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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12권, 성종 19년 윤1월 22일 정해 1번째기사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선농에 친히 제사하다

임금이 선농(先農)191) 에 친히 제사하였다. 대차(大次)192) 에 이르러 전교하기를,

"신위(神位)의 향배(向背)와 배위(拜位)를 그림으로 그려서 아뢰라."

하니, 승정원(承政院)에서 곧 이를 아뢰었다. 전교하기를,

"환궁(還宮)할 때에 규(圭)193) 를 잡는 것이 마땅한가 아니한가?"

하니, 예조 판서(禮曹判書) 유지(柳輊)가 아뢰기를,

"규(圭)는 상하(上下)에 신(信)을 통하고 조하(朝賀)를 받으며 군신(群臣)에 임하고 중국 사신을 대(待)할 때에 마땅히 잡는 것인데, 환궁할 때에는 아마도 잡을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친경(親耕)194) 때에 규(圭)를 놓고 쟁기[耒]를 받아서 오퇴례(五推禮)195) 를 행하기를 마치고는 곧 밭이랑 가운데에서 도로 규를 잡는 것은 예식에 온당치 못할 듯하다. 규를 놓은 곳에 물러가서 규를 잡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니, 유지가 아뢰기를,

"상교(上敎)가 진실로 마땅합니다."

하였다. 제사를 마치고 대차(大次)에 돌아와서 날이 밝은 다음 오퇴례(五推禮)를 행하고, 관경대(觀耕臺)에 올라서 밭갈이를 구경하였다. 월산 대군(月山大君) 이정(李婷)·영의정(領議政) 윤필상(尹弼商)·영돈녕(領敦寧) 윤호(尹壕)가 칠퇴례(七推禮)를 행하고, 병조 판서(兵曹判書) 어세겸(魚世謙)·이조 참판(吏曹參判) 이약동(李約東)·대사헌(大司憲) 박안성(朴安性)·사간(司諫) 김심(金諶) 등이 구퇴례(九推禮)를 마치자 봉상시 부정(奉常寺副正)이 서인(庶人)을 거느리고 차례로 1백 묘(畝)를 갈기를 마쳤다. 밭이랑을 다스리는 자가 농가(農歌)를 부르면서 밭이랑을 다스리기를 마치고는, 봉상시 정(奉常寺正)이 늦벼[穜]와 올벼[穋] 씨를 받들고 뿌리기를 마쳤다. 임금이 대차(大次)에 돌아와서 전교하기를,

"선농(先農)에 제사하는 것은 경사(慶事)이고, 또 반사(頒赦)의 전례(前例)도 있으니,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의논하게 하라."

하니, 심회(沈澮)·윤필상(尹弼商)·윤호(尹壕)가 모두 의논하여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진실로 마땅합니다."

하였다. 대가(大駕)가 돌아오자 기로(耆老)·유생(儒生)·여기(女妓)들이 차례로 가요(歌謠)를 올렸는데, 기로의 가요는 이러하였다.

"예악(禮樂)이 백년 만에 일어나니 대저 오늘날을 기다린 것이며, 제후(諸侯)가 구퇴례(九堆禮)를 마치니 아름다운 의식을 다시 보겠습니다. 천지(天地)가 함께 기뻐하고 신민(臣民)이 서로 즐거워합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聖人)으로서 건부(乾符)196) 를 잡고 왕위에 오르셨네. 검소하고 부지런하심은 하우씨(夏禹氏)구혁(溝洫)197) 에 힘씀을 체득하시고, 음탕함이 없고 안일함이 없으심은 주문왕(周文王)강전(康田)198) 을 본받았습니다. 바야흐로 태평 무사함을 누리는데 오히려 광전(曠典)을 거행하지 아니함을 염려하였네. 큰 일은 제사에 있음을 생각하여 반드시 자성(粢盛)199) 을 깨끗하게 하는데, 하물며 소인(小人)이 의지하는 바인데 감히 가색(稼穡)을 뒤로 하겠습니까? 이에 길일(吉日)을 택하니 바로 맹춘(孟春)의 절기입니다. 푸른 단(壇)을 동쪽 들에 설치하여 풍년을 매우 일찍 빌었고, 감색(紺色) 수레를 남쪽 밭이랑에 거둥하여 쟁기를 잡고 밭을 가시니, 뭇 신하는 그림자처럼 추창(趨蹌)하고 만백성은 구름처럼 모여서 구경합니다. 풍년이 들어 기장과 벼가 많기를 빌고 우리 곳집[庾]이 섬[島]처럼 언덕처럼 쌓이기를 노래합니다. 난여(鑾輿)200) 가 돌아오자 다행히 황도(皇道)201) 의 넓음을 따랐고 천안(天顔)202) 에 기쁨이 있으니 함께 백일(百日)의 밝음을 우러러 봅니다. 가요를 지어서 부르니 푸르고 푸른 옷깃이 늘어섰고, 서도(瑞圖)203) 를 받들어 올리니 옹기종기 선아(仙娥)204) 가 옹위합니다. 신 등과 같은 자는 수역(壽域)205) 에 노닐고 춘대(春臺)에 쉽니다. 나이는 상유(桑楡)206) 에 닿았는데 은혜는 장맛비처럼 학발(鶴髮)에 더함을 얻었습니다. 태산 같은 축수(祝壽)를 올리며 개미 같은 작은 정성을 갑절이 되도록 다합니다.

