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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189권, 성종 17년 3월 22일 정묘 3번째기사 1486년 명 성화(成化) 22년

문신을 논·시로, 무신은 사후로 시험했는데 이의무·임득창이 으뜸을 차지하다

명하여, 궐정(闕庭)에 문신(文臣)을 모아 ‘신생(申生)여희(驪姬)284) 를 잘 알지 못한 과실’이라는 제목의 논(論)과 ‘꽃이 낙양성에 만발하였다’는 제목의 율시(律詩)로 시험하여 이의무(李宜茂)가 으뜸을 차지하고, 후원(後苑)에서 무신(武臣)의 사후(射侯)285) 를 시험하여 임득창(任得昌)이 으뜸을 차지하였는데, 다 활[弓]을 내렸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189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115면
  •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어문학-문학(文學)

  • [註 284]
    여희(驪姬) : 여희는 춘추 시대(春秋時代) 여융(驪戎)의 딸로, 진(晉)나라 헌공(獻公)이 여융을 정벌한 후 폐비(嬖妃)로 삼았는데, 그는 자신의 아들 해제(奚齊)를 태자(太子)로 세우고자, 당시의 태자였던 신생(申生)을 참소하여 죽게 하고, 두 공자(公子)도 축출하였음. 그러나 헌공이 죽자, 대부(大夫) 이극(里克)이 해제(奚齊)와 그 동생 탁자(卓子)를 죽이고, 여희도 죽음을 당하였음.
  • [註 285]
    사후(射侯) : 솔[侯]에 활을 쏘아 시합하는 것. 솔은 사포(射布)에 짐승의 머리를 그린 것인데, 어사(御射)에 쏘는 웅후(熊侯),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이 쏘는 미후(麋侯), 무과 교습(武科敎習)에 쏘는 시후(豕侯) 등이 있었음.

○命聚文臣于闕庭, 試 ‘申生不明驪姬之過’ 論, ‘花滿洛陽城’ 律詩, 李宜茂居首。 試武臣射侯于後苑, 任得昌居首, 皆賜弓。


  • 【태백산사고본】 29책 189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115면
  •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