지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본래 적은데다 요즈음 적변(賊變) 때문에 활을 가진 자가 모두 죽었으므로, 쇠잔하고 피폐하기가 더욱 심합니다. 남도(南道)의 백성을 옮기도록 하여 채우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을 추쇄(推刷)하라고 이미 명령하였으니, 추쇄를 마치고 숫자를 알고 난 뒤에 적당히 헤아려서 들여보내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성준이 말하기를,

"신이 일찍이 본도(本道)의 관찰사(觀察使)가 되어 떠돌아다니는 주민들을 추쇄하였는데, 그 수가 매우 적었으며 거의 모두 고공(雇工)190) 들이었습니다. 지금 아무리 추쇄하여도 틀림없이 가호(家戶)를 세울 만한 자는 없습니다. 남도(南道)에는 부실(富實)한 백성이 많으니 뽑아서 북도(北道)로 옮기게 하고, 천천히 하삼도(下三道)의 민호(民戶)를 뽑아 남도에 옮겨 살도록 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성준이 또 아뢰기를,

"경원(慶源) 이하(以下)는 장성(長城)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요즈음 적(賊)의 무리가 함부로 침입하여 난을 일으킨 것입니다. 비록 돌로 쌓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전차 흙으로 쌓아 해자(海子)191) 를 넓히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정말 경(卿)의 말과 같이 쌓도록 하는 것이 옳다."

하였다. 우부승지(右副承旨) 권경희(權景禧)가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북도(北道)를 보니, 그곳의 토지가 습[沮洳]하여 비록 성(城)을 쌓는다 하더라도 장구(長久)한 계책이 아닌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민력(民力)만 허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였다. 성준이 말하기를,

"요동(遼東)·광녕(廣寧) 등지는 그곳의 토지가 습한데도 모두 긴 담장을 쌓았습니다. 신이 내려가서 다시 살펴서 아뢰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성준이 말하기를,

"적로(賊路)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요즈음 〈그들을〉 맞아 차단시킬 수 없었던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전 절도사(節度使)가 적로(賊路)를 살펴보려고 청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마침 사변(事變)이 없었기에 소요(騷擾)를 이룰까 하여 허락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체탐(體探)하는 것이 가하다. 그리고 저 오랑캐들의 죄를 어찌 내버려두고 신문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성준이 말하기를,

"초서피(貂鼠皮)와 토표피(土豹皮)는 육진(六鎭)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므로, 공물(貢物)이나 부세(賦稅)를 바칠 때에는 반드시 피인(彼人)들에게 바꾸는데, 피인들이 우리 주민들이 사들여야 하는 절실함을 알기 때문에 그 값으로 마소나 철물(鐵物)이 아니면 받지를 않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1, 2년을 기한하여 덜어 준다면 피인들이 사고 파는 이익에 급하여 앞으로는 다른 값으로도 받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반(半)으로 덜어 주는 것이 가하겠다."

하였다. 성준이 또 아뢰기를,

"진장(鎭將)의 임무는 매우 소중하므로 가려 뽑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진장(鎭將)을 어찌 무재(武才)만으로 기용할 수 있겠는가? 평상시에는 백성들을 사랑하며 다스리는 임무를 맡아 주민들로 하여금 그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요즈음에는 거의 모두가 국가에서 의도하는 바를 본받지 아니하고 재산을 늘리기에 힘쓰며, 주민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구휼하지 않아 떠돌아다니며 흩어지게 하였다. 뒤에 다시 이와 같은 자가 있거든 절도사(節度使)가 엄격히 규찰(糾察)을 더하여 즉시 파출(罷黜)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250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69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호구-이동(移動) / 군사-통신(通信) / 군사-관방(關防) / 외교-야(野) / 재정-공물(貢物)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189]
    친대(親對) : 직접 임금을 대하여 정치에 관한 의견을 아룀.
  • [註 190]
    고공(雇工) :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
  • [註 191]
    해자(海子) : 성(城) 주위를 빙 둘러가며 파고 물을 채운 것을 말함.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임.

永安北道節度使成俊, 請親對, 上御宣政殿引見謂曰: "欲何言耶?" 對曰: 造山慶興等處, 居民本少, 近因賊變, 執弓者皆死, 殘敝益甚。 宜徙南道民實之。" 上曰: "流移之民, 已令推刷, 畢推刷知數後, 量宜入送可也。" 曰: "臣嘗爲本道觀察使, 推刷流民, 其數甚少, 而類皆雇工。 今雖推刷, 必無立戶者。 南道則民多富實, 抄徙北道, 徐抄下三道民戶, 徙居南道爲便。" 上曰: "可。" 又啓曰: "慶源以下, 無長城。 以此近日, 賊徒闌入作耗。 雖不得石築, 漸次土築, 廣開海子爲便。" 上曰: "果如卿言, 築之可也。" 右副承旨權景禧啓曰: "臣嘗見北道, 其地沮洳, 雖築城, 似無長久之計。" 上曰: "無奈徒費民力乎?" 曰" "遼東廣寧等處, 其地沮洳, 而皆築長墻。 臣當下去, 更審以啓。" 上曰: "可。" 曰: "賊路不可不知。 近日不能邀截, 恐亦以此也。" 上曰: "前節度使請審賊路, 其時適無事變, 恐致騷擾不許, 今則可體探。 且彼虜之罪, 豈可置而不問乎?" 曰: "貂鼠、土豹皮, 非六鎭所産, 貢賦之時, 必貿於彼人, 彼人知我民求買之切, 其直非牛馬、鐵物不受。 臣意限一二年蠲減, 則彼人急於買賣之利, 將受他直矣。" 上曰: "可半減。" 又啓曰: "鎭將之任至重, 不可不擇。" 上曰: "鎭將豈可徒以武才用之乎? 在平時, 當任其字牧, 使民得遂其生, 近者率皆不體國家之意, 務營財産, 不恤民隱, 以致流散。 後復有如此者, 節度使嚴加糾察, 隨卽黜之。"


  • 【태백산사고본】 38책 250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69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호구-이동(移動) / 군사-통신(通信) / 군사-관방(關防) / 외교-야(野) / 재정-공물(貢物)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