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원이 상소하여 술수학(術數學)을 장려하기를 청하다
최호원(崔灝元)이 상소하기를,
"신은 학술(學術)이 거칠고 견문(見聞)이 고루(孤陋)하며, 성품이 본디 민첩하여 잡서(雜書) 보기를 좋아하였는데, 시종(侍從)의 인연이 되어 세묘(世廟)께 알아주심을 받았으며, 겸하여 술학(術學)044) 에 정통하도록 신에게 허락하시고, 이어 신에게 여러 글의 수찬(修撰)을 맡기시는 한편 낮에는 날마다 세 번씩 접견하시니, 은혜와 사랑이 더욱 높았습니다. 이순지(李純之)에게 명해서 신에게 천문(天文)·역산(曆算)의 학문을 가르치게 하여 술수(術數)의 일을 모두 신에게 맡겼으며, 우리 전하께서 즉위하신 처음에 신에게 천문 이습(天文肄習)을 맡겼고, 지난해에 당상관(堂上官)에 승직시켜 신에게 관상감(觀象監)에 벼슬하기를 명하여 삼학 취재(三學取才)의 일을 맡게 하였으며, 무릇 음양 술수(陰陽術數)·택지(擇地)·택일(擇日) 등의 일을 일체 모두 고문(顧問)하시므로, 신도 자신의 임무로 여겨서 잠시도 마음속에 잊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래서 무릇 지나간 산천의 형세를 모두 살펴보고 다른 날 국가의 쓰임에 대비하였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성상께서 황해도에 악한 병이 유행함을 진념(軫念)하셔서 글하는 신하에게 명하여 교서(敎書)를 따로 짓게 하고, 신을 헌관(獻官)으로 정하여 극성(棘城)에 보내서 여제(厲祭)를 행하여 나쁜 병을 없애고 백성을 편히 하기를 바라시니, 신이 향(香)을 받은 뒤로부터 먹어도 입맛이 없고 잠을 자도 자리가 편치 못하였습니다. 가면서 산천의 형세를 보고 악병(惡病)의 근원을 찾아보았는데, 아마 산천의 독기가 여신(厲神)과 더불어 서로 부채질한 소치인가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도선(道詵)의 글을 상고해 비보지설(裨補之設)을 다시 밝히려고 하였습니다. 도선은 식견이 얕은 속사(俗士)의 무리가 아니고 바로 신(神)이 통한 밝고 지혜로운 중입니다. 송도(松都)·한양(漢陽) 두 서울 터를 미리 정하였고, 군현(郡縣)의 산천을 비보(裨補)한 곳은 자못 영험이 있었습니다. 신은 듣건대 추부(秋夫)의 술법이 병을 낫게 할 수 있고, 진군(眞君)의 부적이 백성을 구제할 수 있다고 하는데, 도선의 비보설만이 어찌 백성에게 보탬이 없겠습니까? 신의 학술이 본디 요격 궤사(擾激詭邪)045) 하여 백성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명을 받아 배운 것을 가지고 가슴에 쌓은 바를 펴려고 한 것입니다. 신은 생각하건대 비보(裨補)를 하면 산천의 독기가 저절로 거두어지고, 여제(厲祭)를 지내면 귀신의 억울함이 또한 사라져서 악병이 지식되고 백성이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여깁니다. 지금 도선이 비보(裨補)했던 시설이 허물어지고 철거되어 거의 다하였음을 보고 감히 배운 바로써 단자(單子)를 써서 계달하였는데, 곧 듣건대 홍문관에서 신의 말을 허탄하고 망령스럽다고 탄핵하자, 신의 벼슬을 파면하라고 명하시니, 심장과 간장이 함께 찢어지는 듯하여 몸둘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천일(天日)046) 의 밝음을 다시 보고 어리석은 마음을 만의 하나라도 아뢰게 되겠습니까?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허물을 보면 그것으로 그 사람의 어짊[仁]을 안다고 하였고, 온전하기를 구하다가 훼방을 당하는 것은 어진 사람이 용서하는 바인데, 만약 지금 분변하지 아니하면 천년 후에 누가 신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이는 신이 성명(聖明)한 조정에서 밝히지 않을 수 없는 바입니다. 