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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11권, 성종 19년 1월 6일 신축 3번째기사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예조 정랑 김응기가 음악을 사용하는 예에 대해 아뢰다

예조 정랑(禮曹正郞) 김응기(金應箕)가 당상(堂上)의 의논을 가지고 와서 아뢰기를,

"《오례의(五禮儀)》의 왕세자 납빈의(王世子納嬪儀)에, ‘납채(納采)·납징(納徵)·고기(告期)·책빈(冊嬪)·초계(醮戒)를 하고 악기(樂器)는 진열해 놓기만 하고 연주하지 않으며, 백관(百官)을 모아 놓고는 악기는 비치만 해놓고 연주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경진년004) 의궤(儀軌)에는, 납징(納徵)·책빈(冊嬪)·초계(醮戒)를 하고 백관(百官)이 하례(賀禮)를 하며, 명부(命婦)005) 가 양전(兩殿)에게 하례하고 상수(上壽)할 적에 모두 음악을 사용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떤 예(禮)에 의거하여 시행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전교(傳敎)하기를,

"무릇 혼인(婚姻)할 적에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예조(禮曹)와 홍문관(弘文館)으로 하여금 예전의 제도를 고찰하여 아뢰게 하라."

하니, 홍문관에서 아뢰기를,

"《예기(禮記)》 증자문(曾子問)에, ‘아내를 맞이하는 집에서 3일 동안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것은 어버이 계승함을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주(註)에 이르기를, ‘어버이 계승함을 생각하면 슬픈 감회가 없을 수 없으므로 음악을 연주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서(晉書)》 예지(禮志)에, 대부(臺符)가 묻기를, 황후(皇后)의 대가(大駕)를 맞이하는데, 마땅히 고취(鼓吹)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니, 그 때 왕표지(王彪之)가 ‘혼례(婚禮)에는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것인데, 고취(鼓吹)도 음악의 총명(摠名)이니, 지금 마땅히 설치만 해놓고 연주는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당시에 그 의논을 채택하였습니다. 또 《당서(唐書)》 예악지(禮樂志)의 황태자납비의(皇太子納妃儀)에, ‘고취(鼓吹)는 진열만 하고 연주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예기》에서 ‘아내를 맞이하는 집’이라고 한 것은 그 부모를 가리킨 것이 아니고 다만 아내를 맞이하는 자를 가리킨 것이다. 또 《진서》의 황후(皇后)를 맞이하는 일은 황제(皇帝)가 스스로 황후를 맞이하는 일이니, 모두 지금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승정원(承政院)·예조(禮曹)·홍문관(弘文館)에서 심의(審議)하여 아뢰라."

하였다. 홍문관에서 다시 서계(書啓)하기를,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옛사람은 이 대례(大禮)를 중하게 여기고 그 일을 엄숙하게 여겨 음악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고, 3일 이후에 연락(宴樂)을 함은 예(禮)를 마쳤기 때문인데, 이렇게 보면 혼례에 음악을 쓰지 않음은 단순하게 어버이를 계승하기 때문만이 아니고 그 예(禮)를 중하게 여김이다.’ 하였고, 사마 온공(司馬溫公)006) 도 ‘혼례에 음악을 사용함은 잘못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의 의견으로는 음악을 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예조(禮曹)에서 서계(書啓) 하기를,

"삼가 고찰하건대, 《예기》 증자문에 ‘아내를 맞이하는 집에서 3일 동안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것은 어버이 계승하기를 생각함이다.’라고 하였고, 선유(先儒)들이 이를 해석하기를, ‘아내를 맞이하여 그 어버이를 계승하는 것은 바로 어버이와 대사(代謝)007) 관계이므로 슬픈 감회가 복받쳐서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부모된 자가 또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음악을 연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역대(歷代)의 역사를 고찰하고 본조(本朝)의 고제(古制)와 《오례의(五禮儀)》를 참고하더라도, 음악은 모두 비치만 하고 연주는 하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예경(禮經)》에 의하여 조절한 것입니다. 본조(本朝)에서 경진년(庚辰年)에 음악을 쓴 뜻은 어떤 예문(禮文)에 의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번의 왕세자(王世子) 가례(嘉禮) 때에는 옛 제도에 의하여 비치만 하고 연주하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승정원(承政院)에서 여럿이 아뢰기를,

