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문원 교리 유양춘이 윤대에서 성덕을 기르는 것 등의 강령을 아뢰다
승문원 교리(承文院校理) 유양춘(柳陽春)이 윤대(輪對)에서 이르기를,
"그 강령(綱領)이 되는 것이 일곱 가지 있으니, 성덕(聖德)을 기르는 것과 정체(政體)를 세우는 것과 농정(農政)을 닦는 것과 학교를 일으키는 것과 예악(禮樂)을 숭상하는 것과 형정(刑政)을 밝히는 것과 군무(軍務)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조목(條目)이 되는 것이 스물 여덟 가지 있습니다. 이른바 좌우에 명(銘)118) 을 두는 것은 성덕을 기르는 조목입니다. 의정부에서 항상 출좌(出坐)119) 하여 체통(體統)을 세우는 것과 정조(政曹)120) 에서 무릇 사람을 쓰는 데에 반드시 성균관(成均館)의 치부(置簿)를 상고한 뒤에 등용을 허락할 것과 모든 직사(職司)는 연종(年終)에 한 번 전최(殿最)121) 할 것과 여러 도(道)에 사신을 보내지 말고 그 지방의 임무를 전담하게 하며 어사(御史)만 보내어 검찰하게 할 것 등의 이 네 가지는 정체(政體)를 세우는 조목입니다. 빈풍시(豳風詩)122) 를 그림으로 그려서 농월(農月)마다 두고 보도록 하기를 청하며, 사농시(司農寺)를 세워서 농사를 권장하는 정책을 세우기를 청하며, 백성의 숨은 고통을 캐어 물어서 곡진히 존휼(存恤)을 더하시기를 청하니, 이 세 가지는 농정(農政)을 닦는 조목입니다. 외방(外方)에 사표(師表)의 직임(職任)을 가려서 임명하기를 청하며, 과거(科擧)에 나아가는 격식(格式)을 정하기를 청하며, 문신(文臣)에게 강습[肄業]하는 절차를 정하기를 청하니, 이 세 가지는 학교를 일으키는 조목입니다. 무릇 연향(宴享)에 아악(雅樂)을 쓰고 여악(女樂)을 쓰지 말기를 청하며, 반열(班列)의 시복(時服)은 예전의 관례대로 오로지 검은 빛깔만 쓰도록 하기를 청하며, 종실(宗室)의 혼례(婚禮)를 제정하기를 청하며, 검약(儉約)을 힘쓰게 하고 선비의 풍습을 바로잡도록 청하니, 이 네 가지는 예악(禮樂)을 숭상하는 조목입니다. 형조 당상관(刑曹堂上官)은 모름지기 구임(久任)하도록 하여 그 직무에 밝게 하기를 청하며, 무릇 억울함을 호소하는 데 관한 것은 다른 사(司)로 옮겨서 분간(分揀)하게 하기를 청하며, 도둑을 잡는 법을 곡진히 더 거듭 밝혀서 그 근원을 다스리게 하기를 청하니, 이 세 가지는 형정(刑政)을 밝히는 조목입니다. 군졸을 권징(勸懲)하는 절차를 세우시기를 청하며, 쓸모 없는 군사를 추려서 농사지으러 돌아가게 하기를 청하며, 수군(水軍)은 바다 연변에 사는 사람으로 먼저 충당하여 정하기를 청하며, 거관(去官)하여 산관(散官)이 된 군사는 따로 위(衛)의 이름을 세워서 적(籍)을 만들고 정병(正兵)에 속하지 말도록 하기를 청하며, 주현(州縣) 관아의 군기(軍器)는 진법(陣法)을 연습할 때마다 수련(修鍊)하게 하기를 청하며, 무과(武科)는 정액(定額)에 구애하지 말고 시험해 뽑아서 장수가 될만한 인재를 미리 기르도록 하기를 청하며, 병마 절도사(兵馬節度使)·수군 절도사(水軍節度使)의 요좌(僚佐)는 문신(文臣)으로서 무재(武才)가 있는 자를 참작하여 쓰게 하기를 청하며, 남쪽 지방 요해지(要害地)의 변경 고을에 큰 진(鎭)을 설치하고 인하여 왜선(倭船)의 크고 작은 세견선(歲遣船)의 수(數)를 정하기를 청하며, 남·북 두 변경의 방어하는 절차를 조목을 들어 세우기를 청하니, 이 여덟 가지는 군무(軍務)를 다스리는 조목입니다."