삼가 송(頌)을 올립니다.

‘아아! 거룩하신 우리 왕은 문(文)·무(武)를 겸하셨네.

왕위에 오르시어 우리 나라 도우셨네.

더위 추위 고루하고 비와 바람 때맞췄네.

풍년을 이루어서 부유하고 넉넉하며

모든 백성 일용 음식 가난함이 없어라.

왕이 말씀하시기를, 신하들아, 너희 직분 공경하라.

예전의 성왕들은 안일함을 일삼지 않았네.

풍년에도 가난을 염려하여 곡식만을 걱정했네.

동녘 들을 돌아보니, 그 땅이 기름져라.

검은 보습 손에 잡고 푸른 멍에 소에 메워

이에 밭을 가니 임금의 적전(籍田)207) 이네.

그 종자 무엇인가, 벼와 기장이라네.

보(簠)와 궤(簋)에 이를 담아 신(神)에게 제사하니,

신께서 복을 내려 만수무강하오리다.

임금이 한 번 거둥하자 삼농(三農)208) 이 권장되며

오는 해를 일으키고 온 겨레를 열어 주니,

우리 백성 먹는 곡식 오직 왕의 은덕이네.

성대한 예식 다 마치고 대가가 돌아오니,

백성들 기뻐하고 산천이 빛이 나네.

상서 바람 일어나고 덕화가 퍼지니,

어린이와 늙은이가 한길에서 춤추네.

생각하면 신 등은 굽고 여윈 몸으로

쇠약한 몸을 이끌고서 좋은 이 광영 눈을 닦고 구경하며,

가뭄에 구름을 기다리듯 공손히 비는 말은

우리 임금 천만세에 백성 부모 되옵소서.’"

유생(儒生)의 가요는 이러하였다.

"돋는 해를 공경히 맞이하여 수시(授時)209) 의 정사를 잘 다스리고, 밝은 신(神)을 공경하여 기년(祈年)210) 의 예식이 매우 엄숙합니다. 하늘의 궤도는 비로소 황도(黃道)를 따라 돌고, 뭇사람의 송축(頌祝)은 삼가 대궐에 올립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요(堯)임금처럼 착하고 순(舜)임금처럼 밝으시며, 문왕(文王) 같은 계획에 무왕(武王) 같은 공을 세웠네. 예악(禮樂)은 삼대(三代)의 성대함을 따라서 제사함이 어긋나지 아니하고, 창름(倉廩)은 9년의 저축이 남아서 자성(粢盛)이 이미 깨끗하네. 이에 경칩(驚蟄)의 윤월(閏月)을 당하여 다시 생(牲)211) 으로 동교(東郊)에서 제사하고, 곡식을 중히 하는 정성이 밝아, 선농(先農)의 제사가 크게 빛났습니다. 뜰에는 횃불이 밝게 비치고 올리는 폐백(幣帛)은 아름답습니다. 푸른 단(壇)에 나아가니 곤의(袞衣)가 변두(籩豆)를 올리는 곳에 빛나고 검은 보습을 잡으니 임금의 발길이 높고 낮은 들에 임하셨습니다. 팔사(八蜡)212) 에 통할 만하고 오퇴례(五推禮)가 모두 엄숙합니다. 바람과 비가 때를 맞추어 내리니 시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곳집과 노적이 많이 쌓여서 풍년의 경사에 부합합니다. 이에 아름다운 예식을 행하니 진실로 좋은 때에 당하였습니다. 신 등은 모두 노둔한 자질로서 우러러 인제 양성의 교화를 입었습니다. 적전(籍田)에 글을 올리니 재주는 비록 수복(壽福)을 비는 데 모자랄지라도 격양가(擊壤歌)를 올리는 심정은 감히 부로(父老)에 뒤지겠습니까? 드디어 송(頌)을 지어 올립니다.

‘밝고 밝은 우리 임금 백성에게 임하시어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까지 조심하네.

