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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97권, 성종 17년 11월 10일 신해 2번째기사 1486년 명 성화(成化) 22년

대사헌 이경동 등이 충청도의 연분 등급을 더하지는지 여부 등을 의논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을 강(講)하다가 후당 명종기(後唐明宗紀)에, 풍도(馮道)가 말하기를, ‘신(臣)이 중산(中山)에 사명(使命)을 받들고 갈 적에 정경(井陘)의 험한 곳을 지나면서 신은 말이 넘어질 것을 근심하여 고삐를 잡고 매우 조심하였더니, 실수가 없었는데, 평지에 이르러서는 고삐를 놓고 스스로 방심하였더니, 갑자기 넘어지는데 이르렀습니다.’ 한 데에 이르러, 영사(領事) 홍응(洪應)이 아뢰기를,

"이 말은 지극히 적당한 이론입니다. 나라가 비록 이미 다스려졌다고 하더라도 조금 자만(自滿)한 마음이 있으면 다스리는 도(道)가 반드시 허물어질 것입니다."

하였다. 또 임금이 풍도에게 이르기를, ‘금년에 민간의 생활이 넉넉한가?’ 하니, 풍도가 말하기를, ‘흉년이 들면 백성이 굶주려서 죽고 풍년이 들면 곡식 값이 천하여 고통입니다. 신이 일찍이 진사(進士) 섭이중(聶夷中)의 시(詩)를 기억하는데, 거기에, 「2월에는 신사(新絲)를 선매(先賣)하고, 5월에는 신곡(新穀)을 선매한다. 눈앞에 종기는 치료했으나, 마음 속의 살을 깎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한 데에 이르러, 홍응이 또 아뢰기를,

"농민(農民)은 흉년에는 굶주림을 면치 못하고 풍년에는 거두는 세(稅)와 빚 징수에 곤궁하여 풍년이나 흉년이나 모두 고통을 받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 충청도(忠淸道)의 연분(年分) 등급을 재상들이 모두 더 올리는 것이 옳다고 하는데, 이 말이 어떠한가?"

하자, 대사헌(大司憲) 이경동(李瓊仝)이 아뢰기를,

"관찰사(觀察使)는 이미 일도(一道)를 위임받았는데 어찌 국가의 큰 일을 생각지 아니하였겠습니까? 마땅히 아뢴 바에 따를 것이지 등급을 더할 수는 없습니다."

하고, 대사간(大司諫) 김수손(金首孫)이 아뢰기를,

"지난해에 흉년이 들어서 금년에 비록 조금 풍년이 들었다 하더라도 곡식을 저축한 자가 적을 것인데, 이제 만약 등급을 더하면 1결(結)에 쌀 두 말을 더 거두게 되니, 만약 준비할 수 없으면 역시 유리(流離)705) 하는 데 이를 것입니다."

하였으며, 특진관(特進官) 호조 판서(戶曹判書) 이덕량(李德良)이 아뢰기를,

"그 말은 잘못입니다. 1결의 땅은 한 사람이 경작하는 것이 아니므로 백성이 바치는 것은 두어 되[升]에 지나지 아니하는데, 어찌 유리까지 하게 되겠습니까? 더구나 이제 풍년인데, 저축하지 아니하였다가 만일 흉년을 만나면 어떻게 백성을 구제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적당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이가 많은데, 어찌 반드시 등급을 더 올리겠는가?"

하였다. 이경동이 아뢰기를,

"경상도(慶尙道)의 연해(沿海) 고을은 수재(水災)를 많이 만나서 흉년이 가장 심하여 백성이 장차 굶주릴 것인데, 조정에서는 그런 것을 알지 못하고 풍년든 고을과 같이 보고서 여러 해 쌓인 묵은 빚을 모두 다 징수하니, 이미 바친 자는 그만이지마는 바치지 못한 자는 가난함이 심한 자이므로, 청컨대 징수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제까지 바치지 못한 자는 대개 가난한 백성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간사한 백성이 면제하기를 꾀하여 바치지 아니한 자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김수손이 아뢰기를,

"고을에서 독촉하여 징수하기 때문에 가난한 백성이 살림을 팔아서 바칩니다."

하고, 이경동은 아뢰기를,

"도둑이 심히 성(盛)하니, 이는 빈궁(貧窮)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청컨대 너그럽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 가난한 백성은 마땅히 징수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특진관 예조 판서(禮曹判書) 유지(柳輊)가 아뢰기를,

"성안에 요귀(妖鬼)가 많습니다. 영의정(領議政) 정창손(鄭昌孫)의 집에는 귀신이 있어 능히 집안의 기물(器物)을 옮기고, 호조 좌랑(戶曹佐郞) 이두(李杜)의 집에도 여귀(女鬼)가 있어 매우 요사스럽습니다. 대낮에 모양을 나타내고 말을 하며 음식까지 먹는다고 하니, 청컨대 기양(祈禳)하게 하소서."

