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조 판서·이조 판서·호조 판서가 납속 상직의 문제점을 아뢰다
병조 판서(兵曹判書) 정괄(鄭佸)·이조 판서(吏曹判書) 이숭원(李崇元)·호조 판서(戶曹判書) 이덕량(李德良) 등이 와서 아뢰기를,
"이제 백성들을 납속 상직(納粟賞職)730) 에 응모(應募)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옛날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군량의 부족으로 납속 보관(納粟補官)을 한 바가 있었으나, 이는 마지못한 데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미 훌륭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흉년을 구제하기 위하여 납속 상직한다는 것은 역대(歷代)에 없던 바로서, 우리 조정에서는 병진년731) ·정사년732) ·갑자년733) 의 흉황(凶荒)이 가장 심하였으나 역시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금년이 비록 흉년이나 병진년(丙辰年)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가령 이로 인하여 족히 흉년을 구제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닌데, 만약 이 영(令)을 내었다가 응하는 자가 없으면 한갓 납속(納粟)하였다는 이름만 있지 진구(賑救)한 사실이 없을 것이며, 또 반드시 이를 사책(史冊)에 쓸 것이니, 후세에서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경(卿)들의 말이 과연 옳다. 그러나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 군사를 일으킬 힘이 없어 이를 실시하였지만, 문제의 성덕(盛德)에도 손상이 없고 후세에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제 구황(救荒)하기 위하여 민간에 저장된 양곡을 다 문서에 올려 봉(封)하도록 하였으나, 어찌 은루(隱漏)734) 한 자가 없겠는가? 만약 이 영(令)을 구황하는 데 행한다면 거의 유익함이 있을 것인데, 경(卿)들은 어찌하여 옳지 않다고 하는가?"
하였다. 정괄(鄭佸) 등이 아뢰기를,
"관작(官爵)은 지극히 중한 것이므로 가볍게 쓰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또 민간의 곡식을 가진 자는 판매하여 이익을 꾀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는데, 누가 즐겨 응모하겠습니까? 이제 비록 법을 세운다 하더라도 아마 유명 무실(有名無實)하게 될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여러 사람의 의논이 이와 같으니, 내가 어찌 억지로 하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180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30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재정-잡세(雜稅) / 역사-고사(故事)
- [註 730]납속 상직(納粟賞職) : 기근(飢饉)이 들었을 때에 많은 곡식을 바치면, 상(賞)으로 관직(官職)을 주는 것.
- [註 731]
병진년 : 1436 세종 18년.- [註 732]
○兵曹判書鄭佸、吏曹判書李崇元、戶曹判書李德良等來啓曰: "今令募人納粟賞職。 昔漢 文帝爲兵食不足, 納粟補官, 此出於不得已, 已非美事。 爲救荒納粟賞職, 歷代所無。 至我朝如丙辰、丁巳、甲子年, 凶荒最甚, 亦無此事。 今年雖歉, 非丙辰之比, 假令因此足以救荒, 猶非美事, 若出此令而無應之者, 則徒有納粟之名而無賑救之實。 且必書于史冊, 後世以爲何如?" 傳曰: "卿等之言果是。 然漢 文帝時, 爲乏軍興而爲之, 無損文帝盛德, 後世亦無異議。 今爲救荒, 民間儲穀盡令封籍, 然豈無隱漏者乎? 若行此令, 於救荒, 庶有益矣。 卿等何以爲不可?" 佸等啓曰: "官爵至重, 不可輕用。 且民間有穀者, 以販賣規利爲念, 誰肯應募? 今雖立法, 恐有名無實也。" 傳曰: "群議如是, 予何强爲?"
- 【태백산사고본】 27책 180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30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재정-잡세(雜稅) / 역사-고사(故事)
- [註 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