"옛 제도에서 혼례(婚禮)에 음악을 쓴다는 글이 없으니, 3일 안에는 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3일 후에 하례를 받을 때 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어버이가 죽은 자가 아내를 맞이하면 마땅히 그 어버이를 계승할 것을 생각해야 하므로 음악을 연주하지 않겠지만, 지금 나는 아직 살아 있으니 음악을 쓴들 무엇이 잘못이겠는가? 또 경진년(庚辰年)에 음악을 쓴 것이 어찌 근거가 없었겠느냐? 이것을 가지고 의정부(議政府)와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상의하도록 하라."

하였다. 심회(沈澮)·윤필상(尹弼商)·홍응(洪應)·이극배(李克培)·윤호(尹壕)·이철견(李鐵堅)·신승선(愼承善)은 의논하기를,

"증자문(曾子問)에, ‘아내를 맞이하는 집에서 3일 동안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것은 어버이 계승하기를 생각함이다.’라고 하였는데, 대개 아내를 맞이하여 그 어버이를 계승하게 되면 이는 세대(世代)가 대사(代謝)하는 것이므로 인정(人情)으로서 슬픈 감회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은 생(生)과 사(死)의 관계를 통틀어서 한 말입니다. 《당서(唐書)》 예악지(禮樂志) 황태자 납비의(皇太子納妃儀)에 ‘고취(鼓吹)는 비치만 하고 연주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비록 그 이유는 말하지 아니하였으나 역시 어버이를 생각하는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조정(朝廷)의 예(禮)는 옛글에 의해 시행하고, 양전(兩殿)에게 상수(上壽)할 경우에는 임시로 음악을 사용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경진년(庚辰年) 가례(嘉禮) 적에도 백관(百官)의 회례연(會禮宴)은 거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원일(元日)008) 에 이미 시행하였으니, 이번에는 정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손순효(孫舜孝)는 의논하기를,

"혼례에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것은 어버이 계승하기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납채(納采)·납징(納徵)·고기(告期) 적에 이미 음악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책빈(冊嬪)·초계(醮戒) 때에만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아마도 예문(禮文)에 어긋날 것 같습니다. 다만 증자문(曾子問)에 ‘3일 동안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3일 후에 연락(宴樂)을 함은 예를 마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혼례를 마친 뒤에는 백관이 진하(陳賀)를 하는데, 3일 안에 음악을 사용함은 옛사람의 논의에 어긋날 듯합니다. 그러나 위로 양대비전(兩大妃殿)이 계시고, 또 세조(世祖)께서 가례 때에 음악을 사용하였으니, 신(臣)의 의견으로는, 백관의 하례를 받을 적에 권도(權道)를 따라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책비(冊妃)·친영(親迎)할 적에는 음악을 연주하지 말고, 백관의 회례연(會禮宴)도 없애고, 가례(嘉禮) 후 양전(兩殿)에 진연(進宴)할 때 음악을 쓰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21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280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역사-고사(故事) / 예술-음악(音樂)

  • [註 004]
    경진년 : 1460 세조 6년.
  • [註 005]
    명부(命婦) : 내명부(內命婦)와 외명부(外命婦)의 아울러 일컬음. 내명부는 궁중(宮中)에서 봉사하는 여관(女官)으로서 품계(品階)를 가진 자이고, 외명부는 종친(宗親)의 여자와 처(妻), 문·무관(文武官)의 처로서 봉작(封爵)을 받은 자의 일컬음.
  • [註 006]
    사마 온공(司馬溫公) : 이름은 광(光).
  • [註 007]
    대사(代謝) : 새것이 와서 묵은 것을 대신함.
  • [註 008]
    원일(元日) : 정월 초 하룻날.

