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안북도 절도사 윤말손이 조산보에서의 전공을 알려오자 그에게 하사품을 주다
영안북도 절도사(永安北道節度使) 윤말손(尹末孫)이 치계(馳啓)하기를,
"이번 정월(正月) 12일 밤 오고(五皷)113) 에 올적합(兀狄哈) 1천여 인이 조산보(造山堡)를 에워싸고 3인이 성을 넘어 들어와서 동문(東門)의 자물쇠를 부수고 마구 들어와서 서로 싸워 군사(軍士) 3인을 쏘아죽였는데, 또 만호(萬戶) 및 군사 26명을 쏘아 부상을 입히고는 성중(城中)의 남녀 모두 7명과 말 5필, 소 11두(頭)를 노략(擄掠)하여 갔습니다. 경흥 부사(慶興府使) 나사종(羅嗣宗)이 이 사실을 듣고 군사를 거느리고 강(江)을 넘어 저들의 땅으로 10여 리(里)쯤 들어가서 적(賊)과 더불어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우후(虞候) 최진하(崔進河)가 처음에 도둑 무리가 조산보를 포위했다는 말을 듣고 군사 3대(隊)를 거느리고 조산(造山)으로 달려가다가 길에서 경흥 군관(慶興軍官) 박인손(朴仁孫)을 만나 나사종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강을 건너 추격하여 보니, 나사종이 10여 인과 더불어 과연 죽어 있었고 군관 2인과 군사 10여 인이 화살에 맞았으므로, 최진하가 거느리고 돌아 왔습니다. 처음 조산보에서 서로 싸울 때 저쪽 적의 죽은 자는 2인이었고 적의 각궁(角弓) 둘, 골전(骨箭)114) 66개, 기관(箕冠) 하나, 말 1필을 얻었으며, 죽었거나 사로잡혀간 인축(人畜)은 시간이 급하여 미쳐 추쇄(推刷)하지 못하였습니다. 마땅히 뒤에 수시로 계문(啓聞)하겠습니다."
하니, 즉시 명하여 정광세(鄭光世)를 경차관(敬差官)으로 삼아 〈그 현지에〉 가서 접전(接戰)한 형지(形止)115) 를 살피고 인축의 사로잡혀간 수효를 추쇄(推刷)하라고 하고, 정광세에게 유의(襦衣) 2령(領)과 약낭(藥囊) 1사(事)를 하사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249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685면
- 【분류】외교-야(野)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사급(賜給)
- [註 113]
○永安北道節度使尹末孫馳啓: "今正月十二日夜五鼓, 兀狄哈一千餘人, 圍造山堡, 三人踰城而入, 破東門鎖鑰, 闌入相戰, 射殺軍士三人, 又射萬戶及軍士二十六人致傷, 擄掠城中男婦共七名、馬五匹、牛十一頭而去。 慶興府使羅宗嗣聞之, 領兵越江, 入彼地十餘里, 與賊相戰, 中箭而死。 虞候崔進河, 初聞賊徒圍造山, 領兵三隊, 馳句造山, 道遇慶興軍官朴仁孫, 聞嗣宗死, 越江追逐, 嗣宗與十餘人果死, 而軍官二人軍士十餘人中箭, 進河率還。 其初造山相戰時, 彼賊死者二, 得賊角弓二, 骨箭六十六, 箕冠一, 馬一匹, 其殺擄人畜, 因時急, 未及推刷。 當隨後啓聞。" 卽命鄭光世爲敬差官, 往審接戰形止, 推刷人畜被擄之數, 賜光世襦衣二領、藥囊一事。
- 【태백산사고본】 38책 249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685면
- 【분류】외교-야(野)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