역대(歷代)의 훌륭한 시대에도 모두 술수(術數)의 선비[儒]가 있었습니다. 여재(呂才)는 《삼원총록(三元摠錄)》을 편찬하였고, 호순신(胡舜臣)은 《지리별집(地理別集)》을 지었는데, 모두 유신(儒臣)으로서 술업(術業)을 겸임하였으나 당시에 잘못이라고 아니하였고, 후세에 높여서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만약 술수를 쓰지 아니한다면 그만이지만 만약 그만둘 수 없는 것이라면 홍문관의 논박(論駁)은 마땅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국초(國初)에 정승 하윤(河崙)은 사문(斯文)047) 의 종장(宗匠)048) 으로서 나라의 원훈(元勳)이 되었으며, 겸하여 술수학(術數學)에 능통하여 여러 학(學)의 임무를 맡아서 산천의 높고 낮은 데를 오르내리며 답사하여 드디어 한양에 도읍을 정하였고, 숭례문(崇禮門) 밖에 못을 파고 숭인문(崇仁門) 안에 산을 만들었는데, 모두 도선의 비보술(裨補術)을 썼으나 당시에 괴이히 여기지 아니하였고, 후세에도 다른 의논이 없었습니다. 신의 어리석음으로 생각하건대 술수의 말을 역대에서는 괴이히 여기지 아니하였는데, 지금은 괴이히 여기고, 술수의 선비를 역대에서는 모두 배척하지 아니하였는데 지금은 논박하니, 무엇 때문입니까? 신이 경연(經筵)의 사표(師表)의 임무를 가졌으면서 감히 비보(裨補)의 말을 하였다면 홍문관의 배척하는 의논이 마땅하나, 성상께서 이미 술수의 임무를 신에게 맡겼는데, 신이 만약 부끄러워하여 하지 아니하면 이는 불충(不忠)이며, 알면서 말하지 아니하면 이는 곧지 못한 것입니다. 신이 본 바의 길흉(吉凶)을 도선의 글에서 질정하려고 한 것은 바로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지극한 정성이지 몸을 위하여 스스로 재주를 파는 꾀가 아니며, 불교를 숭신(崇信)하는 뜻이 아닙니다. 신과 같은 자는 형창(螢窓)049) 의 끝 재주이고, 초모(草茅)050) 의 천한 몸으로서 지위가 이미 높고 벼슬이 이미 나타났는데, 다시 무엇을 요구하여 스스로 재주를 팔고자 하겠습니까? 다만 뒤에 오는 선비가 신의 배척당함을 들으면 누가 즐겨 낮고 더러운 재주를 배워서 유신(儒臣)의 논박에 맞서려고 하겠습니까? 신은 두렵건대 술수학이 장차 전하지 아니하고, 드디어 끊어질까 염려됩니다. 세조 대왕께서 문신(文臣) 중에 나이가 젊은 무리를 뽑아서 술수의 이름을 나누어 칠학(七學)을 설치하였으나, 마침내 한 사람도 부지런히 배워서 재주를 이룩한 자가 없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모두 영진(榮進)을 바라고 구하는 것으로만 마음을 삼고 술수의 이름을 부끄럽게 여기는 때문입니다. 신의 이 글은 복직을 바라는 것이 아니며, 그 재주의 능함을 스스로 자랑함도 아닙니다. 오지기 어리석은 마음속을 드러내어서 신총(宸聰)에 상달하려고 할 따름입니다."
하였는데, 어서(御書)로,
"집정 대신(執政大臣)에게 보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174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66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교육-기술교육(技術敎育) / 출판-서책(書冊)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보건(保健)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 인사-임면(任免)
- [註 044]술학(術學) : 음양술.