백성 일을 중히 하고 곡식만을 귀히 여겨

아아! 홍치(弘治)213) 원년 윤정월에

대궐문 크게 열고 팔극(八極)214) 에 나아가

관에 명을 내려 호령을 반포하니,

그 호령 무엇인가, 농정(農政)을 닦음이네.

좋은 날을 가리어서 풍년을 기도하니,

아름다운 동쪽 들에 공전(公田)이 여기 있네.

우리 임금 이르시어 선농(先農)에 제사하니,

구부리고 달려오는, 아아! 모든 신하.

팔음(八音)215) 이 화합하고 제사가 엄숙하니,

축관(祝官)이 말하기를, 큰 복을 내린다네.

우리 임금 말씀하되, 아아! 공경과 백집사야.

하늘과 선조께서 나에게 나라를 맡기시니,

나라는 백성에게, 백성은 먹는 것에 의지한다.

백성이 게으르면 임금이 누구와 만족하랴.

가르치고 지도함은 진실로 내게 있다.

내가 몸소 밭가는데, 누가 감히 어기리오.

영단에서 내려와 보습을 만지시니,

태농(太農)이 농기구를 고르면서 기쁨을 못참는다.

들에는 용비늘이 번득이고, 밭두둑엔 비단 수(繡)가 화려하네.

오퇴례(五推禮)가 끝나니 그 흙이 기름져라.

제사에 이바지하며 효도를 본받네.

하늘이 왕의 정성 아름답게 여기어서

백성을 몰래 도와 호수(戶數)가 많아지고,

많은 밭에 풍년들어 백곡이 번성하다.

사인(四人)이 성공하여 황무지가 개간되니,

하늘이 우리 왕께 이르기를, 너의 덕이 아름다운데

무엇으로 내려 줄까? 많은 복을 내리리라.

비올 때에 비가 오고 볕날 때에 볕이 나서,

벼와 기장 풍년들어 많이많이 쌓였도다.

하늘이 우리 왕께 이르기를, 공경 가상하여

보호하고 도와 주어 반드시 남은 경사 있어

자자손손 이어 가며 창성하게 할 것이니,

잘한다고 자부하지 말라. 조심하지 아니하면 미치광이 될 것이라.

삼가하고 조심하여 나의 훈계 본받으며

날로 마음 새롭도록 조심하고 공경하라.

우리 왕이 말하기를, 두려운 건 하늘이 아닌가?

공경히 명을 받아 허물없게 노력하리.

풍년에 흉년을 염려하고 편할 때에 어려움을 생각하며

항상 염두에 두고 가슴속에 새겨 두리라.

거룩하다! 왕의 말씀, 삼한의 복입니다.

우리를 기르심은 우리 왕의 은덕이라.

우리의 이 가요는 하늘·해를 그림이라, 어찌 형용다하리까?

금석에 새기어서 천억년에 밝게 전해 만백성에 보이리다.’"

여기(女妓)의 가요는 이러하였다.

"오퇴(五推)의 예(禮)를 중히 하여, 하민(下民)에게 이어받아 계승할 것을 보였고 만세를 높이 부르며 삼한(三韓)이 기쁨을 다하니 진실로 기쁘고 진실로 즐겁습니다. 초목이 광채를 더하고 산천이 빛을 바꿉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중화(中和)의 덕으로 만물을 기르시고 강건(剛健)한 마음으로 절후에 대응하여 주문왕(周文王)의 백성을 안정시키고 농사에 힘쓴 공(功)을 체득하여 비로소 선농(先農)의 제사를 행하시고 하우(夏禹)의 서민들이 어렵게 먹고 사는 것을 생각하여 더욱 곡식을 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부지런하셨습니다. 마침 봄 절후를 당하여 좋은 날을 받아서 거둥하시니, 푸른 수레와 검은 보습[耟]의 천장(天仗)216) 이 봄들에 머물고, 옥로(玉輅)217)금여(金輿)218)용어(龍馭)219)자맥(紫陌)220) 에 돌아오시니 상서로운 바람이 호탕(浩蕩)하고 교화(敎化)의 해가 길어집니다. 달리는 길에는 조관(朝官)의 행렬이 엄숙하고 법가(法駕)221) 에는 천일(天日)222) 의 모습이 엄연(儼然)합니다. 까마득한 균천(鈞天)에 넘치는 광악(廣樂)223) 이 아홉 번 연주하고 아물아물한 봉도(蓬島)224) 에 떨기로 난 경파(瓊葩)225) 는 몇 송이가 피었습니까? 태평(太平)의 형상이 없다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지치(至治)의 향기로움을 비로소 믿겠습니다. 이는 오랜 시대에 듣기 드문 일인데, 진실로 지금에 다행히 보았습니다. 첩(妾) 등은 외람되게 법부(法部)에 있으면서 좋은 때를 만나서 빈아(豳雅)226) 의 노래를 화답하니, 마땅히 자손의 많은 농사를 볼 것입니다. 기주(箕疇)의 복227) 을 누리기를 원하며 군자(君子)228) 의 만년 수를 빕니다. 황당한 말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구호(口號)를 올립니다.

