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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200권, 성종 18년 2월 10일 경진 4번째기사 1487년 명 성화(成化) 23년

동지사 김종직이 《동국여지승람》의 묘호를 시호로 고치지 말 것을 아뢰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동지사(同知事) 김종직(金宗直)이 아뢰기를,

"신 등이 《여지승람(輿地勝覽)》을 교정하였는데, 태조(太祖) 이래로 모두 묘호(廟號)를 일컬었는데, 이제 시호(諡號)로 고쳐 쓰도록 명하셨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고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대로 두는 것도 무방할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의 일이 중국 조정에 마땅히 휘(諱)할 것이 자못 많아서 갑자기 고치기는 어려우나, 이는 책에 써서 만세에 전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고치려고 하는 것인데, 경의 말이 그대로 두어도 무방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자, 김종직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 서적(書籍)에 마땅히 휘(諱)할 것이 많은데, 어찌 능히 다 고칠 수 있겠습니까?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신라(新羅) 무열왕(武烈王)을 태종(太宗)이라고 일컬었습니다. 당(唐)나라 무후(武后)가 보고서 꾸짖기를, ‘천자(天子)가 태종(太宗)이라고 일컬었는데, 너희가 어찌하여 참람되게 일컫느냐?’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무열왕(武烈王)이 어진 신하 김유신(金庾信)의 무리를 얻어서 삼국(三國)을 통합하였기 때문에 태종이라고 일컫습니다.’라고 하니, 무후가 그대로 두고 묻지 아니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전조(前朝)155) 에서는 중국 조정에 크게 휘(諱)할 것을 거리낌없이 일컬었으니, 이것이 어찌 옳겠는가?"

하니, 김종직이 아뢰기를,

"전조 때에는 혹은 연호(年號)를 일컫기도 하고 혹은 황제(皇帝)라고 일컫기도 하였으니, 이는 모두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홍문관(弘文館)의 뜻은 어떠한가?"

하니, 시독관(侍讀官) 이승건(李承健)과 검토관(檢討官) 성희증(成希曾)이 아뢰기를,

"신들도 고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200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188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역사-편사(編史) / 역사-전사(前史) / 출판-서책(書冊) / 외교-명(明)

○御晝講。 講訖, 同知事金宗直啓曰: "臣等校《輿地勝覽》, 太祖以下皆稱廟號。 今命改書諡號, 臣意以爲改之不難, 然仍之亦無妨也。" 上曰: "我國之事, 於中朝所當諱者頗多, 難可遽革。 此則筆之於書, 垂諸萬世者, 故予欲改之。 卿言仍之無妨者, 何意耶?" 宗直曰: "我國書籍所當諱者多, 何能盡改乎? 《三國遺史》新羅 神武王太宗, 武后見而責之曰: ‘天子稱太宗, 爾何僭稱歟?’ 對曰: ‘神武王得賢臣(金庾臣)〔金庾信〕 輩而統合三國, 故稱太宗。’ 武后置而不問。" 上曰: "前朝於中朝所大諱者稱之無忌, 是豈可乎?" 宗直曰: "前朝之時, 或稱年號, 或稱皇帝, 是皆失之甚者也。" 上曰: "於弘文館意何如?" 侍讀官李承健、檢討官成希曾啓曰: "臣等亦以謂改之爲便。"


  • 【태백산사고본】 30책 200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188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역사-편사(編史) / 역사-전사(前史) / 출판-서책(書冊)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