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절도사 정난종이 박형손 사건과 관련하여 상서하다
평안도 절도사(平安道節度使) 정난종(鄭蘭宗)이 상서(上書)하기를,
"신이 듣건대, 강계인(江界人) 박형손(朴亨孫)이 신이 이심(異心)이 있다고 말하고, 신의 죄악(罪惡)을 꾸며서 신을 불측(不測)한 지경에 모함(謀陷)하였다 하는데, 다행히 성명(聖明)께서 위에 계심을 힘입어 간인(奸人)이 모함한 실정을 숨기지 못하고 거짓임을 자복(自服)하여, 신으로 하여금 목숨을 보전(保全)하게 하여 아직도 벼슬자리에 있게 하시고, 지금 또 글을 내리시어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이르시니, 이것은 성상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그 백골에 살을 붙여 주신 은혜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신은 성품이 본래 어리석고 용렬하며, 문무(文武)의 장재(長才)568) 도 없는데, 여러 차례 변방을 방수(防戍)하라는 명령을 받고 백성들을 어루만져 어거하는 것이 마땅함을 잃어 남에게 원망을 사서 비방과 원망이 서로 일어나니, 그 허물이 실로 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야장(冶匠)569) 에게 과렴(科斂)570) 하는 것은 신의 소관(所管)이 아니며, 사냥할 적에 징속(徵贖)571) 한 것도 신은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 만약 신이 한 것을 혹시나 숨긴다면, 일도(一道)의 이목(耳目)을 속여 가리기가 진실로 어렵고, 황천(皇天)과 후토(后土)가 또한 함께 보는 바이니,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 서인(西人)이 신에게 죄고(罪罟)를 입히려고 하여, 크게 터무니 없는 비방(誹謗)을 만들어서, 천총(天聰)에게 아뢰고 사람들에게 퍼져 알려진 것입니다. 그 까닭을 자세히 생각해 보니, 오로지 이것은 어리석은 신이 변방을 진정시켜 복종하게 못하고 앉아서 인심(人心)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의 죄이오니, 뻔뻔스럽게 직임(職任)에 있는 것은 마음에 미안(未安)한 바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신을 유사(攸司)에 붙이셔서, 신이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 죄를 다스리시면, 신 또한 만번 죽어도 유감이 없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어서(御書)로 정난종에게 유시하기를,
"경(卿)의 대죄(待罪)하는 말을 보니 경의 뜻을 잘 알았다. 예로부터 불측(不測)한 화(禍)를 얽어 만든 자는 간사한 소인이고, 뜻하지 않은 재앙(災殃)을 입은 자는 대개 바른 사람이다. 악양(樂羊)이 중산(中山)을 칠 때의 비방(誹謗)572) 과 감무(甘茂)가 식양(息壤)에서 맹세한 것573) 이 어찌 〈임금의 믿음이 없이〉 한갓 그렇게 되었겠는가? 경이 서쪽 지방을 진무(鎭撫)하여, 일방(一方)의 안위(安危)가 경에게 모두 맡겨졌으니, 임무가 크면 책임이 반드시 크고, 권세가 중하면 일 또한 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을 해하고자 하여 〈터무니 없는〉 대사(大事)를 얽어 만든 것이다. 간계가 저절로 드러났으니, 이것은 황천이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화를 주어서 악한 일을 한 자는 스스로 형륙(刑戮)에 들어가게 하고 착한 일을 한 자는 마침내 안영(安榮)을 누리게 한 것이다. 어찌 경이 어루만져 의거하는 것이 방도에 어긋나서 그러하였겠느냐? 경은 혐의(嫌疑)를 품지 말고 더욱 마음을 다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178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12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註 568]장재(長才) : 훌륭한 재주.
- [註 569]
야장(冶匠) : 대장장이.- [註 570]
과렴(科斂) : 세금 따위를 부과하여 거둠.- [註 571]
징속(徵贖) : 속전(贖錢)을 징수함.- [註 572]
악양(樂羊)이 중산(中山)을 칠 때의 비방(誹謗) : 악양(樂羊)은 전국 시대(戰國時代) 위(魏)나라 문후(文侯) 때의 장수인데, 그가 중산(中山)을 칠 때에 그 아들이 중산에 있었으므로 주위의 비방이 많았으나, 문후가 그를 믿고 마침내 함락시킨 고사임.- [註 573]
감무(甘茂)가 식양(息壤)에서 맹세한 것 : 감무(甘茂)는 전국 시대 진(秦)나라 무왕(武王) 때의 장수인데, 무왕이 감무와 식양(息壤)에서 감무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맹세를 하고 감무가 의양(宜陽)을 공격하였는데, 다섯 달이 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므로, 무왕이 파병(罷兵)하려고 하니, 감무가 "식양이 저기 있습니다."고 하므로 다시 공격하게 하여 마침내 함락시킨 고사임.○庚子/平安道節度使鄭蘭宗上書曰:
臣聞江界人朴亨孫謂臣有異心, 搆臣罪惡, 謀陷臣於不測之地。 幸賴聖明在上, 奸人無所遁情, 自服其詐, 俾臣得全性命, 猶在官任。 今又下書悉諭, 此是仁聖生死肉骨之恩。 第念臣性本愚庸, 又乏文武長才, 累承戍邊之命, 撫馭失宜, 取怨於人, 謗讟交騰, 咎實在身。 然此冶匠科斂, 非臣所管。 且山獵徵贖, 臣亦萬無一事。 若臣所爲, 儻或隱揜, 一道耳目, 固難欺蔽, 皇天后土, 亦所共鑑, 安可矯誣? 但此西人欲罹臣罪罟, 造大流謗, 至達天聰, 播諸人聞, 究厥所由, 專是愚臣未能鎭服邊方, 坐失人心之故。 此則臣罪。 靦然在職, 心所未安。 伏望付臣攸司, 治臣不堪任之罪, 臣亦萬死無憾。
御書諭蘭宗曰:
觀卿待罪之辭, 備悉卿意。 自古搆成不測之禍者, 則是奸細;橫罹未圖之殃者, 率多正人。 樂羊 中山之謗, 甘茂 息壤之盟, 豈徒然哉? 卿鎭此西界, 一方安危, 盡委于卿。 任大則責必大, 勢重則事亦重, 故欲害卿而構陷大事, 姦計自露。 此皇天所以福善禍淫, 而爲惡者自入于刑戮, 爲善者終享安榮者也, 豈卿撫御乖方之致然耶? 卿毋懷嫌, 益殫乃心。
- 【태백산사고본】 27책 178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11책 12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註 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