‘임금 행차 동교에서 멍에를 돌이키니,

선농단에 제사하고 좋은 예식 이루었네.

만백성 기뻐함은 천년의 기회이며

사방에 풍년들고 팔풍(八風)229) 이 맑아라.

육오(六鰲)230) 는 힘차게 선장(仙仗)231) 을 맞이하고

쌍학은 너울너울 채색 기에 내려오내.

이 몸이 다행하게 거룩한 일 보게 되어

춤추고 노래하며 태평성대 하례합니다.’"

임금이 홍화문(弘化門)으로 들어와서 명정전(明政殿)에 나아가 여러 신하의 하례를 받고 인하여 반사(頒赦)하였다. 그 하전(賀箋)은 이러하였다.

"오직 성인(聖人)만이 능히 제사하여 사시(四時)의 정성을 다하며, 천자로부터 모두 밭을 갈아서 오퇴(五推)의 예를 행하니, 일은 간책(簡策)232) 에 빛나고 기쁨은 신민(臣民)에게 넘칩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문사(文思)는 요(堯)와 짝하시고 총명은 순(舜)과 같으시며 만기(萬機)를 잡고 남면(南面)하사 종묘(宗廟)·사직(社稷)의 신(神)을 받드시고, 동교(東郊)에 백무(百畝)의 적전(籍田)을 갈아서 어름(御廩)과 자성(粢盛)의 깨끗함을 이바지하시니, 비로소 광대(曠代)233) 의 아름다운 예(禮)를 행하여 후사(後嗣)에게 좋은 법을 보였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신 등은 다행히 태평 시대에 즈음하여 아름다운 행사를 얻어 볼 수 있었습니다.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넓은 은혜에 물방울과 먼지 같은 보필이 없을지라도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달이 기울지 아니하는 것처럼 수(壽)하시기를 마음으로 항상 축수합니다."

그 사문(赦文)은 이러하였다.

"하늘을 공경하고 책력을 나눠주어 백성에게 전공(田功)을 알리고, 풍년을 빌고 제사를 행하여 자성(粢盛)으로 효성을 올렸네. 예로부터 오면서 이를 아름답게 여겼고, 나는 덕이 적으면서 큰 기업(基業)을 이어받았다. 마땅히 강구할 일을 닦지 못하였으니 몸이 아무리 괴로와도 반드시 거행하였다. 농사를 힘쓰는 정책에 날마다 부지런하였으나, 천박한 자질(資質)이어서 아직 하늘의 도움을 얻지 못하였다. 혹시 흉년이 들면 백성이 굶주린다. 이제 삼양(三陽)이 화한 기운을 펴고 만물이 비로소 소생할 시기이니, 다시 옛 예법을 따라서 친히 선농(先農)에 제사하였다. 이 오퇴(五推)의 예(禮)를 이루었으니 백곡이 풍년들기를 기다린다. 사람이 장차 그 복을 함께 받을 것인데 내가 어찌 그 아름다움을 홀로 받겠는가? 마땅히 풀어 주는 어진 마음을 미루어서 죄를 용서하는 은혜를 편다. 지금 윤정월 22일 새벽 이전에서 도둑 및 강상(綱常)에 관계되는 죄 외의 도(徒) 이하는 이미 발각된 것이나 발각되지 아니한 것이나 이미 결정된 것이나 결정되지 아니한 것이나 모두 용서해 사면한다. 감히 유지(宥旨)234) 전의 일로써 서로 고해 말하는 자는 그 죄로써 죄를 주겠다. 아아! 백성을 권하여 농업에 힘쓰게 하는 데에는 나 한 사람이 먼저 농사의 어려움을 알아야 할 것이며, 허물을 씻고 은혜를 행하는 데에는 만백성으로 하여금 우로(雨露)의 은혜를 고루 입어야 할 것이다. 을미년235) 의 예(例)에 의하여 여러 집사(執事)로서 자궁(資窮)236) 된 자는 대가(代加)237) 하고 자궁이 안된 자는 각각 1자급(資級)을 가하게 한다."

