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형·어세겸·신준·김자평·윤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한치형(韓致亨)을 숭정 대부(崇政大夫)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으로, 어세겸(魚世謙)을 자헌 대부(資憲大夫) 함종군(咸從君)으로, 신준(申浚)을 자헌 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김세적(金世勣)을 가선 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강자평(姜子平)을 통정 대부(通政大夫) 공조 참의(工曹參議)로, 윤해(尹垓)를 통정 대부(通政大夫) 병조 참지(兵曹參知)로, 박숭질(朴崇質)을 통정 대부(通政大夫)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로, 윤은로(尹殷老)를 좌승지(左承旨)로, 이세우(李世右)를 우승지(右承旨)로, 안처량(安處良)을 좌부승지(左副承旨)로, 변처녕(邊處寧)을 우부승지(右副承旨)로, 송영(宋瑛)을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이집(李諿)을 통정 대부(通政大夫)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으로, 이계남(李季男)을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사헌부 장령(行司憲府掌令)으로, 최관(崔灌)을 조봉 대부(朝奉大夫) 행 사헌부 지평(行司憲府持平)으로, 성희증(成希曾)을 승훈랑(承訓郞)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으로, 채수(蔡壽)를 가선 대부(嘉善大夫)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로, 성건(成健)을 가선 대부(嘉善大夫)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로, 김자정(金自貞)을 가선 대부(嘉善大夫)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로, 한언(韓堰)을 통정 대부(通政大夫) 수 황해도 관찰사(守黃海道觀察使)로, 이조양(李朝陽)을 가선 대부(嘉善大夫) 행 충청도 수군 절도사(行忠淸道水軍節度使)로, 윤효손(尹孝孫)을 가선 대부(嘉善大夫) 행 나주 목사(行羅州牧使)로 삼았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채수(蔡壽)는 윤해(尹垓)를 대신해서 감사(監司)가 되었다. 윤해는 본래 용렬하고 망령된 사람인데, 채수 또한 경박(輕薄)하고 중용(中庸)의 덕(德)이 없어서 일어나고 앉는 데 절제(節制)가 없이 아이[兒童]와 같은 데가 있으니, 사람들이 도리어 윤해를 더 훌륭하게 여겼다. 그리고 송영(宋瑛)은 난신(亂臣)의 조카로서, 숙모(叔母)인 대방 부인(帶方夫人)의 세력에 의지하여 대직(臺職)427) 에 참여하는 데 이르렀다. 또 임사홍(任士洪)과 더불어 사귀면서 서로 붕비(朋比)428) 하여, 몰래 장옥(場屋)429) 에 내통하여 임사홍이 지은 것을 빌려 방목(榜目)의 우두머리를 함부로 점유하니, 사람들이 많이 기롱하여 말하기를, ‘세조조(世祖朝)에 신승선(愼承善)이 남의 손을 빌려 장원[魁]을 차지하였는데, 남이 지은 것을 빌려서 장원(壯元)하는 일이 어느 시대엔들 없겠는가?’ 하였다. 송영(宋英)이 등제(登第)하기 수개월 전에 생원(生員) 오한상(吳漢相)이 성균관[泮宮]에다 방목(榜目)을 붙인 꿈을 꾸었는데, 나윤(羅倫)이란 자가 있어 장원한 것이었다. 송영이 장원으로 뽑힘에 미치자, 여러 생도(生徒)들이 오한상의 꿈은 착오[錯謬]되고 증험할 바가 없는 꿈이었다고 하였으나, 훗날 중국 조정의 등과록(登科錄)을 보니 나윤(羅倫)의 책문(策問)이 있었는데, 송영의 대책(對策)이 태반이나 표절(剽竊)한 것이었으므로, 여러 생도(生徒)들이 바야흐로 오한상(吳漢相)의 꿈이 거짓이 아님을 믿게 되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19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125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역사-편사(編史)
- [註 427]대직(臺職) : 사헌부(司憲府)의 벼슬을 말함.
- [註 428]
붕비(朋比) : 붕당(朋黨)을 이루어 자기 편을 누둔함.- [註 429]
장옥(場屋) : 과거(科擧)를 보이던 곳. 과장(科場).○以(韓致享)〔韓致亨〕 爲崇政漢城府判尹, 魚世謙資憲咸從君,申浚資憲知中樞府事, 金世勣嘉善同知中樞府事, 姜子平通政工曹參議, 尹垓通政兵曹參知, 朴崇質通政承政院都承旨, 尹殷老左承旨, 李世佑右承旨, 安處良左副承旨, 邊處寧右副承旨, 宋瑛同副承旨, 李諿通政司諫院大司諫, 李季男通訓行司憲府掌令, 崔灌朝奉行司憲府持平, 成希曾承訓司諫院正言, 蔡壽嘉善忠淸道觀察使, 成健嘉善京畿觀察使, 金自貞嘉善全羅道觀察使, 韓堰通政守黃海道觀察使, 李朝陽嘉善行忠淸道水軍節度使, 尹孝孫嘉善行羅州牧使。
【史臣曰: "蔡壽代尹垓爲監司, 垓本庸妄人, 而壽又輕薄不中, 興居無節, 有類兒童, 人反以垓爲優。 瑛, 亂臣之姪, 藉叔母帶方夫人之勢, 至參臺職。 又與任士洪交相朋比, 潛通場屋, 借士洪之作, 濫占榜頭。 人多譏之曰: ‘在世祖朝, 愼承善假手居魁, 借作壯元, 何代無之?" 瑛之登第前數月, 生員吳漢相夢張榜于泮宮, 有羅倫者爲魁。 及宋瑛擢壯元, 諸生謂漢相之夢錯謬無驗。 異日見中朝登科錄, 則有羅倫之策, 而宋瑛所對, 太半剽竊矣。 諸生方信漢相之夢不誣。"】
- 【태백산사고본】 29책 19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125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역사-편사(編史)
- [註 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