하였는데, 명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의논하게 하였다. 한명회(韓明澮)는 의논하기를,
"유양춘이 윤대(輪對)한 바의 조건(條件)은 마땅히 조정의 성립된 법을 변경한 뒤에야 행할 수 있으니, 어찌 한 사람의 구구(區區)한 작은 소견을 모두 취하여 어지럽게 고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한 가지 법을 세우면 한 가지 폐단이 생기는 것은 고금의 공통된 병폐인데, 옛사람이 이른바, ‘열 배의 이로움이 아니면 법을 변경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실로 이러한 까닭입니다."
하고, 심회(沈澮)는 의논하기를,
"제11조의 외방(外方)의 사표(師表)를 골라서 임명하는 것과 제21조의 군졸을 권징(勸懲)하는 절차와 제27조의 수군 절도사의 요좌(僚佐)는 문신으로서 무재(武才)가 있는 자를 참작해 쓰는 것과 제28조의 남·북 지방 방어 등의 일을 거행하는 절목(節目)은 해당 관사로 하여금 의논해서 아뢰게 한 뒤에 다시 의논하도록 하소서."
하였으며, 윤필상(尹弼商)은 의논하기를,
"유양춘의 윤대(輪對)는 모두 법을 변경하는 일인데, 나라의 법령은 자세히 갖추어져 있지만 받들어 행하는 것이 지극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 가운데 정체(政體)를 세워야 한다는 첫째 조목이 더욱 옳지 못합니다. 〈명(明)나라〉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가 천하를 차지하자 맨먼저 도성(都省)123) 을 없앴고, 우리 세조(世祖)께서도 즉위하자 또한 서사(署事)를 파하셨으니, 그 뜻은 반드시 까닭이 있는 것입니다. 의정부 서사는 비록 예(例)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임금이 정무에 싫증이 난 뒤의 일이며 오늘날에 말할 바가 아닙니다. 기타 강목(綱目)도 거행하기 어렵습니다."
하고, 홍응(洪應)은 의논하기를,
"이제 유양춘의 윤대한 말을 보건대, 그 성덕(盛德)을 기르는 데에는 좌우명(左右銘)을 두어야 한다고 하였고, 농정(農政)을 닦는 데에는 빈풍시(豳風詩)를 그림으로 그려야 한다고 한 것은 비록 문구(文具)124) 와 같다 하더라도 요(堯) 순(舜)·삼왕(三王)의 일로써 항상 깨우치고 살피면 유익함이 없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의 고통을 살펴서 존휼(存恤)하는 생각을 더해야 한다는 것과 선비의 풍습을 고쳐서 검약하는 풍속을 두터이 해야 한다는 등의 일은 마음을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기타의 조건은 행하려면 옛법에 방해됨이 있고 베풀려면 사정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니, 모두 이미 진부한 말이고 행하기 어려운 계책입니다. 다만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잊지 못하여 7강령(綱領) 28조목(條目)을 간절히 아뢰기에 이르렀으니, 예(例)에 따라 대답하면서 겨우 한 마디 말을 진술하고 물러가는 자와는 얼마나 거리가 멉니까?"
