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 214권, 성종 19년 3월 12일 병자 7번째기사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영의정 윤필상·유지·송영 등이 조서와 조칙을 맞이하는 일에 대해 아뢰다
영의정(領議政) 윤필상(尹弼商)·예조 판서(禮曹判書) 유지(柳輊)·도승지(都承旨) 송영(宋瑛) 등이 벽제(碧蹄)로부터 돌아와 아뢰기를,
"중국 사신의 말로는 ‘오늘 연을 타고 조서를 맞이하면 우리들은 마땅히 칙서(勅書)를 받들고 모화관(慕華館)에 유숙(留宿)하겠으니, 그 이튿날에는 말을 타고 칙서를 맞이하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신 등의 뜻으로는 중국 사신이 이미 연을 타고 조서를 맞이할 것을 허락하였으니, 만약 다시 대신(大臣)을 보내어 반복(反復)하여 개효(開曉)한다면 같은 날에 조서와 조칙을 맞이할 수 있도록 허락할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중국 사신이 의주(儀註)의 개찬(改撰)을 기다려 본 뒤에 벽제(碧蹄)를 떠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국 사신이 반드시 한낮[日午]에야 길을 떠날 것이니, 너무 일찍 동가(動駕)하는 것은 미편(未便)한 줄로 압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평명시(平明時)에 동가(動駕)함이 마땅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214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318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