○禮曹正郞金應箕將堂上議來啓曰: "《五禮儀》王世子納嬪儀, 納采、納徵、告期、冊嬪、 醮戒, 樂陳而不作, 會百官, 樂備而不作。 庚辰年儀軌內, 納徵、冊嬪、醮戒、百官賀、命婦賀、兩殿上壽, 竝用樂。 今據何禮行之?" 傳曰: "凡婚姻, 不用樂者何歟? 令禮曹及弘文館考古制以啓。" 弘文館啓: "《禮記》 《曾子問》: ‘娶婦之家, 三日不擧樂, 思嗣親也。’ 註云: ‘思嗣親, 則不無感傷, 故不擧。’ 《晉書》 《禮志》: ‘臺符問: 「迎皇后大駕, 應作鼓吹不?」 王彪之以爲婚禮不樂。’ 皷吹亦樂之摠名, 今宜備設而不作, 時用此議。 《唐書》 《禮樂志》皇大子納妃儀, 鼓吹陳而不作。" 傳曰: "記云聚婦之家云者, 非指其父母, 但指娶婦者耳。 且《晋書》迎皇后事, 則皇帝自迎皇后之事, 皆不合於今時。 承政院、禮曹、弘文館審議以啓。" 弘文館更書啓: "程子曰: ‘古人重此大禮, 嚴肅其事, 不用樂也。 三日而後宴樂, 禮畢也。’ 以此而觀, 婚禮之不用樂, 非徒爲嗣親也, 重其禮耳。 司馬溫公亦以婚禮用樂爲非。 臣等之意, 不用樂爲便。" 禮曹書啓: "謹按《禮記》 《曾子問》: ‘娶婦之家, 三日不擧樂, 思嗣親也。’ 先儒釋之曰: ‘取妻以嗣續其親, 則是親之代謝, 所以感傷而不擧樂也。’ 以此觀之, 則爲父母者, 亦不可恝然擧樂也。 稽諸歷代之史, 參考本朝古制及五禮儀, 其樂皆備而不作, 是皆據禮經爲之節文也。 若本朝庚辰年用樂之義, 則未知據何禮文。 今王世子嘉禮時, 依古制備而不作何如?" 承政院僉啓曰: "古制婚禮無用樂之文, 三日之內則不用宜矣。 三日後受賀時, 用之何如?" 傳曰: "親沒者娶婦, 則當思其嗣親, 故不擧樂。 今予尙在, 用樂何妨? 且庚辰年用樂, 豈無所據乎? 以此收議于政府、領敦寧以上。" 沈澮尹弼商洪應李克培尹壕李鐵堅愼承善議: "《曾子問》: ‘娶婦之家三日不擧樂, 思嗣親也。’ 大抵娶妻以嗣續其親, 則是世次代謝, 人情不無感傷, 通於存沒而言。 《唐書》 《禮樂志》皇太子納妃儀, 皷吹備而不作, 雖不言其故, 亦不過思嗣親之(之)義也。 朝廷之禮, 依古文施行; 若兩殿上壽, 權用樂無妨。 庚辰年嘉禮, 百官會禮宴亦不擧行。 且元日已行, 今次停之何如?" 孫舜孝議: "婚禮不擧樂, 思嗣親也。 納采、納徵、告期旣不用樂, 冊嬪、醮戒獨用樂, 恐違禮文。 但《曾子問》三日不擧樂, 程子曰: ‘三日而宴樂, 禮畢也。’ 婚禮旣畢後, 百官陳賀, 在三日內用樂, 似違古人之論。 然上有兩大妃殿, 且世祖於嘉禮用樂, 臣意謂受百官賀時, 從權用樂爲便。" 傳曰: "冊妃、親迎, 勿擧樂, 除百官會禮宴。 嘉禮後兩殿進宴, 用樂可也。"


  • 【태백산사고본】 32책 21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280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역사-고사(故事) / 예술-음악(音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