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성종실록 223권, 성종 19년 12월 11일 경자 1번째기사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예문관 봉교 하윤 등이 상소하여 임사홍의 벼슬을 거두기를 청하다

예문관 봉교(藝文館奉敎) 하윤(河潤)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삼가 본관(本館)의 일기(日記)를 상고하건대, 무술년1171)임사홍(任士洪)이 붕당(朋黨)을 결탁하여 조정을 탁란(濁亂)하게 하자 전하께서 여러 의논을 널리 채택하여 밝게 처단하여 먼 지방에 귀양보내어서 다시 쓰지 아니할 뜻을 보였으니, 대순(大舜)사흉(四凶)1172) 을 죄주고 공자(孔子)소정묘(少正卯)1173) 를 죽인 것과 더불어 마땅히 빛을 드리우고 함께 본보기가 되어 만세에 전할 만한 것입니다. 신 등은 그윽이 이르건대, 순임금공자는 천하의 큰 성인이신데 사흉과 소정묘와 같은 무리가 어찌 능히 성(盛)한 정치에 만에 하나라도 해롭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간사함을 버리기를 이처럼 심하게 한 것은 성인이 작은 것을 막고 조짐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이상(履霜)1174)금니(金柅)1175) 와 같은 깊은 경계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임사홍에게만 그렇게 아니하십니까? 귀양보낸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사환(賜環)하시고 또 얼마 되지 아니하여 직첩(職牒)을 내려 주셨습니다. 대간(臺諫)과 시종(侍從)이 논박(論駁)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자 전하께서 전교하시기를, ‘비록 직첩을 내려 줄지라도 마침내 다시 쓰지 아니하겠다.’고 하신 전하의 말씀이 아직도 신 등의 귀에 있고 사책(史策)에 쓰여져서 무궁토록 전해질 것인데, 이제 그 아비 임원준(任元濬)의 작은 공로(功勞)로써 임사홍처럼 흉하고 간사한 자에게까지 미쳐서 어서(御書)로 녹용(錄用)하였으니, 이는 무슨 뜻입니까? 임사홍이 교만하여 위를 업신여기고 음흉하게 남을 해치는 정상(情狀)은 전하께서 통촉하시는 바이며 대간과 홍문관에서 자세히 아뢰었으니, 신 등은 다시 덧붙이지 아니하겠습니다. 그러나 신 등이 지위에 벗어나서 일을 논하는 것이 잘못임을 알지 못함이 아니지마는 감히 말하는 것은, 신 등은 전하께서 20년 동안 정신을 가다듬어 다스리기를 도모하여 티없는 구슬처럼 밝은 덕이 임사홍의 한 일에 의해 오점(汚點)을 남기게 되어 전후 사책(史策)에서 크게 저오(牴牾)하게 될까 그윽이 애석해 합니다. 전하의 이 일은 어찌 만세에 전신(傳信)할 수 있겠습니까? 임사홍이 전하의 은혜를 저버린 것은 심한데 전하께서는 여러 의논을 물리치고 임사홍을 돌보시기를 이처럼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 등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소인(小人)의 진퇴(進退)는 종사(宗社)의 안위(安危)가 달렸습니다. 엎드려 원하건대, 쾌히 결단하고 유보하지 마시며 빨리 성명(成命)을 거두소서."

하였으나,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하윤(河潤) 등이 아뢰기를,

"전일 직첩을 내려 주실 때에 성상께서 하교하시기를, ‘비록 직첩을 내려 줄지라도 마침내 다시 쓰지는 아니하겠다.’고 하시고 이제 쓰시니, 신 등은 직책이 사관(史官)이므로 직접 전교를 받고 사책(史策)에 쓰는데 앞뒤의 일이 다름이 있으면 성덕(盛德)에 누(累)가 될까 두렵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저 언어를 문자(文字)로 쓰면 변하고, 만약 물러가서 쓰면 또 변하며, 만약 오늘 듣고 내일 쓰면 또 변할 것이고, 만약 또다시 후일을 기다려서 쓰면 문득 또 변할 것이다. 내가 이제 생각하건대, 대개 말하기를, ‘비록 직첩을 돌려 주더라도 지금 당장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마침내 다시 쓰지 아니하겠다.’는 말은 아마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사관(史官)이 쓴 것인데 옳고 그르고 간에 질정(質正)할 수는 없다. 그리고 까닭없이 쓰는 것이 아니며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인데 그대들이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223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416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역사-편사(編史)