하자, 임금이 좌우에 물었다. 홍응이 대답하기를,

"예전에 유문충(劉文忠)의 집에 쥐가 나와 절을 하고 서서 있었는데, 집 사람이 괴이하게 여겨 유문충에게 고하니, 유문충이 말하기를, ‘이는 굶주려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다. 쌀을 퍼뜨려 주라.’고 하였고, 부엉이가 집에 들어왔을 때도 역시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는데, 마침내 집에 재앙이 없었습니다. 귀신을 보아도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면 저절로 재앙이 없을 것입니다. 정창손의 집에 괴이함이 있으므로 집 사람이 옮겨 피하기를 청하였으나, 정창손이 말하기를, ‘나는 늙었으니, 비록 죽을지라도 어찌 요귀로 인하여 피하겠느냐?’고 하였는데, 집에 마침내 재앙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부엉이는 세상에서 싫어하는 것이나 항상 궁중의 나무에서 우니, 무엇이 족히 괴이하겠는가? 물괴(物怪)는 오래되면 저절로 없어진다."

하였다. 유지가 아뢰기를,

"청컨대 화포(火砲)로써 이를 물리치소서."

하니, 임금이 응하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197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15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재정-전세(田稅)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705]
    유리(流離) : 떠돌아 다님.

○御經筵。 講《資治通鑑》 後唐 《明宗紀》, 至: "馮道曰: ‘臣奉使中山, 歷井陘之險, 臣憂馬蹶, 攬轡甚謹而無失。 逮至平路, 放轡自逸, 俄至顚隕。’" 領事洪應啓曰: "此言至論也。 國雖已治, 少有自滿之志, 治道必虧矣。" 又至: "上謂曰: ‘今年民間贍足否?’ 曰: ‘歲凶則死於流殍, 歲豐則傷於穀賤。 臣嘗記進士聶夷中詩曰: 「二月賣新絲, 五月糶新穀。 醫得眼前〔瘡〕 , 剜却心頭肉。」’" 又啓曰: "農民凶年則不免於飢餓, 豐年則困於收稅(懲)〔徵〕 債, 豐凶皆受病焉。" 上曰: "然。 忠淸道年分等第, 宰相皆以謂可加, 此言何如?" 大司憲李瓊仝曰: "觀察使旣受委一道, 豈不慮國家大事? 當從所啓, 不可加等。" 大司諫金首孫啓曰: "去年凶荒, 今年雖稍稔, 畜穀者少。 今若加等, 則一結加收米二斗, 如不能備, 則亦至於流離矣。" 特進官戶曹判書李德良曰: "此言非也。 一結之田, 非一人所耕, 民之所納, 不過數升, 何至流離? 況今豐稔而不儲峙, 如遇凶歲, 何以賑救?" 上曰: "言不便者多, 何必加等也?" 瓊仝曰: "慶尙道沿海之郡, 多遇水災, 凶歉太甚, 民將餓殍。 朝廷不知其然, 視同豐稔之郡, 積年宿債竝皆懲之。 其已納者已矣, 其未納者,貧乏之甚者, 請勿懲。" 上曰: "至今不得納者, 擧皆貧民也。 然間有奸猾之民, 規免不納者多矣。" 首孫曰: "郡縣督懲,故貧民賣資産以納之。" 瓊仝曰: "盜賊甚熾, 此因貧窮而起也, 請寬之。" 上曰: "然。 貧民當使勿懲也。" 特進官禮曹判書柳輊啓曰: "城中多妖鬼。 領議政鄭昌孫家有鬼, 能運家中器物, 戶曹佐郞李杜家亦有女鬼, 甚妖, 白晝現形, 能言語飮食。 請禳之。" 上問左右, 洪應對曰: "昔劉文忠家有鼠出拜而立, 家人怪而告之, 文忠曰: ‘此飢而求食也, 鋪米與之。’ 鵂鶹入室, 亦不怪焉, 家竟無災。 見鬼不怪, 則自無災矣。 鄭昌孫家有怪, 家人請移避, 昌孫云: ‘吾老矣。 雖死, 豈因妖而避歟?’ 家竟無災。" 上曰: "鵂鶹, 世俗所惡, 而常鳴於宮樹, 何足怪乎? 物怪久, 則自無也。" 曰: "請以火炮禳之。" 上不應。


  • 【태백산사고본】 30책 197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158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재정-전세(田稅)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