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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16권, 성종 19년 5월 29일 임진 4번째기사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전라도의 전세를 옮겨서 수납하는 일을 영돈녕 이상에게 의논하도록 명하다

이극균(李克均)이 아뢴 전라도(全羅道)의 전세(田稅)를 옮겨서 수납(收納)하는 편부(便否)를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일찍이 그 도(道)의 관찰사(觀察使)·절도사(節度使)를 역임(歷任)한 재상(宰相)들에게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심회(沈澮)·윤필상(尹弼商)·홍응(洪應)·윤호(尹壕)·정난종(鄭蘭宗)·이숙기(李淑琦)·성준(成俊)·박건(朴楗)·이약동(李約東)·이칙(李則)이 의논하기를,

"국가에서 조선(漕船)·조졸(漕卒)을 마련하고, 해운 판관(海運判官)을 배치하는 것은 조운(漕運)할 때를 당해서 판관(判官)은 조선을 손질하고 조졸을 점검(點檢)하며, 관찰사(觀察使)는 차사원(差使員)을 정해서 거둬들인 조세(租稅)를 나누어 싣게 하며, 수군 절도사(水軍節度使)는 친히 싣는 것을 감독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후(虞候)를 선정하여 충청도(忠淸道)의 지경(地境)까지 호송(護送)하게 해서 교부(交付)하도록 하고, 압령 만호(押領萬戶)를 정하여 운(運)570) 을 나누어 배를 출발하게 하고, 경유(經由)하는 연변(沿邊)의 여러 고을에서는 먼저 물길의 얕고 깊은 것을 살펴서 표(標)를 세우고 친히 뱃길을 지휘하며 인솔하여 호송하도록 되어 있으니, 국가에서 법을 세운 것이 자세하고 면밀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배 위의 기계(器械)가 간혹 튼튼하고 치밀(緻密)하지 않고, 조졸(漕卒)도 더러는 미약(迷弱)한 자를 대신 보냅니다. 그리고 나누어 실을 때에 경중(輕重)에 적합함을 잃기도 하고, 압령 만호가 간혹 조심스럽게 고찰하지도 않고, 연변(沿邊)의 여러 고을에서도 간혹 몸소 호송(護送)하지 않아 이 때문에 가끔 패몰(敗沒)하는 것이 많습니다. 이것이 어찌 법(法)을 세운 것이 자세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겠습니까? 간혹 중도(中道)에서 회오리 바람을 만나는 것은 계산이나 요량으로 미칠 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은 한때의 사람이 조치해야 할 일을 다하지 않아서 패몰(敗沒)하게 되는 것이니, 옛법을 경솔하게 변경시키는 것이 첫째로 불가(不可)한 것입니다. 만약 수로(水路)가 없다면 비록 길이 멀더라도 육로(陸路)로 운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로로 조운(漕運)할 수 있는 이점(利點)이 있는데도 농부(農夫)와 농우(農牛)를 몰아서 육로로 멀리까지 수송하게 한다면 전라도(全羅道)의 사람과 가축이 한꺼번에 피폐(疲弊)하여 소란할 정도로 실망(失望)할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불가한 것입니다. 그리고 수로(水路)에서의 풍랑(風浪)은 지척(咫尺)에서 호흡(呼吸)하는 순간에 일어나므로, 만약 조선(漕船)의 운행(運行)을 조심스럽게 하지 않는다면 공세곶이[貢稅串] 이상인들 어떻게 패몰(敗沒)이 없다는 보장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패몰하는 조선의 피해를 제거하려고 해서 반드시 육로(陸路)로 운반하게 한다면 경창(京倉)에다 전수(轉輸)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이 세 번째 불가한 것입니다. 진실로 조졸(漕卒)이 대신 운행하고, 압령 만호(押領萬戶)와 연변 수령(沿邊守令)·해운 판관(海運判官)이 게을러서 고찰(考察)하지 않는 것이 마치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면, 비록 공세곶이[貢稅串]에 운반하는 것도 패몰(敗沒)을 구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 등은 생각하건대, 예전대로 조운(漕運)하게 하고, 법대로 하지 않는 자는 엄하게 다스린다면 거의 패몰하는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하고, 손순효(孫舜孝)는 의논하기를,

