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05권, 성종 18년 7월 30일 정묘 2번째기사
1487년 명 성화(成化) 23년
동지중추부사 홍이로와 계성군 이양생이 경기와 황해도의 강무의 주필 장소를 아뢰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홍이로(洪利老)와 계성군(雞城君) 이양생(李陽生)이, 경기(京畿)와 황해도(黃海道)에 강무(講武)할 때 주필(駐蹕)771) 할 곳을 가서 살펴보고, 회계(回啓)하기를,
"지나가는 땅에는 콩과 서속이 들을 덮었는데, 짐승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으니, 이로써 금수(禽獸)가 번성하지 못한 것을 알겠습니다."
하니,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황해도에는 본래부터 금수가 많다고 일컬었고 관찰사(觀察使)도 또한 사냥할 만하다고 일렀는데, 지금 홍이로 등이 짐승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와서 아뢰니, 이는 반드시 조정(朝廷)에서 바야흐로 이 도에는 장기(瘴氣)가 있어 강무하기에 마땅치 않다고 논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무리들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두려워하여 이렇게 아뢰었을 것이다. 그들을 헌부(憲府)에 내리어 추국(推鞫)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205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235면
- 【분류】군사-병법(兵法)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註 771]주필(駐蹕) : 임금이 머물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