이에 앞서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성세명(成世明)이 와서 아뢰기를,

"삼가 듣건대, 장차 사사(肆赦)238) 하려 한다고 하니, 옛사람이 이르기를, ‘사면(赦免)하는 것은 소인(小人)의 다행함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선농(先農)에 친히 제사하는 것이 예사(例事)가 될 것인데, 어찌 제사하면 반드시 사면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물며 중국 사신이 오면 반드시 반사(頒赦)를 아니할 수 없을 것인데 사면을 어찌 그처럼 자주 할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사면하지 마소서."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이같은 경사에 어찌 사면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중국 사신이 오는 데에 반사하는 것을 어찌 기필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성세명이 다시 아뢰기를,

"제갈양(諸葛亮)이 촉(蜀)나라를 다스릴 때에 사면을 함부로 내리지 아니하였는데, 이제까지 미담(美談)이 되었으니, 사면은 가볍게 내릴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전에 등극 조서(登極詔書)가 오는 데에 반사하는 것이 본래부터 상례(常例)가 있었는가? 승문원 제조(承文院提調)에게 물어 보라."

하므로, 제조 등이 아뢰기를,

"신 등은 기억할 수 없으니, 《승문원등록(承文院登錄)》을 상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홀로 이경동(李瓊仝)이 아뢰기를,

"만약 등극(登極)239) 으로써 반사한다면 처음 등극을 들었을 때에 즉시 반사하는 것이 마땅한데, 어찌 중국 사신이 오기를 기다려서 반사하겠습니까? 조서(詔書)에 비록 반사하라는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해외(海外)가 해내(海內)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이경동의 말이 과연 옳다. 이것을 성세명에게 말하라."

하였다. 성세명이 또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집사(執事)에게 가자(加資)하는 일에 있어서 지금 집사가 된 자는 일찍이 이조 낭관(吏曹郞官)을 지낸 이가 아니고 바로 재상(宰相)의 자제가 자급(資級)을 바라고 집사를 희망한 것이니, 사풍(士風)의 아름답지 못함이 이보다 심함이 없습니다. 이제 만약 과연 그 소망과 같게 되면 후일에 분경(奔競)240) 이 오늘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청컨대, 작상(爵賞)을 다시 아끼고 사풍을 가다듬게 하소서."

하였으나,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212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301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농업-권농(勸農) / 사법-행형(行刑) / 어문학-문학(文學) / 인사-관리(管理) / 정론-간쟁(諫諍) / 풍속-풍속(風俗)

