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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19권, 성종 19년 8월 17일 무신 7번째기사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노자형이 관직을 제수받기 전에 먼저 귀향하니 전송하는 이가 많다

이날 정사(政事)703)노자형(盧自亨)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삼았으나, 명이 내리기 전에 노자형이 먼저 이미 귀향(歸鄕)하였다. 노자형장흥(長興) 사람으로 나이 70여 세였으며, 수염이 희고 깨끗하였고 엄연한 모습이 신선(神仙)과 같았다. 젊어서는 학문에 힘써 경학(經學)에도 정통하였으며, 대사성(大司成)으로 전후 8년 동안 인재(人材)를 교양(敎養)하여 크게 스승된 도리를 체득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본래 염퇴(廉退)하여 벼슬사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직강(直講)·사예(司藝)·사성(司成)으로 있을 때에도 스스로 직위를 그만두고 시골로 돌아갔으며 임금이 부른 뒤에야 나왔고, 대사성(大司成)이 되어서도 역시 누누이 물러날 것을 구하였으나 임금이 모두 힘써 만류한 바 있는데, 이에 이르러 늙은 것을 이유로 파직되어 호연(浩然)히 돌아가니, 무릇 진신(搢紳)704) ·선생(先生)·유생(儒生) 등이 도문(都門) 밖까지 전송하니 그 수효가 얼마인지 알지 못했다. 옛날의 소광(疏廣)·소수(疏受)705) 가 물러갈 때인들 어찌 이에서 더하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33책 219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365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註 703]
    정사(政事) : 벼슬아치의 임면(任免)·출척(黜陟)에 관한 사무.
  • [註 704]
    진신(搢紳) : 벼슬아치의 통칭.
  • [註 705]
    소광(疏廣)·소수(疏受) :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에 소광(疏廣)이 태자 태부(太子太傅)가 되고 그 형(兄)의 아들 소수(疏受)가 태자 소부(太子少傅)가 되었는데, 5년간 재직(在職) 후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니, 많은 사대부(士大夫)들이 동문(東門) 밖까지 나와 도열하여 환송했음.

○是日政, 以盧自亨爲僉知中樞府事, 命未下, 自亨先已歸鄕。 自亨, 長興人, 年七十餘, 鬚髯皓白, 儼然如神仙。 少力學, 精於經術, 爲大司成前後八年, 敎養人材, 大得爲師之道。 然性本廉退, 不樂仕宦, 故在直講、司藝、司成時, 解位歸田里, 徵而後起。 及爲大司成, 亦屢求退, 上皆勉留之。 至是, 以老見罷, 浩然而歸, 凡搢紳先生、靑衿子弟, 送至都門外者, 不知幾許。 古之疏廣受之去, 何以加此?


  • 【태백산사고본】 33책 219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365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