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 217권, 성종 19년 6월 26일 무오 8번째기사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좌부승지 김극검이 이화의 결안이 완성되었음을 아뢰다
좌부승지(左副承旨) 김극검(金克儉)이 아뢰기를,
"이화(李譁)의 결안(決案)을 완성하였습니다. 초복(初覆)을 아뢰어야 하는데, 복(覆)이란 것은 살릴 도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신이 1청(一廳)과 함께 추문(推問)하면서 결안(決案)을 만들었으니, 신이 복(覆)을 아뢰는 것이 마음에 미안(未安)합니다."
하니, 전교(傳敎)하기를,
"다른 승지(承旨)로 하여금 대신 아뢰게 하되, 힘써 살릴 도리를 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시신(屍身)이 물에 뜬 옥사(獄事)가 일어나기 전에 이화(李譁)가 마침 그의 계집종 동비(同非)를 살해하였으므로, 고발을 당한 것이다. 혹자는 물에 뜬 시신이 실제로 동비(同非)가 아니라 하고, 동비(同非)의 시신은 이미 양화도(楊花渡)에 가라앉았다고 하며, 그래서 이화(李譁)가 능히 변명하지 못하고 무복(誣服)한 것인데 죄인은 끝내 붙잡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217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352면
- 【분류】사법-재판(裁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