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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42권, 성종 21년 7월 29일 기묘 3번째기사 1490년 명 홍치(弘治) 3년

전 대사성 노자형의 졸기

전(前) 대사성(大司成) 노자형(盧自亨)이 졸(卒)하였다. 노자형은 성품이 경개(耿介)695) 하고 학술(學術)이 순정(醇正)696) 한데, 일찍이 작은 병으로써 벼슬을 사양하고 영진(榮進)을 구하지 아니하였었다. 임금이 그 이름을 듣고 불러서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에 임명하여 후진을 가르치게 하니, 성취한 바가 많았다. 여러 벼슬을 거쳐 대사성(大司成)에 이르렀는데, 다시 나이가 많음으로써 사직하기를 원하여 여러 번 글을 올렸으나,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병이 있음에 미쳐서 한가로운 벼슬을 주어 수양하게 하였다. 그러나 벼슬을 버리고 전리(田里)로 돌아가자 관생(館生)과 진신(搢紳)697) 으로서 일찍이 수업(受業)한 자가 동쪽 교외(郊外)에 나와서 전송하는데, 관개(冠蓋)698) 가 가득하게 넘치니, 그 때의 사람들이 이를 영화롭게 여겼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 졸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242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626면
  • 【분류】
    인물(人物)

  • [註 695]
    경개(耿介) : 지조가 굳어 변하지 않는 모양.
  • [註 696]
    순정(醇正) : 순수하고 바름.
  • [註 697]
    진신(搢紳) : 벼슬아치의 총칭.
  • [註 698]
    관개(冠蓋) : 높은 벼슬아치가 머리에 쓰는 관과 해를 가리던 일산(日傘).

○前大司成盧自亨卒。 自亨性耿介, 學術醇正, 嘗以微痾辭位, 不求榮進。 上聞其名, 徵拜成均司藝, 訓誨後進, 多所成就。 累官至大司成, 復以年格, 乞骸章累上, 不許, 及有疾, 授閑官, 使之頤養。 乃棄官歸田里, 館生及搢紳之曾受業者, 出餞東郊, 冠蓋塡溢, 時人榮之。 踰年卒。


  • 【태백산사고본】 37책 242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626면
  •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