"전라도(全羅道)의 전세(田稅)를 수로(水路)로 운반해야 한다는 것과 육로(陸路)로 수송해야 한다는 의논이 분운(紛紜)한데, 그것은 오늘부터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의논을 근거로 생각해 보면, 본도(本道)는 경상도(慶尙道)와는 비교할 것이 아니며, 조운(漕運)하는 길이 사방으로 통하였으니 끝내 폐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길은 멀고 가까운 것이 있는데, 먼 곳을 육로(陸路)로 수송한다면 매우 고달픕니다. 그래서 부득이 조선(漕船)으로 운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은 육로로 운반할 만하며 끝내 해로움이 없습니다. 신은 망령되게 생각하기를, 한 도(道)를 반으로 나누어 아산(牙山) 공세곶이[貢稅串]와의 거리가 5, 6일 노정(路程)에 지나지 않는 곳은 육로로 수송하게 하고, 그 나머지 먼 고을은 조운(漕運)하는 것이 편(便)하다고 여깁니다. 만약 마소[牛馬]가 죽는 것을 괴롭게 여긴다면, 경상도 백성에게 매년 2월 이전에 전세(田稅)의 수납(收納)을 마치게 하면 농사를 폐기(廢棄)한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시행하여 그 편부(便否)를 증험해 볼 만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예전대로 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216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343면
  • 【분류】
    군사-지방군(地方軍) / 재정-역(役) / 재정-창고(倉庫) / 교통-수운(水運)

  • [註 570]
    운(運) : 군사(軍士)를 대오(隊伍)로 편성할 때 묶는 단위, 또는 물화(物貨)를 운송(運送)할 때 묶는 단위를 말함.

○命議李克均所啓全羅田稅移納便否于領敦寧以上及曾經其道觀察使、節度使宰相等。 沈澮尹弼商洪應尹壕鄭蘭宗李淑琦成俊朴楗李約東李則議: "國家設漕船漕卒, 置海運判官。 當其漕運之時, 判官粧船點卒, 觀察使定差使員收稅分載, 水軍節度使親自監載。 又定虞候, 護送于忠淸地境交付; 又定押領萬戶, 分運發船; 所經沿邊諸邑, 先審水路淺深立標, 親率指路船護送: 國家立法, 非不詳密。 但船上器械或不堅緻, 漕卒或代遣迷弱, 且於分載之時, 輕重失宜, 押領萬戶, 或不謹考察, 沿邊諸邑, 或不躬行護送。 因此往往敗沒者多, 此豈立法不詳之所致? 其或中遭颶風, 計料所不及。 今以一時人事未盡而致敗, 輕變舊章, 此一不可也。 若無水路, 則雖道途遠阻, 不得不陸運。 今有水路漕運之利, 而驅農夫農牛遠輸陸路, 則全羅一道, 人畜俱疲, 騷然失望, 此二不可也。 水路風浪, 起於咫尺呼吸之間, 若不謹行船, 貢稅串以上, 安保其無敗乎? 欲祛敗船之害而必陸運, 則又令轉輸於京倉乎? 此三不可也。 苟或漕卒代行, 押領萬戶、沿邊守令、海運判官, 慢不考察, 如上所云, 則雖運於貢稅串, 無救敗沒。 臣等以爲依舊漕運, 其不如法者痛治, 則庶無敗沒之患。" 孫舜孝議: "全羅田稅水運陸輸, 論者紛紜, 匪自今日。 據其兩議而思之, 則本道非如慶尙道比也, 漕路四通, 終不可廢。 然路有遠近, 遠者陸輸甚苦, 不獲已船運, 近者可以陸運而終無害也。 臣意妄謂分一道之半, 距牙山 貢稅串不過五六日程者, 使之陸輸, 其餘遠邑, 漕運爲便。 若曰牛斃馬死爲苦, 則慶尙之民每於二月以前畢納稅, 不可以廢農論也。 姑且行之, 可以驗其便否矣。" 傳曰: "依舊。"


  • 【태백산사고본】 33책 216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343면
  • 【분류】
    군사-지방군(地方軍) / 재정-역(役) / 재정-창고(倉庫) / 교통-수운(水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