  • [註 191]
    선농(先農) : 농사짓는 방법을 처음으로 가르쳤다는 신(神)인 신농씨(神農氏)를 가리키는 말.
  • [註 192]
    대차(大次) : 임금이 거둥하여 임시로 머물던 장막(帳幕).
  • [註 193]
    규(圭) : 옥(玉)으로 만든 홀(笏).
  • [註 194]
    친경(親耕) : 임금이 몸소 밭을 가는 것.
  • [註 195]
    오퇴례(五推禮) : 쟁기를 다섯 번 미는 예(禮).
  • [註 196]
    건부(乾符) : 임금의 부서(符瑞).
  • [註 197]
    구혁(溝洫) : 농토 정리와 배수 시설.
  • [註 198]
    강전(康田) : 농민을 편히 하는 일.
  • [註 199]
    자성(粢盛) : 제수(祭需).
  • [註 200]
    난여(鑾輿) : 임금의 수레.
  • [註 201]
    황도(皇道) : 임금의 큰 도.
  • [註 202]
    천안(天顔) : 임금의 얼굴.
  • [註 203]
    서도(瑞圖) : 상서로운 그림.
  • [註 204]
    선아(仙娥) : 선녀(仙女).
  • [註 205]
    수역(壽域) : 잘 다스려진 세상.
  • [註 206]
    상유(桑楡) : 저녁 해가 뽕나무나 느릅나무 위에 걸려 있다는 말로, 죽을 때가 가까와진 것을 말함. 상유 일박(桑楡日薄).
  • [註 207]
    적전(籍田) : 권농(勸農)의 뜻으로 임금이 친히 경작하는 토지. 수확된 곡식은 제사에 쓰였음.
  • [註 208]
    삼농(三農) : 봄에 밭갈고, 여름에 김매고, 가을에 거두는 것을 말함.
  • [註 209]
    수시(授時) : 백성에게 절후를 알려 주어 농사 시기를 잃지 않게 하는 일.
  • [註 210]
    기년(祈年) : 풍년이 들기를 기도하는 의식을 말함.
  • [註 211]
    생(牲) : 제사에 쓰이는 소·양·돼지 따위의 짐승.
  • [註 212]
    팔사(八蜡) : 팔신(八神)에게 전공(田功)을 고하는 제사.
  • [註 213]
    홍치(弘治) : 명나라 효종(孝宗)의 연호.
  • [註 214]
    팔극(八極) : 팔방(八方)의 끝. 즉 먼 곳을 뜻하는 말.
  • [註 215]
    팔음(八音) : 여덟 가지 음악. 즉 금(金)·석(石)·사(絲)·죽(竹)·포(匏)·토(土)·혁(革)·목(木)의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
  • [註 216]
    천장(天仗) : 임금의 의장(儀仗).
  • [註 217]
    옥로(玉輅) : 임금이 타는 수레.
  • [註 218]
    금여(金輿) : 임금이 타는 수레.
  • [註 219]
    용어(龍馭) : 임금의 행차.
  • [註 220]
    자맥(紫陌) : 도성(都城)의 길.
  • [註 221]
    법가(法駕) : 임금의 행차 거둥 때 의장 규모. 즉 노부(鹵簿)의 하나. 임금이 선농단(先農壇)에 제향(祭享)하고, 국학(國學)에 행차하여 석전례(釋奠禮)를 행하고, 사단(射壇)에 활 쏘거나 무과 전시(武科殿試)의 사단(射壇)에서 활을 쏘는 것을 구경할 때 등에 사용하는 의장임. 전정(殿庭)의 반의장과 같음.
  • [註 222]
    천일(天日) : 임금을 가리킴.
  • [註 223]
    광악(廣樂) : 하늘의 음악.
  • [註 224]
    봉도(蓬島) : 신선이 산다는 곳.
  • [註 225]
    경파(瓊葩) : 옥(玉)과 같이 아름다운 꽃.
  • [註 226]
    빈아(豳雅) : 《시경(詩經)》의 빈풍(豳風) 칠월장(七月章)을 가리킨 것으로, 농사에 관한 것을 읊은 시임.
  • [註 227]
    기주(箕疇)의 복 : 기주(箕疇)는 《서경(書經)》 홍범(洪範)에 기자(箕子)가 연역(演譯)한 구주(九疇:아홉 가지 법)를 가리킨 것이고, 복은 거기서 말한 오복(五福)을 말한 것임.
  • [註 228]
    군자(君子) : 임금을 가리킴.
  • [註 229]
    팔풍(八風) : 팔방(八方)에서 부는 바람.
  • [註 230]
    육오(六鰲) : 동해(東海)에 있다는 여섯 마리 자라를 가리킨 것인데, 이 자라는 신오(神鰲)로 일컬어짐.
  • [註 231]
    선장(仙仗) : 임금 행차의 의장(儀仗).
  • [註 232]
    간책(簡策) : 역사책.
  • [註 233]
    광대(曠代) : 세상에 드묾.
  • [註 234]
    유지(宥旨) : 사령(赦令).
  • [註 235]
    을미년 : 1475 성종 6년.
  • [註 236]
    자궁(資窮) : 당하관(堂下官)의 품계(品階)로는 다시 더 올라갈 자리가 없는 것으로, 정3품 당하관이 된 것을 말함. 계궁(階窮).
  • [註 237]
    대가(代加) : 품계가 오를 사람이 경우에 따라 아들·사위·동생이나 조카들로 하여금 대신 그 품계를 받게 하는 일.
  • [註 238]
    사사(肆赦) : 죄인 사면.
  • [註 239]
    등극(登極) : 중국 황제의 즉위.
  • [註 240]
    분경(奔競) : 벼슬을 얻기 위하여 권문 세가(權門勢家)를 찾아다니며 엽관 운동(臘官運動)을 벌이던 일. 조선 때에는 이 분경의 금지를 법제화하였음.

