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성종실록 181권, 성종 16년 7월 8일 병진 5번째기사 1485년 명 성화(成化) 21년

행 부호군 김지경의 졸기

행 부호군(行副護軍) 김지경(金之慶)이 졸(卒)하니, 철조(輟朝)838) ·사부(賜賻)·조제(弔祭)를 관례(慣例)대로 하였다. 김지경의 자(字)는 유후(裕後)이며, 선산(善山) 사람이니, 증(贈) 호조 판서(戶曹判書) 김지(金地)의 아들이다. 정통(正統)839) 기미년840) 에 21세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처음에 교서관 교감(校書館校勘)에 제수되고, 경신년841) 에 집현전 정자(集賢殿正字)에 선보(選補)되었다. 임술년842) 에 저작랑(著作郞)으로 오르고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로 옮겼다가 봉교(奉敎)·한성 참군(漢城參軍)에 이르렀다.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이조(吏曹)의 좌랑(佐郞)·정랑(正郞)을 거쳐,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이 되어서는 여러 번 소(疏)를 올려 극간(極諫)하여서 환관(宦官)의 봉군(封君)을 파(罷)하였으며, 의정부 검상(議政府檢詳)으로 옮겼다. 갑술년843) 에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로 발탁되어서 제수되고,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으로 옮겼다. 이때에 세조(世祖)회간왕(懷簡王)844) 을 봉(奉)하여 세자(世子)로 삼았는데, 뽑혀서 우보덕(右輔德)이 되었으며, 어버이가 늙었음을 이유로 걸군(乞郡)845) 하여서 성주 목사(星州牧使)에 임명되었다. 성화(成化)846) 을유년847) 에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임명되고 얼마 안되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서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를 겸하였으며, 여러 번 벼슬을 옮겨 예문관 부제학(藝文館副提學)에 이르렀다. 신묘년848) 에 가선 대부(嘉善大夫)에 특별히 올랐고, 수 사헌부 대사헌(守司憲府大司憲)으로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탐오(貪汚)하고 망상(罔上)849) 한 일을 탄핵하여 재상의 지위를 해면(解免)하게 하였으며, 호조(戶曹)와 공조(工曹)의 참판(參判)으로 누차 옮겼다. 을미년850) 에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가 되어 외방(外方)으로 나가고, 정유년851) 에 조정으로 들어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으며, 갑진년852) 에 가정 대부(嘉靖大夫)를 더하여 곧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에 임명되었다. 을사년853) 에 병으로 사직하니, 한관(閒官)에 제수(除授)할 것을 명하여 호군(護軍)이 되었다가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였는데, 나이 67세였다. 시호(諡號)를 경질(景質)이라고 하였으니, 의(義)를 펴고 곧은 일을 행하는 것을 경(景)이라 하고, 성실하여 도리에 어긋나지 않은 것을 질(質)이라 한다. 김지경은 일을 처리함이 바르고 상세하였으니, 그 관직(官職)에 임하여서는 부지런하고 삼가면서 노고하였고, 그 대간직(臺諫職)에 있어서는 일을 당하면 감히 말하였으며 조금도 사의(私意)를 두어 아첨하는 일이 없었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타고난 성품이 강직(剛直)하고, 강개(慷慨)하여 절조(節操)가 있었으며, 일에 임하여서는 실지에 힘쓰고 겉치레를 꾸미지 아니하여 사람들이 모두 공경하고 중히 여겼다. 그러나 집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담박한 데에 이르지 못하였다."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181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40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 역사-편사(編史)

  • [註 838]
    철조(輟朝) : 조회(朝會)를 정지함.
  • [註 839]
    정통(正統) : 명(明)나라 영종(英宗)의 연호.
  • [註 840]
    기미년 : 1439 세종 21년.
  • [註 841]
    경신년 : 1440 세종 22년.
  • [註 842]
    임술년 : 1442 세종 24년.
  • [註 843]
    갑술년 : 1454 단종 2년.
  • [註 844]
    회간왕(懷簡王) : 덕종(德宗).
  • [註 845]
    걸군(乞郡) : 문과(文科) 출신의 관원으로서 늙은 부모가 계실 때 봉양(奉養)을 위하여 그 지방의 수령(守令)이 될 것을 주청(奏請)하는 것.
  • [註 846]
    성화(成化) : 명나라 헌종(憲宗)의 연호.
  • [註 847]
    을유년 : 1465 세조 11년.
  • [註 848]
    신묘년 : 1471 성종 2년.
  • [註 849]
    망상(罔上) : 윗사람을 속임.
  • [註 850]
    을미년 : 1475 성종 6년.
  • [註 851]
    정유년 : 1477 성종 8년.
  • [註 852]
    갑진년 : 1484 성종 15년.
  • [註 853]
    을사년 : 1485 성종 16년.

○行副護軍金之慶卒。 輟朝、賜賻、弔、祭如例。 之慶裕後, 善山人, 贈戶曹判書之子。 正統己未年二十一中文科, 初授校書校勘, 庚申選補集賢殿正字。 壬戌陞著作郞, 遷藝文檢閱, 轉至奉敎漢城參軍。 歷司憲監察、司諫院正言、吏曹佐郞ㆍ正郞, 累遷至司憲掌令。 累疏極諫罷宦官封君, 轉議政府檢詳。 甲戌超授知司諫院事, 遷集賢殿直提學。 時, 世祖懷簡王爲世子, 選爲右輔德, 以親老乞郡, 拜星州牧使。 成化乙酉拜成均大司成, 尋以僉知中樞府事兼江原道觀察使, 累至藝文館副提學。 辛卯特陞嘉善守司憲府大司憲, 劾左議政金國光貪汙罔上之事, 免相。 累遷戶工曹參判, 乙未出爲平安道觀察使, 丁酉入爲同知中樞府事。 甲辰加嘉靖, 尋拜開城府留守, 乙巳以疾辭, 命除間官爲護軍。 至是卒, 年六十七。 諡景質: 布義行剛‘景’, 名實不爽‘質’。 之慶處事端詳, 其莅官勤謹勞苦。 其在風憲, 遇事敢言, 略無私阿。

【史臣曰: "雅性剛直, 慷慨有節, 臨事務實, 不修邊幅, 人皆敬重之。 然於治家, 不至於淡如也。"】


  • 【태백산사고본】 28책 181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40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 왕실-사급(賜給)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