하였으며, 이극배(李克培)는 의논하기를,
"유양춘의 윤대(輪對)에 이른바, 좌우명(左右銘)을 두고 빈풍시(豳風詩)를 그려야 한다는 것은 비록 옛사람이 이미 행한 묵은 자취라고 하더라도 만약 항상 깨우치고 살피기를 더하면 보탬이 없지 아니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역시 문구(文具)가 될 뿐입니다. 백성의 고통을 묻고 선비의 풍습을 고쳐야 한다는 두 가지는 왕정(王政)의 마땅히 먼저 할 바이며 국가에서 마땅히 유의(留意)하여야 할 바입니다. 기타 조건은 한갓 번거로운 글일 뿐 실속이 없어서 옛법에 방해됨이 있으니 시행할 수 없습니다."
하고, 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성덕(聖德)을 기르는 제1조의 좌우에 명(銘)을 두는 일은 바로 옛 제왕(帝王)이 이미 행한 하나의 일이며, 농정(農政)을 닦는 제1조의 빈풍시를 그려서 두고 보는 일은 또한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무일(無逸)125) 을 그린 뜻인데, 성덕을 기르고 농정을 닦는 데에 비록 오로지 여기에만 의뢰할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한가한 시간에 작은 도움이 없지 아니할 것입니다. 예악을 숭상하는 제1조의 여악(女樂)을 쓰지 말라는 일은, 여악은 바로 방중(房中)의 음악인데 정전(正殿) 및 왜인(倭人)의 연향(宴享)에는 마땅하지 않으니, 조종조(祖宗朝)의 예(例)에 의하여 가면 무동(假面舞童)을 쓰도록 하소서. 제2조의 시복(時服)에 오로지 검은 빛깔을 쓰는 일은 사방의 풍속이 같지 아니한데, 중국 조정에서 숭상하는 바를 모두 따를 필요는 없으나, 다만 중국 조정의 승도(僧徒)는 다갈색(茶褐色)을 입고 기공(伎工)은 초록색을 입으며, 조사(朝士)는 한 사람도 이 두 가지 빛깔로 겉옷을 만드는 자가 없으니, 중국 사신이 올 때에는 입지 말게 하소서. 나머지 여러 가지 조목은 혹은 옛일에 구애되고 시의(時宜)에 맞지 않으며 혹은 사정과 멀리 떨어져서 형세가 행할 수 없습니다. 대저 이루어진 법을 모두 변경하고 옛법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거행(擧行)할 수 없습니다."
하였는데,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이 여러 의논을 분류하여 강목(綱目) 밑에 써서 보기에 편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199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18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정론(政論) / 행정(行政) / 농업-권농(勸農) / 교육(敎育) / 의생활-예복(禮服) / 사법(司法) / 군사-군정(軍政) / 인사(人事) / 예술(藝術) / 풍속-풍속(風俗)
- [註 118]명(銘) : 자기 자신을 경계하는 글.
- [註 119]
출좌(出坐) : 출근.- [註 120]
정조(政曹) : 이조와 병조.- [註 121]
전최(殿最) : 전조(銓曹)에서 도목 정사(都目政事)를 할 때 각 관사의 장(長)이 관리의 근무 성적을 상·하로 평정하던 법. 상이면 최(最), 하이면 전(殿)이라 한 데에서 나온 말로, 매년 6월 15일과 12월 15일 두 차례에 걸쳐 시행하였음.- [註 122]
