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 안윤덕이 왕세자복에 흑색을 채용하기를 아뢰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니, 정언(正言) 안윤덕(安潤德)이 아뢰기를,
"왕세자복(王世子服)은 이제 녹색(綠色)을 채용하였는데, 녹(綠)은 간색(間色)입니다. 조관(朝官)의 공복(公服)도 녹삼(綠衫)이 최하(最下)인데 국저(國儲)의 존귀(尊貴)한 이에게 부정(不正)한 최하(最下)의 색(色)을 입게 하심은 첨시(瞻視)에 어그러짐이 있으니, 청컨대, 흑색(黑色)을 채용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아청(鴉靑)이 어찌 반드시 정색(正色)이 되겠느냐? 녹색(綠色)은 그름[非]이 되지 않는다."
하였다. 안윤덕이 말하기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푸른 색으로 지은 옷이여![綠兮衣兮]’라고 하였으니, 옛사람은 녹색(綠色)을 천색(賤色)으로 여겼습니다."
하고, 동지사(同知事) 유순(柳洵)은 아뢰기를,
"아청색(鴉靑色)은 비록 고인(古人)이 정색(正色)이라고 이르지 않았더라도 녹색(綠色)보다는 낫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아청(鴉靑)으로 고쳐 채용함이 옳겠다."
하였다. 유순이 또 아뢰기를,
"조참(朝參)할 적에 대정(大庭)에 반열(班列)하는 백관(百官)의 복색(服色)이 다갈(茶褐)과 아청(鴉靑)을 섞어 입어, 그 색(色)이 불순(不純)한 것 같으니, 아울러 흑단령(黑團領)을 입도록 함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옳겠다."
하였다. 대사헌(大司憲) 성준(成俊)이 아뢰기를,
"미전진(美錢鎭)은 영안(永安) 일도(一道)의 요해처(要害處)가 되는데, 수군(戍軍)이 심히 적으니, 갑자기 경급(警急)한 일이 있으면, 수장(守將)은 누구와 더불어 응변(應變)하겠습니까? 비단 미전(美錢)만 그러할 뿐이 아니고 일도(一道)의 여러 진(鎭)이 모두 그러하니, 신의 생각으로는 사민(徙民)하여 채운 뒤에야 변방의 방어가 견고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남방(南方)은 비록 소현(小縣)이라 하더라도 민호(民戶)가 천여호(千餘戶)를 밑돌지 않아서 땅은 협소하고 사람은 번다하여 간사(奸詐)함이 날로 일어나니, 그 부실호(富實戶)를 택(擇)하여서 점차로 사변(徙邊)343) 함이 좋겠습니다. 또 여러 진(鎭)의 옹성(甕城)과 장성(長城)을 이미 쌓은 곳은 근심이 없으니, 그 쌓지 못한 곳도 또한 모름지기 여러 고을에 나누어 주어서 쌓게 하되 수십 년을 기약하여 다 쌓아서 장강(長江)을 한계(限界)로 삼으면 국가(國家)에 영구히 북변(北邊)의 우환이 없을 것입니다. 또 근년에 신숙주(申叔舟) 등이 명(命)을 받들고 가서 부령(富寧)에 영북진(寧北鎭)을 설치함이 마땅한지의 여부를 살피고 땅이 모두 석산(石山) 위에 흙을 이어 농사짓기에 마땅하지 못하다고 하였기에, 지난해에 신(臣)이 명(命)을 받들고 이극균(李克均)과 같이 살피며 토품(土品)을 보았더니, 과연 돌이 많이 섞여서 메말랐으되 화곡(禾穀)은 무성(茂盛)하였습니다. 이 땅은 적로(賊路)가 세 곳이나 있어 진실로 요해지(要害地)이니 진(鎭)을 둠이 지극히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 지형(地形)을 그려서 올리도록 하라."
하였다. 성준(成俊)이 북방 도로(北方道路)의 굽고 곧음과 산천(山川)의 험하고 평탄함에 대한 이해(利害)를 역력히 진달하니, 눈앞에 있는 것과 같았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214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32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호구-이동(移動) / 의생활-관복(官服) / 군사-관방(關防)
- [註 343]사변(徙邊) : 변경(邊境) 지방으로 이사(移徙)하게 함.
○御經筵。 講訖, 正言安潤德啓曰: "王世子服, 今用綠色, 綠, 間色也。 朝官公服, 綠衫最下; 以國儲之尊, 服不正最下之色, 有乖(贍)〔瞻〕 視。 請用黑色。" 上曰: "鴉靑豈必爲正色乎? 綠色不爲非也。" 潤德曰: "《詩》云: ‘綠兮衣兮。’ 古人以綠爲賤色。" 同知事柳洵啓曰: "鴉靑色雖非古人所謂正色, 猶愈於綠色。" 上曰: "然則改用鴉靑可也。" 柳洵又啓曰: "如朝參大庭班列, 百官服色, 雜着茶褐與鴉靑, 其色不純, 令竝服黑團領爲便。" 上曰: "可。" 大司憲成俊啓曰: "美錢鎭爲永安一道要害處, 而戍軍甚少。 脫有警急, 守將誰與應變? 非徒美錢爲然, 一道諸鎭皆然。 臣意謂徙民以實, 然後邊圉可固也。 南方雖小縣, 民戶不下千餘, 地窄人繁, 奸詐日起。 擇其富實戶, 以漸徙邊爲便。 且諸鎭甕城長城已築處, 無虞也; 其未築處, 亦須分授諸邑築之, 期以數十年盡築, 以長江爲限, 則國家永無北邊之憂矣。 且頃年申叔舟等, 承命往審富寧置寧北鎭當否, 以爲地皆石山戴土, 不宜禾稼。 去年臣承命, 與李克均同審, 見土品果磽瘠, 而禾穀則茂盛。 此地有賊路三處, 眞要害之地, 置鎭至便。" 上曰: "其圖地形以進。" 俊於北方道路迂直、山川險夷, 歷陳利害, 如在目前。
- 【태백산사고본】 32책 214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321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호구-이동(移動) / 의생활-관복(官服) / 군사-관방(關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