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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81권, 성종 16년 7월 9일 정사 2번째기사 1485년 명 성화(成化) 21년

문천군 유서의 졸기

문천군(文川君) 유서(柳溆)가 졸(卒)하였다. 철조(輟朝)·조제(弔祭)·예장(禮葬)을 관례(慣例)대로 하였다. 유서의 자(字)는 포옹(浦翁)이고, 문화(文化) 사람으로,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유은지(柳殷之)의 아들이다. 어렸을 때 궁마(弓馬)를 업(業)으로 하였으며, 선덕(宣德) 기유년854) 에 음사(蔭仕)로 좌군 섭부사정(左軍攝副司正)에 제수되고, 여러 번 벼슬을 옮겨 섭부사직(攝副司直)이 되었으며, 경태(景泰) 계유년855) 세조(世祖)의 정란(靖亂)에 유서가 조그만 공로가 있어 추충 정란 공신(推忠靖亂功臣)의 호(號)를 내렸다. 그 후부터 은전(恩典)이 특이하게 내려 여러 번 승진되어서 4급(級)에 이르러 벼슬이 상호군(上護軍)에 이르렀다. 천순(天順) 기묘년856) 에 통정 대부(通政大夫)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올랐고, 임오년857) 에는 가선 대부(嘉善大夫)로 가자(加資)되어 문천군(文川君)에 봉해졌다. 성화(成化) 기축년858) 에 가정 대부(嘉靖大夫)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오르고, 갑진년859) 에 특별히 자헌 대부(資憲大夫)로 가자되어 봉군(封君)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하니, 나이가 77세였다. 시호(諡號)를 양호(襄胡)라 하였으니, 일로 인하여 공(功)이 있는 것을 양(襄)이라 하고, 오랫동안 살아 수(壽)를 누린 것을 호(胡)라 한다. 아들이 없어 아우 유수(柳洙)의 아들 유중손(柳仲孫)을 후사(後嗣)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181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40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 가족-가족(家族)

  • [註 854]
    선덕(宣德) 기유년 : 1429 세종 11년.
  • [註 855]
    경태(景泰) 계유년 : 1453 단종 원년.
  • [註 856]
    천순(天順) 기묘년 : 1459 세조 5년.
  • [註 857]
    임오년 : 1462 세조 8년.
  • [註 858]
    성화(成化) 기축년 : 1469 예종 원년.
  • [註 859]
    갑진년 : 1484 성종 15년.

文川君 柳溆卒。 輟朝、弔、祭、禮葬如例。 浦翁, 文化人, 知中樞院事殷之之子也。 少業弓馬, 宣德己酉以蔭授左軍攝副司正, 累遷攝副司直。 景泰癸酉世祖靖亂, 以羈的之勞, 賜推忠靖亂功臣號。 自後恩出異數, 累陞四級, 官至上護軍。 天順己卯陞通政僉知中樞院事, 壬午加嘉善, 封文川君成化己丑陞嘉靖同知中樞院事, 甲辰特加資憲封君。 至是卒, 年七十七。 諡襄胡: 因事有功 ‘襄’, 彌年壽考 ‘胡’。 無子, 以弟仲孫爲後。


  • 【태백산사고본】 28책 181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40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 가족-가족(家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