○丁亥/上親祀先農, 至大次, 傳曰: "神位向背及拜位, 圖寫以啓。" 政院卽啓之。 傳曰: "還宮時, 當執圭歟否?" 禮曹判書柳輊啓曰: "圭所以通信於上下, 受朝賀、臨群臣、待天使時, 當執之矣。 還宮時, 則恐不必執也。" 傳曰: "親耕時釋圭受耒, 行五推禮。 訖, 卽於畦畝中還執圭, 於禮未穩, 退却釋圭處執圭, 何如?" 曰: "上敎允當。" 祭畢還大次, 平明行五推禮, 升觀耕臺觀耕。 月山大君 、領議政尹弼商、領敦寧尹壕行七推禮, 兵曹判書魚世謙、吏曹參判李約東、大司憲朴安性、司諫金諶等行九推禮。 訖, 奉常寺副正帥庶人, 以次耕百畝, 畢治畝者, 唱農歌。 治田畝畢, 奉常寺正捧穜穋之種播之。 訖, 上還大次。 傳曰: "祀先農, 慶事也。 且有頒赦前例, 其議于領敦寧以上。" 沈澮尹弼商尹壕僉議啓曰: "上敎允當。" 駕還, 耆老、儒生、女妓等以次獻歌謠。 其耆老歌謠曰: "禮樂百年而興, 蓋有待於今日。 諸侯九推而舍, 幸復覩其縟儀。 天地同懽, 臣民胥悅。 恭惟主上殿下, 挺天縱之聖, 握乾符而乘。 克儉克勤, 體夏禹之溝洫; 無淫無逸, 卽周文之康田。 方撫太平之無爲, 尙慮曠典之未擧。 念大事之在祀, 宜潔粢盛, 況小人之攸依, 敢後稼穡? 乃涓其吉, 惟孟之春。 設靑壇於東郊, 祈年孔夙; 服紺轅於南畝, 秉耒以耕。 群臣景從而趨蹌, 萬民雲集而觀聽。 祈豐年多黍多稌, 歌我庾如坻如京。 鑾輿載回, 幸遵皇道之蕩蕩; 天顔有喜, 咸仰白日之昭昭。 撰歌謠而列子衿之靑, 靑獻瑞圖而擁仙娥之簇簇。 如臣等優游壽域, 息偃春臺, 景迫桑楡, 恩獲霖於鶴髮。 壽獻嵩岳, 誠倍殫於蟻忱。 謹獻頌曰: 於皇我王, 允文允武, 作其卽位, 佑我大東。 曰燠曰寒, 惟風惟雨, 迄用康年, 有富無窶。 群黎百姓, 日用飮食, 王曰臣工, 各敬爾職。 在昔聖王, 所其無逸, 圖匱於豐, 惟穀之恤。 乃眷東郊, 厥土惟沃, 乃秉黛耜, 乃駕縹軛。 于以耕之, 于王之籍, 其種維何, 我稷我黍。 于以薦之, 于簠于簋, 神錫純嘏, 聖壽於萬。 玉趾一擧, 三農知勸, 以興嗣歲, 以開百室。 粒我烝民, 維王之極, 殷禮旣稱, 法駕言旋。 歡騰闤闠, 光動山川, 祥風披拂, 化日舒長。 黃童白叟, 蹈舞康莊, 顧惟臣輩, 傴僂羸尫, 扶携殘骨, 拭目休光。 望之如雲, 曰惟我后, 千秋萬歲, 作民父母。" 其儒生歌謠曰: "寅賓出日, 授時之政克修; 敬恭明神, 祈年之禮孔夙。 天步載旋於黃道, 輿頌謹獻於彤墀。 恭惟主上殿下, 哲、明、謨、烈。 禮樂追三代之盛, 禋祀不愆; 倉廩餘九年之儲, 粢盛已潔。 玆當驚蟄之閏月, 亦復用牲於東郊。 於昭重穀之誠, 丕顯先農之祀。 設庭燎而晣晣, 陳幣帛之戔戔。 駿奔靑壇, 袞衣耀, 籩豆之薦, 躬秉黛耜。 玉趾臨原濕之畇, 八蜡可通, 五禮咸穆。 五日風, 十日雨, 坐見時若之休; 千斯倉, 萬斯箱, 終協年豐之慶。 誕擧縟典, 允屬昌辰。 臣等俱以樸樕之資, 仰荷菁莪之化。 籍田獻賦, 才雖劣於岳祈; 擊壤騰謠, 情敢後於父老? 遂作頌曰: 明明我王, 臨下有赫。 昧爽丕顯, 夕惕若慄。 無輕民事, 所寶惟穀。 於維弘治, 元年閏月, 大開閶闔, 御于八極。 乃命春官, 乃頒號令。 號令維何? 聿修農政。 載諏吉日, 用祈豐年。 思樂東郊, 爰有公田, 我王戾止, 昭事先農。 駿奔傴僂, 嗟嗟臣工。 八音克諧, 享祀不忒, 祝有嘏言, 介爾景福。 我王曰嘻, 公卿百執, 惟天惟祖, 付予歷服。 國依於民, 民依於食, 民苟惰業, 君誰與足? 訓之導之, 是誠在我。 我其躬耕, 敢有違者? 爰降靈壇, 乃撫御耦。 太農撰器, 失喜噎嘔。 原濕龍鱗, 阡陌繡錯。 五推而舍, 其耕澤澤, 以供粢盛, 孝思維則。 天謂我王, 嘉乃勤民, 陰騭下民, 室家溱溱。 終爾千畝, 百穀咸殖。 四人成功, 汚萊乃闢。 天謂我王, 爾德馨香, 予何以錫? 降福將將。 曰雨而雨, 曰暘而暘, 多黍多稌, 豐年穰穰。 天謂我王, 嘉乃克敬, 保之佑之, 必有餘慶。 子子孫孫, 俾熾而昌, 毋曰予聖, 罔念作狂。 兢兢業業, 維我訓是式; 日新又新, 小心翼翼。 我王曰咨! 可畏匪天, 祗受厥命, 庶幾罔愆。 圖匱於豐, 思艱於逸, 念玆在玆, 服膺勿失。 大哉。 王言! 三韓之福, 撫我育我, 我后之德, 我歌且謠。 畫天摹日, 勒之金石, 昭示千億。" 其女妓歌謠曰: "禮重五推, 示下民以嗣以續; 嵩呼萬歲, 罄三韓誠忭誠欣。 草木增輝, 山川改色。 恭惟主上殿下, 中和育物, 剛健對時, 體周文康功, 田功肇稱先農、祀; 思夏禹庶食艱食, 尤勤重穀之心。 屬春令之載頒, 協吉日以爰啓。 紺轅黛耜, 駐天仗於靑郊; 玉輅金輿, 旋龍馭於紫陌。 祥風浩蕩, 化日舒長。 馳道肅鵷鷺之行, 法駕儼天日之表。 鈞天縹緲洋洋, 廣樂之九成; 蓬島參差簇簇, 瓊葩之幾朶。 誰言太平之無象, 始信至治之惟馨。 玆曠代之罕聞, 實當今之幸見。 妾等叨塵法部, 獲際昌辰, 載賡豳雅之歌, 會見曾孫之多稼。 願享箕疇之福, 倍祝君子之萬年。 不度荒詞, 上進口號: 鑾輿回駕自東坰, 祗祓靑壇慶禮成。 萬姓同懽千載會, 四方多稼八風淸。 六鰲屭贔迎仙仗, 雙鶴蹁躚下彩旌。 最幸此身瞻盛事, 喜將歌舞賀昇平。" 上入自弘化門, 御明政殿, 受群臣賀, 仍頒赦。 其賀箋曰:

