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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76권, 성종 16년 3월 6일 정해 2번째기사 1485년 명 성화(成化) 21년

대사간 유윤겸이 잘못했으므로 사헌부를 시켜 추국케 하다

대사간(大司諫) 유윤겸(柳允謙)이 아뢰기를,

"성 안은 한 치의 땅이라도 각각 그 임자가 있는데, 어떻게 빈 땅을 얻어서야 길을 틀 수 있겠습니까? 집을 지은 곳이라면 헐어 없애고 길을 틀 수 없겠으나, 집을 짓고 남은 땅이라면 길을 터서 드나들어야 할 것입니다. 신이 집을 지을 때에 재목을 다 자식 유혜동(柳惠仝)의 집 침방(寢房) 밑을 거쳐서 날라 들였는데, 이제 한성부(漢城府)에서는 이 곳에 길을 트게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유혜동은 신의 자식이니 신이 드나드는 것은 무방하겠으나, 종[奴]이나 말은 침방 밑을 거쳐서 드나들 수 없을 듯합니다. 또 족친(族親)이나 벗들은 어디로 드나들어야 하겠습니까? 신이 간관(諫官)으로서 이런 사사로운 일을 신총(宸聰)에 우러러 아뢰는 것은 황공함을 감당할 수 없으나, 형세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사람을 보내어 살피게 하면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지난 해 6월에 한성부에 정송(呈訟)하였는데, 한성부에서는 지난 달에 이르러서야 결단하였으니, 이것을 신은 지체하고 결단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한림(翰林)332) 을 보내어 한성부의 관원과 함께 가서 길을 트기에 합당할 만한 곳을 살피게 하라."

하였다. 검열(檢閱) 하윤(河潤)이 가서 살피고 와서 아뢰기를,

"유윤겸이 길을 트려고 하는 곳은 동쪽과 서쪽이 다 사족(士族)의 집인데, 아직 다 짓지 않았으므로 결코 길을 틀 수 없겠습니다. 또 그 아들 유혜동의 집 침방 밑은 좁아서 사람과 말이 통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지못하여 길을 튼다면, 유혜동·윤절(尹晢) 두 집 사이에 있는 울타리 담을 헐어 없애어 길을 트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대사간이 그르다. 국가에서 가대(家垈)를 쓰면 반드시 백성에게 값을 주고 나서 취하는데, 유윤겸유혜동의 집을 통행하기가 싫어서, 길을 트지 않아야 할 곳에 대하여 그 값을 주지 않고 길을 트려 하였다. 여느 관원에 있어서도 옳지 않은데, 더구나 간관이겠는가? 사헌부(司憲府)를 시켜 추국(推鞫)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176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694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주생활-택지(宅地) / 농업-토지매매(土地賣買)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332]
    한림(翰林) : 예문관(藝文館)의 관원.

○大司諫柳允謙啓曰: "城中寸土, 各有其主, 何以得空地, 然後可通路哉? 若造家處, 則不可撤去而開路也, 造家餘地, 則當開路出入矣。 臣造家時, 材木皆由子惠仝家寢房底輸入。 今漢城府, 令於此處開路。 臣謂 ‘惠仝, 臣之子也, 臣之出入, 則無妨, 奴、馬不可由寢房底出入也。’ 且族親、朋伴, 當從何處, 而出入乎? 臣以諫官, 將此私事, 仰達宸聰, 無任惶恐, 然勢不得已耳。 今若遣人審之, 則可知。 臣年前六月, 呈漢城府, 漢城府至前月乃決。 此, 臣所謂 ‘淹延不決’ 也。" 傳曰: "遣翰林, 與漢城府官員, 往審其開路可當處。" 檢閱河潤往審, 來啓曰: "柳允謙欲開路之處, 東西皆士族之家, 而時未畢造, 決不可開路也。 且其子惠仝家寢房底窄狹, 人、馬通行亦難。 如不得已而開路, 則惠仝尹晢兩家之間, 有欄墻, 撤去而通路, 似乎可矣。" 傳曰: "大司諫非矣。 國家若用家代, 則必給價於民, 而後取之也。 允謙厭其通行於惠仝之家, 以不當開路處, 不給其價, 而欲就開路, 雖在常員, 猶爲不可, 況諫官乎? 令憲府推鞫。"


  • 【태백산사고본】 27책 176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694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주생활-택지(宅地) / 농업-토지매매(土地賣買)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