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 대군 이정의 졸기
월산 대군(月山大君) 이정(李婷)이 졸(卒)하였다. 조시(朝市)를 정지하고 예장(禮葬)하기를 예(例)와 같이 하였으며, 치제(致祭)와 부의(賻儀)는 관례보다 더하였다. 정(婷)의 자(字)는 자미(子美)인데, 바로 금상(今上)1242) 의 모형(母兄)1243) 이다. 나면서부터 총명함이 보통과 다르니, 세조가 사랑하여 궁중에서 길렀다. 경진년1244) 에 월산군(月山君)으로 봉하였고, 신묘년1245) 에 대군(大君)으로 봉하고 순성 명량 경제 좌리 공신(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의 호(號)를 내렸다. 어려서부터 독서하기를 좋아하고 성품이 또 충담(沖澹)1246) 하여, 분화(紛華)1247) 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성색(聲色)1248) 과 응견(鷹犬)1249) 은 더욱 좋아하지 아니하고 오직 시주(詩酒)만 좋아하였다. 일찍이 작은 정자를 정원 안에 짓고 편액(扁額)을 풍월정(風月亭)이라고 하여, 경사자집(經史子集)을 모아 놓고 날마다 그 사이에 있으면서 거의 다 섭렵(涉獵)하였다. 지은 시(詩)가 평담(平談)하였으며 음률(音律)도 알았다. 비록 문사(文士)를 좋아하였으나 함부로 사귀고 접하지 아니하므로, 문정(門庭)이 고요하고 거마(車馬)가 들레지 아니하였다. 낭중(郞中) 기순(祈順)1250) 이 우리 나라에 사신으로 와서 정(婷)의 의모(儀貌)가 한정(閑整)하고 예절(禮節)이 있음을 보고는 조용히 접견하기를 허락하였다. 정을 일찍이 문소전(文昭殿)과 종부시(宗簿寺) 제조(提調)로 삼았었는데, 감히 마땅하지 아니하다고 사양하여 면직하였다. 국법에 조정의 신하가 왕자를 길에서 만나면 말에 내려서 두 손을 모아 잡고 서서 지나가기를 기다렸는데, 정이 피마(避馬)1251) 하도록 계청(啓請)하여 윤허를 받았으니, 그 겸손한 덕이 이와 같았다. 매일 아침에 예궐하여 문안하며 아무리 심한 추위와 더위에도 일찍이 잠시도 폐함이 없었다. 잔치와 활 쏘는 데 입시(入侍)하여 아무리 즐거움이 지극하더라도 법도에 따르고 조금도 실수함이 없었다. 임금도 우애가 매우 돈독하고 대우가 극히 융숭하여 은혜를 자주자주 베풀었다. 이해 9월에 인수 왕대비(仁粹王大妃)가 불예(不豫)1252) 하자 시약(侍藥)하면서 근심과 걱정으로 병을 얻어 두어 달을 끌어오다가 이에 이르러 졸하니, 나이가 35세이다. 평양군(平陽君) 박중선(朴仲善)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후사(後嗣)가 없고 측실(側室)에 두 아들이 있다. 태상(太常)1253) 에서 시호(諡號)를 공간(恭簡)으로 의논하였는데, 특별히 시호를 효문(孝文)으로 내렸다. 덕을 지키고 간사하지 아니한 것이 효(孝)이고, 시행함이 이치에 맞는 것이 문(文)이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223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422면
- 【분류】왕실(王室) / 인물(人物) / 인사(人事)
- [註 1242]금상(今上) : 현재의 임금.
- [註 1243]
모형(母兄) : 동복형.- [註 1244]
경진년 : 1460 세조 6년.- [註 1245]
신묘년 : 1471 성종 2년.- [註 1246]
충담(沖澹) : 성미가 조촐하고 깨끗함.- [註 1247]
분화(紛華) : 분잡하고 화려함.- [註 1248]
성색(聲色) : 음악과 여색.- [註 1249]
응견(鷹犬) : 사냥에 쓰는 매와 개.- [註 1250]
기순(祈順) : 명나라 사신.- [註 1251]
○月山大君 婷卒。 輟朝市、禮葬如例, 祭賻有加。 婷字子美, 卽上之母兄也。 生而聰穎異常, 世祖鍾愛, 養于宮中。 歲庚辰封月山君, 辛卯封大君, 賜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之號。 自幼好讀書, 性又沖澹, 不喜紛華。 其於聲色鷹犬, 尤不悅焉, 惟好詩酒。 嘗構小亭於園中, 扁曰 ‘風月’, 聚經史子集, 日處其間, 搜獵殆盡。 爲詩平淡, 又解音律。 雖喜文士, 不妄交接, 門庭寂然, 絶無車馬。 祈郞中順奉使我國, 見婷儀貌閑整有禮, 頗賜容接。 婷嘗爲文昭殿、宗簿寺提調, 辭不敢當, 乃免。 國法, 朝臣道遇王子, 下馬拱立, 以俟其過, 婷爲請許避馬, 其謙德如此。 每朝詣闕問安, 雖隆寒盛暑, 未嘗暫廢。 至於侍宴射, 雖歡洽之至, 必循矩蹈轍, 未嘗少失。 上亦友愛甚篤, 待遇極隆, 恩賚稠疊。 是年九月, 仁粹王大妃不豫, 侍藥憂勞成疾, 沈綿數月, 至是乃卒, 年三十五。 娶平陽君 朴仲善之女, 無嗣, 側室有二男。 太常議諡, 以 ‘恭簡’, 上特賜諡 ‘孝文。’ 秉德不回 ‘孝’, 施而中理‘文’。
- 【태백산사고본】 34책 223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422면
- 【분류】왕실(王室) / 인물(人物) / 인사(人事)
- [註 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