惟聖人爲能饗祭, 盡四時之誠。 自天子莫非耕躬, 秉五推之禮, 事光簡策, 喜溢臣民。 恭惟主上殿下, 文思協, 聰明齊, 撫萬機而南面, 奉宗廟社稷之神。 籍百畝於東郊, 供御廩粢盛之潔, 肇稱曠代之令典, 用示後嗣之良規。 伏念臣等, 幸際昌辰, 獲覩美擧。 山則高, 海則廣, 助雖乏於涓埃; 日之昇, 月之恒, 心常祝於壽考。

其赦文曰:

欽天授時, 報田功於黎庶; 祈年䘏祀, 薦孝思於粢盛。 終古以還, 以斯爲美。 予以寡德, 嗣守丕基, 事宜講而不修, 己雖勞而必擧, 務農之政, 旰食于玆。 然以菲薄之資, 尙阻窮旻之祐, 歲或不熟, 民乃厄飢。 屬玆三陽布和, 萬物資始, 復循古典, 親祀先農。 禮旣成於五推, 年竚登於百穀。 人將竝受其福, 予豈獨享其休? 宜推作解之仁, 以敷在宥之澤。 自今閏正月二十二日昧爽以前, 盜及關係綱常外, 徒以下, 已發覺未發覺, 已結正未結正, 咸宥除之。 敢以宥旨前事相告言者, 以其罪罪之。 於戲! 勸民力業, 予一人先知稼穡之艱, 滌瑕行恩, 俾萬姓均蒙雨露之渥。 依乙未年例, 諸執事資窮者代加, 未資窮者各加一資。

前此, 司憲府持平成世明來啓曰: "伏聞將肆赦。 古人有云: ‘赦者, 小人之幸。’ 今後親祀先農, 自成例事, 豈可祭則必赦乎? 況天使之來, 必不得已頒赦, 赦豈可如是其數乎? 請勿頒赦。" 傳曰: "如此慶事, 豈可無赦? 且天使之來, 頒赦何可必也?" 世明更啓曰: "諸葛亮, 赦不妄下, 至今以爲美談, 赦不可輕下。" 傳曰: "在前, 登極詔書之來頒赦, 自有常例乎? 其問于承文院提調。" 提調等啓曰: "臣等未能記憶, 考院謄錄爲便。" 獨李瓊仝啓曰: "若以賀登極頒赦, 則初聞登極, 卽當頒赦, 豈待天使之來而頒之? 詔書雖有頒赦之語, 海外豈與海內同哉?" 傳曰: "瓊仝之言果是矣。 其以此語世明。" 世明又啓曰: "臣聞執事加資事。 今執事者, 非曾經吏曹郞官, 卽是宰相子弟, 希望資級, 求請執事。 士風不美, 莫甚於此。 今若果如其望, 則後日之奔競, 有甚於今日。 請重惜爵賞, 磨礪士風。" 不聽。


  • 【태백산사고본】 32책 212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301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농업-권농(勸農) / 사법-행형(行刑) / 어문학-문학(文學) / 인사-관리(管理) / 정론-간쟁(諫諍) / 풍속-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