빈풍시(豳風詩) : 《시경》의 빈풍 칠월장(七月章).- [註 123]
○庚午/承文院校理柳陽春輪對, 爲綱者七, 養聖德也, 立政體也, 修農政也, 興學校也, 崇禮樂也, 明政刑也, 治軍務也。 爲目者二十八, 所謂左右置銘者, 養聖德之目也。 議政府常坐以立體統, 政曹凡用人, 必稽成均館置簿, 方許登庸, 凡職司年終一殿最, 諸道勿數遣使, 以專方面之任, 只遣御史檢察, 此四條, 立政體之目也。 請圖《豳風詩》每農月留覽, 請建司農寺以擧勸農之政, 請究問民隱, 曲加存恤, 此三條, 修農政之目也。 請擇授外方師表之任, 請定赴擧格式, 請更定文臣肄業節次, 此三條, 興學校之目也。 請於凡宴享用雅樂, 勿用女樂, 請於班列時服, 依舊例專用黑色, 請定宗室昏禮, 請敦儉約以正士習, 此四條, 崇禮樂之目也。 請刑曹堂上須久任以明其職, 凡干冤訴請移他司分揀, 請捕盜之法, 曲加申明仍理其源, 此三條, 明政刑之目也。 請擧軍卒勸懲節次, 請汰冗兵以歸農, 請水軍以沿海居人, 爲先充定, 請去官作散軍士, 別立衛名成籍, 勿屬正兵, 請州縣官軍器, 每於習陣修鍊, 請武科不拘定額試取, 預養將才, 請兵馬水軍節度使僚佐, 以文臣有武才者參用, 請於南方要害邊郡設巨鎭, 仍定倭船大小歲遣之數, 請條擧南北二邊防禦節次, 此八條, 治軍務之目也。 命議于領敦寧以上。 韓明澮議: "柳陽春所對條件, 當變更朝廷成法而後可行, 豈可以一人區區小見, 盡取而紛更之也? 況一法立一弊生, 古今通患, 古人所謂 ‘利不什, 不變法’ 良以此也。" 沈澮議: "第十一條擇授外方師表之任、第二十一條軍卒勸懲節次、第二十七條水軍節度使僚佐, 以文臣有武才者參用、第二十九條南北防禦等事擧行節目, 令該司議啓後更議。" 尹弼商議: "陽春輪對, 皆是變法之事, 法令詳備, 但奉行未至耳。 其中立政體第一目, 尤爲不可。 太祖高皇帝得天下, 首革都省, 我世祖卽位, 亦罷署事, 其意必有以也。 政府署事雖曰有例, 乃人主倦勤以後之事, 非今日所宜言也。 其他綱目, 亦難擧行。" 洪應議: "今觀陽春之對,其養聖德曰置左右之銘, 修農政曰圖《豳風》詩者, 雖若文具, 然以堯、舜、三王之事常警省, 不爲無益也。 至於究民瘼曲加存恤之念、革士習以敦儉約之風, 此等事不可不留意焉。 其他條件, 行之則有妨於舊章, 施之則亦迂於事情, 皆已陳之說、難行之策。 獨其爲人爲國眷眷之心, 至於七綱二十八目之懇到, 其與隨例上對僅述一言, 而退者一何遠也?" 李克培議: "柳陽春輪對所謂置左右銘、圖《豳風詩》者, 雖古人已行之陳迹, 若常加警省, 則不爲無益, 不然則亦徒爲文具而已。 如問民恤、革士習二條, 王政之所當先, 而國家之所當留意者也。 其他條件, 徒繁文無實, 有妨舊章, 不可施行。" 盧思愼議: "養聖德第一條左右置銘事。 乃古昔帝王已行之一事, 修農政第一條圖《豳風》留覽事, 亦玄宗 《無逸》有圖之意。 涵養聖德, 修擧農政, 雖不專賴於此, 燕閑之間不無少補。 崇禮樂第一條勿用女樂事, 女樂乃房中之樂, 用於正殿及倭人宴享,則非宜也。 依祖宗朝例, 用假面舞童。 第二條時服專用黑色事, 四方風俗不一, 不須盡從中朝所尙。 但中朝僧徒服茶褐、伎工服草綠, 朝士無以此二色爲表衣者, 天使來時, 勿令穿着。 餘外諸條, 或泥於古事而不合時宜, 或迂闊事情而勢不可行。 大抵皆變更成法, 紛亂舊章, 不可擧行。" 傳于承政院曰: "以諸議分類, 書于綱目之下, 使便觀覽。"
- 【태백산사고본】 30책 199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18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정론(政論) / 행정(行政) / 농업-권농(勸農) / 교육(敎育) / 의생활-예복(禮服) / 사법(司法) / 군사-군정(軍政) / 인사(人事) / 예술(藝術) / 풍속-풍속(風俗)
- [註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