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접사 허종이 중국 사신에게 베푼 위로연에서의 일을 치계하다
원접사(遠接使) 허종(許琮)이 치계(馳啓)하기를,
"신안관(新安館)에서 중국 사신의 위연(慰宴)을 베풀었을 때에 기악(妓樂)을 올렸더니, 두 사신이 물리치게 하며 말하기를, ‘선황제(先皇帝)의 상(喪) 3년 이내이므로 음악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고, 선위사(宣慰使) 이계남(李季男)이 인정 예물(人情禮物)의 단자(單子)를 올렸더니, 두 사신이 사양하고 받지 않기를, ‘우리들은 이미 강상(江上)에서도 받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받겠습니까?’ 하였습니다. 또 중국 사신이 평양(平壤)에 도착하여, 관찰사(觀察使) 성현(成俔)과 선위사(宣慰使) 이극돈(李克墩)이 영조(迎詔)하고, 채붕(彩棚)을 베풀어 잡희(雜戲)를 올렸더니, 두 사신이 주목(注目)하여 보았으며, 선위사(宣慰使) 이하가 배조례(拜詔禮)를 의식과 같이 행하고, 또 선위례(宣慰禮)를 행하였습니다. 예(禮)를 마치자, 선위사(宣慰使)가 식물 단자(食物單子)를 바쳤더니, 모두 받지 아니하고, 두 사신이 통사(通事)에게 이르기를, ‘이 선위 재상(宣慰宰相)은 예(禮)가 하나도 잘못됨이 없으니, 이 분은 예(禮)를 아는 재상이다.’고 하였습니다.
정사(正使)가 말하기를, ‘기자(箕子)의 분묘[墳]와 사당[廟]이 있습니까? 우리가 배알하려고 합니다.’ 하므로, 대답하기를, ‘분묘는 멀리 성밖에 있어 지금 도달할 수는 없으나, 사당은 성안에 있습니다.’ 하니, 말하기를, ‘그렇다면 마땅히 알묘(謁廟)하겠습니다.’ 하고, 즉시 기자묘(箕子廟)에 나아가 배례(拜禮)를 행하였습니다. 묘문(廟門)을 나와 단군묘(檀君廟)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는 무슨 사당입니까?’ 하므로 말하기를, ‘단군묘(檀君廟)입니다.’ 하니, 말하기를, ‘단군(檀君)이란 누구입니까?’ 하기에 ‘동국(東國)에 세전(世傳)하기를, 「당요(唐堯)가 즉위(卽位)한 해인 갑진세(甲辰歲)에 신인(神人)이 있어 단목(檀木) 아래에 내려오니, 중인(衆人)이 추대하여 임금으로 삼았는데 그 뒤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죽은 곳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니, 말하기를, ‘내 알고 있습니다.’ 하고, 드디어 걸어서 사당에 이르러 배례(拜禮)를 행하였습니다. 사당 안에 들어가 동명왕(東明王)의 신주(神主)를 보고 이르기를, ‘이 분은 또 누구입니까?’고 하기에, 말하기를, ‘이 분은 고구려(高句麗) 시조(始祖) 고주몽(高朱蒙)입니다.’고 하니, 이르기를, ‘단군(檀君) 뒤에 어떤 사람이 대(代)를 이어 섰습니까?’ 하기에, 말하기를, ‘단군의 뒤는 바로 기자(箕子)인데, 전(傳)하여 기준(箕準)에 이르러 한(漢)나라 때를 당하여 연인(燕人) 위만(衛滿)이 준(準)을 쫓아내고 대신 섰으며, 기준(箕準)은 도망하여 마한(馬韓) 땅에 들어가 다시 나라를 세웠는데 도읍(都邑)하던 터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단군(檀君)·기자(箕子)·위만(衛滿)을 삼조선(三朝鮮)이라고 이릅니다.’ 하니, 이르기를, ‘위만(衛滿)의 후(後)는 한(漢) 무제(武帝)가 장수를 보내어 멸망시킨 것이 한사(漢史)에 있습니다.’ 하고, 즉시 태평관(太平館)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214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313면
- 【분류】외교-명(明) / 역사-전사(前史)
○遠接使許琮馳啓曰: "新安館設天使慰宴時, 進妓樂, 兩天使却之曰: ‘先皇帝喪三年內, 不可聽樂。’ 宣慰使李季男, 進人情禮物單子, 兩使辭不受曰: ‘吾等旣於江上不受, 今何受之?’ 且天使到平壤, 觀察使成俔及宣慰使李克墩迎詔設彩棚呈雜戲, 兩使注目視之。 宣慰使以下行拜詔禮如儀, 又行宣慰禮。 禮畢, 宣慰使呈食物單子, 皆不受。 兩使謂通事曰: ‘此宣慰, 宰相禮無一失, 是知禮宰相也。’ 正使曰: ‘箕子之墳與廟在乎? 吾等欲拜焉。’ 答曰: ‘墳則遠在城外, 今不可到, 廟則在城內矣。’ 曰: ‘然則當謁廟矣。’卽詣箕子廟, 行拜禮。 出廟門, 指檀君廟曰: ‘此何廟乎?’ 曰: ‘檀君廟也。’ 曰: ‘檀君者何?’ 曰: ‘東國世傳, 唐堯卽位之年甲辰歲, 有神人降於檀木下, 衆推以爲君。 其後入阿斯達山, 不知所終。’ 曰: ‘我固知矣。’ 遂步至廟, 行拜禮。 入廟中, 見東明神主曰: ‘此又何也?’ 曰: ‘此高句麗始祖高朱蒙也。’ 曰: ‘檀君之後, 何人代立?’ 曰: "檀君之後, 卽箕子也。 傳至箕準, 當漢之時, 燕人 衛滿逐準代立。 箕準亡入馬韓之地, 更立國, 所都之基, 今猶在焉。 檀君、箕子、衛滿, 謂之三朝鮮。’ 曰: ‘衛滿之後, 則漢 武帝遣將滅之, 在《漢史》矣。’ 卽還館。"
- 【태백산사고본】 32책 214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313면
- 【분류】외교-명(明)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