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10권, 성종 18년 12월 26일 신묘 1번째기사
1487년 명 성화(成化) 23년
외방에 사람을 파견하여 학교를 살피게 하다
승정원(承政院)에 전교(傳敎)하기를,
"예전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농상(農桑)과 학교(學校)에 불과하였다. 근래에 경중(京中)의 학교가 쇠퇴하여 성균관(成均館)에는 학문에 힘쓰는 선비가 없는데 하물며 외방(外方)이겠는가? 농상(農桑)은 없는 곳이 없지만, 학교는 비록 고을마다 설치한다고 해서 어찌 모두 학문을 일으키는 방법을 다하는 것이겠는가? 이에 사람을 보내어 살펴보고자 한다."
하고, 드디어 추첨(抽籤)해서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 이승건(李承健)을 전주(全州)에, 이의무(李宜茂)를 밀양(密陽)에, 부교리(副校理) 박승약(朴承爚)을 풍기(豊基)에, 부수찬(副修撰) 민상안(閔祥安)을 연기(燕岐)에 나누어 보내었다. 도승지(都承旨) 송영(宋瑛)이 아뢰기를,
"연기(燕岐)는 피폐한 고을이므로 유생(儒生)으로서 학교에 나아가고 천업(賤業)을 버릴 자는 반드시 적을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비단 학교뿐만 아니라 또한 칠사(七事)1279) 가 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210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278면
- 【분류】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1279]칠사(七事) : 수령(守令)이 고을을 다스리는 데 힘써야 할 일곱 가지 일. 즉 농상성(農桑盛)·호구증(戶口增)·학교흥(學校興)·군정수(軍政修)·부역균(賦役均)·사송간(詞訟簡)·간활식(姦猾息)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