- [註 045]
요격 궤사(擾激詭邪) :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간사함.- [註 046]
천일(天日) : 임금을 가리킴.- [註 047]
사문(斯文) : 유교(儒敎).- [註 048]
○崔灝元上疏曰:
臣學術疏荒, 聞見孤陋, 性本僂儸, 喜讀雜書, 夤緣侍從, 知遇世廟, 許臣兼通術學, 任臣以諸書修撰, 晝日三接, 恩眷殊隆。 命李純之, 敎臣以天文曆算之學、術數之事, 悉皆委臣。 逮我殿下卽位之初, 差臣以天文(隷)〔肄〕 習。 往年陞堂上官, 命臣, 仕觀象監, 任三學取才之事, 凡陰陽、術數、擇地、擇日等事, 一皆顧問, 臣亦以爲己任, 頃刻不忘于懷。 凡所經歷山川形勢, 罔不審視, 以備他日國家之用。 恭惟, 聖上軫念黃海惡病之行, 命詞臣別製敎書, 差臣獻官, 遣棘城行厲祭, 冀除惡病, 以安民生, 臣自受香之後, 食不甘味, 寢不安席。 行看山川之形勢, 咨訪惡病之根源, 竊疑山川之毒氣, 與厲神, 相扇之所致。 欲考道詵之書, 而申明裨補之說。 道詵, 非他俗士淺見之流也, 乃神通明智之僧也。 預定松都、漢陽二京, 郡縣、山川裨補之處, 頗有靈驗。 臣聞 ‘秋夫之術, 可以袪病, 眞君之符, 可以濟民’, 道詵裨補之說, 豈獨無益於人民乎? 臣之學術, 本非擾激詭邪, 以惑民生也。 只以受命所學, 冀展所蘊也。 臣意以謂: ‘裨補則山川之毒自收, 厲祭則鬼神之冤亦消, 庶幾惡病寢息, 而人民繁庶矣。 今見道詵裨補之說, 毁撤殆盡, 敢以所學, 書單(字)〔子〕 以啓。 尋聞 ‘弘文館以臣言爲誕妄, 而彈之, 命罷臣職’, 心肝俱裂, 罔知攸措。 何緣復覩天日之明, 以達愚衷之萬一? 臣竊念觀過則斯知仁矣, 求全之毁, 仁人所恕, 儻今不辨, 千載之下, 孰知臣心乎? 此臣之所以不得不辨於聖明之朝也。 歷代盛時, 皆有術數之儒。 呂才撰《三元摠錄》, 胡舜臣述《地理別集》, 皆以儒臣, 兼任術業, 當時不以爲非, 而後世宗而師之。 若不用術數則已, 如不得已, 則弘文之論駁, 當如何耶? 國初政丞河崙, 以斯文宗匠, 爲國元勳, 兼通術數之學, 掌諸學之任, 陟降山川之高下, 遂定都漢陽, 鑑池於崇禮門外, 造山於崇仁門內, 皆用道詵裨補之術, 當時以不爲怪, 後世更無異議。 臣愚以謂: ‘術數之說, 歷代不以爲怪, 而今則以爲怪, 術數之士, 歷代皆不見斥, 而今則論駁,’ 何哉? 臣旣爲經筵師表之任, 而敢言裨補之說, 則弘文之論斥, 宜矣。 聖上旣以術數之任, 委之於臣, 臣若恥而不爲, 則是不忠也; 知而不言, 則是不直也。 臣以所見之吉凶, 欲質道詵之書者, 乃爲國救民之至懇也, 非爲已自售之謀也, 非崇信佛敎之意也。 如臣者, 螢窓末藝, 草茅微蹤, 位已高矣, 職已顯矣, 更何所求, 而自售乎? 但後來之士, 聞臣見斥, 則誰肯學卑陋之技, 以(桃)〔挑〕 儒臣之論駁乎? 臣恐數術之學將不傳, 而遂絶矣。 世祖大王選文臣年少之輩, 分號術數, 設爲七學, 終無一人勤學成才者。 此無他, 竝以希求榮進爲心, 而恥術業之名也。 臣之此書, 非希其復職也, 非自逞其技能也, 不過欲曝愚衷, 以達宸聰而已。
御書:
示執政大臣。
- 【태백산사고본】 26책 174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66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교육-기술교육(技術敎育) / 출판-서책(書冊)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보건(保健)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 인사-임면(任免)
- [註 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