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에 대하여 논의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하기를 마치자, 영사(領事) 윤호(尹壕)가 아뢰기를,
"국가 창고의 저장이 거의 다하였으므로 구황(救荒)하기가 어려운데, 곡식을 얻는 방책은 어떤 계책을 시행하는 것이 좋을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비록 식견(識見)이 없으나, 집에서 생각해 보건대, 염세(鹽稅)의 이로움만한 것이 없는데, 정식 염간(鹽干)은 해마다 소금 8석(碩)을 바치고 사사 염간은 4석을 바치며, 하삼도(下三道)와 경기(京畿)에서는 모두 소금을 베[布]로 바꾸어 세금을 거두는 것이 이미 성법(成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령(守令)이 게을러서 뜻을 두지 아니하니, 청컨대 조신(朝臣)을 보내어 가서 그 일을 맡아 수세(收稅)·무곡(貿穀)을 검찰(檢察)하여 진구(賑救)하는 자료로 삼으소서."
하였는데, 임금이 좌우에게 물으니, 지사(知事) 이파(李坡)가 대답하기를,
"이는 성법(成法)이 있으나, 단지 봉행(奉行)하지 않을 뿐입니다. 거듭 검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으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법(法)은 날마다 효유(曉諭)시켜가며 봉행(奉行)하도록 할 수는 없다. 법을 세운 지 비록 오래되었다 하나, 거듭 밝혀서 거행한다면 신법(新法)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따로 조관(朝官)을 보낸다면 폐단(弊端)이 없을 수 없으니, 해사(該司)로 하여금 검찰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였다. 이파가 아뢰기를,
"옛날에 하후씨(夏后氏)는 50묘(畝)에서 5묘를 세금으로 바치는 공법(貢法)을 썼고, 은(殷)나라에서는 70묘에서 7묘를 세금으로 바치는 조법(助法)을 썼으니, 실지로는 모두 십일(什一)940) 이었으며, 이보다 많이 바치게 하면 걸(桀)과 같고 적으면 맥(貊)과 같습니다. 우리 나라의 백성에게서 세금을 거두는 제도는 20분의 1인데, 지금의 감사(監司)와 수령(守令)은 백성만을 위하고 나라는 위하지 아니하여 연분 등제(年分等第)941) 때에 비록 풍년이 들었다 하더라도 모두 하등(下等)으로 등급을 매기니, 국용(國用)이 넉넉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세종조(世宗朝)에 감사가 등제하여 계문(啓聞)하면 육조(六曹)에서 1등을 더할 것을 의논하였고, 의정부(議政府)에서 또 1등을 더할 것을 의논하였는데, 청컨대 다시 이 법을 시행하면 국용이 넉넉해질 것입니다. 이제부터 연분 등제(年分等第)는 감사가 사실대로 계문하지 않은 것은 청컨대 죄주소서."
하였는데, 집의(執義) 강거효(姜居孝)가 아뢰기를,
"윤호(尹壕)는 각염(搉鹽)942) 의 이로움을 말하였고, 이파(李坡)는 세금을 무겁게 거두는 발단을 아뢰었는데, 모두 대신(大臣)으로서 할 말이 아닙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각염의 이로움을 말한 것이 아니고, 세금을 무겁게 거두는 발단을 아뢴 것도 아니다."
하였다. 시강관(侍講官) 이창신(李昌臣)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지세(地勢)가 균일(均一)하지 못하여 1평(坪) 사이에도 기름지고 척박한 것이 두드러지게 다르지만, 화곡(禾穀)이 무성한 곳을 살펴보면 과연 20분의 1을 취할 만합니다. 그러나 지난 번에 호조(戶曹)에서 연분 등제를 더할 것을 청하였는데, 성상(聖上)께서 하교(下敎)하시기를, ‘백성이 족하면 임금으로서 누가 더불어 부족(不足)하겠는가?’ 하시니, 그 때 듣는 자들이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지금 등제를 높여 백성을 병들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이파는 경악(經幄)의 대신으로서 그 말이 이와 같았는데, 이 말대로 시행하였다면 우리 백성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183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53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수산업-염업(鹽業) / 재정-전세(田稅) / 재정-잡세(雜稅) / 역사-편사(編史) / 역사-고사(故事)
- [註 940]십일(什一) : 정전법(井田法)으로 10분의 1을 세금으로 바치는 것.
- [註 941]
연분 등제(年分等第) : 그 해의 농사의 풍흉(凶豐)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일.- [註 942]
각염(搉鹽) : 소금을 전매(專賣)하던 법으로, 은(銀) 1냥에 넉 섬. 베 1필에 두 섬씩임.○甲子/御經筵。 講訖, 領事尹壕啓曰: "國家倉儲殆盡, 救荒爲難。 得粟之術, 不知施何計而可也! 臣雖無識, 在家思之, 莫如鹽稅之利。 式干歲納鹽八碩、私干四碩, 下三道、京畿皆收稅鹽換布, 已有成法, 然守令謾不致意。 請遣朝臣往典其事, 檢察收稅貿穀, 以資賑救。" 上問左右。 知事李坡對曰: "此有成法, 但不奉行耳。 宜申檢察。" 上曰: "法不可日日曉諭使之奉行也。 法立雖久, 申明擧行, 則與新法無以異也。 然別遣朝官, 不得無弊。 但令該司檢察可也。" 李坡曰: "古者夏后氏五十而貢, 殷人七十而助, 其實皆什一也。 多則桀, 寡則貊, 我國稅民之制, 二十而取一也。 今之監司守令, 爲民而不爲國, 年分等第時, 雖在豐年, 皆第以下等, 國用不裕以此也。 世宗朝, 監司等第啓聞, 六曹議而加一等, 議政府議而又加一等。 請復行此法, 以裕國用。 自今年分等第, 監司不從實啓聞者, 請罪之。" 執義姜居孝啓曰: "尹壕言搉鹽之利, 李坡啓重斂之端, 皆非大臣言也。" 上曰: "此非搉鹽也, 亦非重斂也。" 侍講官李昌臣曰: "我國地勢不均, 一平之間, 膏塉懸絶, 以禾穀茂盛處觀之, 則果二十而取一也。 然往者戶曹請加年分等第, 上敎曰: ‘百姓足, 君誰與不足。’ 其時聞者皆悅。 今不可高其等第以病民也。"
【史臣曰: "坡經幄大臣, 而其言如是, 使此說行, 則於吾民何?"】
- 【태백산사고본】 28책 183권 5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53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수산업-염업(鹽業) / 재정-전세(田稅) / 재정-잡세(雜稅) / 역사-편사(編史) / 역사-고사(故事)
- [註 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