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39권, 성종 21년 4월 15일 정유 2번째기사
1490년 명 홍치(弘治) 3년
옹주가 시집에서 예의를 바르게 할 것에 대해 우승지 신종호에게 전교하다
우승지(右承旨) 신종호(申從濩)에게 전교(傳敎)하기를,
"옹주(翁主)가 하가(下嫁)한 후에 시부모님을 뵙는 예(禮)가 있는데, 예전의 성현(聖賢)이 예를 만들 때 어찌 의도가 없었겠는가? 가도(家道)는 마땅히 근엄(謹嚴)하게 할 바이다. 옹주가 궁궐 안에서 생장(生長)하여 더러 귀(貴)한 것을 믿고 교만한 폐단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어렸을 때부터 예를 알아야 하니, 습관이 몸에 배어 성품이 된 후에야 부도(婦道)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경(卿)은 존귀(尊貴)하게 대우하여 그 예를 폐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장차 혜숙 옹주(惠淑翁主)를 고원위(高原尉) 신항(申沆)에게 하가(下嫁)시키려 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전교가 있었는데, 신항은 바로 신종호(申從濩)의 아들이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239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585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