  • [註 1171]
    무술년 : 1478 성종 9년.
  • [註 1172]
    사흉(四凶) : 요·순(堯舜) 때의 네 악인(惡人). 곧 공공(共工)·환도(驩兜)·삼묘(三苗)·곤(鯀)을 가리키는 말임.
  • [註 1173]
    소정묘(少正卯) :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 천하의 5대악(五大惡)을 겸유(兼有)하여 나라 정치를 어지럽히므로, 공자(孔子)가 재상이 되자 그를 사형에 처하였음.
  • [註 1174]
    이상(履霜) : 앞으로 올 환난(患難)을 미리 대비한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주역(周易)》 곤괘(坤卦)에 ‘서리를 밟으면 얼음이 이르게 된다.[履霜堅氷至]’라고 한 데에서 온 말임.
  • [註 1175]
    금니(金柅) : 나쁜 조짐은 미리 견제한다는 뜻으로, 《주역(周易)》 구괘(姤卦)에, ‘금니에 매어둔다[繫干金柅]’라고 한 데에서 온 말임. 여기에서는 싹트는 음(陰:악(惡))을 못자라게 견제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말한 것임.

○庚子/藝文館奉敎(何潤)〔河潤〕 等上疏曰:

臣等謹按本館日記, 歲在戊戌, 任士洪交結朋黨, 濁亂朝政, 殿下博採群議, 明以斷之, 投諸遐荒, 示不復用。 此則與大舜之罪四凶、孔子之誅少正卯, 當垂耀竝觀, 而可傳於萬世者也。 臣等切謂孔子, 天下之大聖也。 如四凶、少正卯之流, 豈能害盛治之萬一乎? 然去邪勿疑, 如此之甚者, 聖人防微杜漸, 履霜金柅之深戒也。 殿下之於士洪, 何獨不然? 竄之未幾而賜環, 又未幾而賜職牒, 臺諫侍從, 論駁不已, 則殿下敎曰: "雖賜職牒, 終不復用。" 殿下之敎猶在臣等之耳, 書諸史策, 傳信於無窮矣。 今者以其父元濬之微勞細功而延及於士洪之凶邪, 御書錄用, 是何意耶? 士洪之驕蹇慢上、陰賊害物之情狀, 殿下所洞照, 而臺諫、弘文館詳陳之, 臣等不須更贅。 然臣等非不知出位論事之爲非, 而敢言之者, 臣等竊惜殿下二十年, 勵精圖治, 圭璧無瑕之德, 點汚於士洪之一事, 而前後史策, 大相牴牾也。 殿下此擧, 豈可傳信於萬世乎? 士洪之辜負殿下甚矣, 殿下排群議, 眷顧士洪若是, 何哉? 臣等竊念小人進退, 繫於宗社安危, 伏願夬決無留, 亟收成命。

不聽。 河潤等啓曰: "前日賜職牒時, 上敎以爲: ‘雖賜職牒, 終不復用而。’ 今乃用之。 臣等職在史官, 親承傳敎, 書諸史策, 前後有異, 恐累盛德。" 傳曰: "凡言語書之於文字則變焉, 若退而書之則又變焉, 若今日聽而明日書之則又變焉, 若又待後日而書之則抑又變焉。 予今思之, 蓋曰雖還職牒, 非此時用之云爾, 終不復用之言, 疑非予所言也。 然史官所書, 是非間不可質正也, 且非無緣用之也, 出於不得已也。 爾等豈不知乎?"


  • 【태백산사고본】 34책 223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416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