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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25권, 성종 20년 2월 28일 병진 4번째기사 1489년 명 홍치(弘治) 2년

정문형·김종직·홍귀달·송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정문형(鄭文炯)을 자헌 대부(資憲大夫) 의정부 우참찬(議政府右參贊)으로, 김종직(金宗直)을 자헌 대부 형조 판서(刑曹判書)로, 홍귀달(洪貴達)을 가정 대부(嘉靖大夫)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 송영(宋瑛)을 가정 대부 공조 참판(工曹參判)으로, 한언(韓堰)을 통정 대부(通政大夫) 도승지(都承旨)로, 이계남(李季男)을 통정 대부 좌승지(左承旨), 김극검(金克儉)을 우승지(右承旨)로, 경준(慶俊)을 좌부승지(左副承旨)로, 한건(韓健)을 우부승지로, 윤탄(尹坦)을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유문통(柳文通)을 통훈 대부(通訓大夫)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로, 이종윤(李從允)을 통훈 대부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으로, 정미수(鄭眉壽)를 조산 대부(朝散大夫) 장령(掌令)으로, 신자건(愼自建)을 조산 대부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으로, 이칙(李則)을 가선 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삼았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정문형은 사람됨이 학식이 없고 탐하고 간사하며 악착(齷齪)249) 하여, 오로지 임금의 마음을 맞추기에만 힘쓰고 위험한 일을 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능히 큰 지위를 얻을 수는 있었으나 여러 사람의 물망에 차지 아니하였는데도, 대간(臺諫)은 끝내 그를 논박하지 아니하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225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450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

  • [註 249]
    악착(齷齪) : 마음이 좁고 잗닮.

○以鄭文炯爲資憲議政府右參贊, 金宗直資憲刑曹判書, 洪貴達嘉靖司憲府大司憲, 宋瑛嘉靖工曹參判, 韓堰通政都承旨, 李季男通政左承旨, 金克儉右承旨, 慶俊左副承旨, 韓健右副承旨, 尹坦同副承旨, 柳文通通訓司憲府執義, 李從允通訓司憲府掌令, 鄭眉壽朝散掌令, 愼自建朝散司憲府持平, 李則嘉善同知中樞府事。

【史臣曰: "文炯爲人無學識, 貪邪齷齪, 專務迎合, 不爲崖異, 故能取大位。 然不厭衆望, 而臺諫終不駁之。"】


  • 【태백산사고본】 35책 225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450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