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조 참지 최호원이 여제 헌관으로 극성에서 돌아와 9가지 일을 진헌하다
이보다 앞서 병조 참지(兵曹參知) 최호원(崔灝元)이 여제 헌관(厲祭獻官)으로서 극성(棘城)으로부터 돌아와서 아홉 가지 일을 진언(陳言)하기를,
1. 《오례의(五禮儀)》 주(註)에, 성황(城隍) 1위(位)에는 포해(脯醢)와 실과가 있고, 무사귀신위(無祀鬼神位)에는 밥·국 두 그릇, 양(羊)·돼지 두 그릇[俎]으로 되었습니다. 전망(戰亡)한 장사(將士)의 넋이 성황의 신(神)보다 더 높고 귀한 이가 없지 아니할 것인데, 전물(奠物)은 풍족함과 간소함이 두드러지게 다르니, 이는 아마 소홀한 듯합니다. 본도(本道)는 노루·토끼·실과가 많으니, 청컨대 ‘무사귀신위’에 포[脯]·해(醢) 각각 한 그릇과 실과 두 그릇을 더하게 하소서.
1. 황주(黃州)는 사객(使客)이 모이는 곳인데, 문화(文化)는 잔폐(殘弊)한 고을로서 물산(物産)이 많지 아니하여, 봄·가을 제사의 전물(奠物)을 이바지하기가 어려우니, 청컨대 가까운 여러 이웃 고을에 나누어 정하게 하소서.
1. 교서(敎書) 안에는, ‘생폐 불결(牲幣不潔)’이란 네 글자가 있는데, 《오례의》 주를 상고하건대 실은 폐백(幣帛)이 없습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주(州)에서 항상 행하는 여제(厲祭)에는 향축(香祝)과 폐백이 없는 것이 예(例)입니다. 그밖에 향축(香祝)을 내리는 다른 악독(岳瀆)·산천(山川)에는 모두 폐백이 있으며, 성황(城隍)도 산신의 유(類)이므로 특별히 향축을 내리는데, 별제(別祭) 때에만 폐백이 없으니, 이치에 온당치 못합니다. 청컨대 《오례의》 주를 상고하여 고쳐 정하소서.
1. 황해도는 악병(惡病)이 있는데, 북도(北道)는 봉산(鳳山)·황주(黃州), 남도(南道)는 문화(文化)·풍천(豊川)이 더욱 심하며 그 사이에 안악(安岳)·신천(信川)은 이 병이 없습니다. 신이 가만히 산천 형세를 살피건대, 안악·신천은 모두 토산(土山)으로서 형세가 단정하고 두터우며, 지롱(支壠)014) 이 빙 두르고 산천이 둘러쌓였으니 악질이 나지 아니함이 마땅하나, 황주와 봉산은 석산(石山)이 높게 솟아서 모두 염정(廉貞)·독화(獨火)의 형상이며, 지롱(支壠)이 나누어지고 수파(水破)015) 가 거두지 아니하여 모두 귀겁(鬼劫)의 모양이므로, 산천에 독기가 없을 수 없어 질병과 여귀가 생김은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산이 높고 물이 아름다와서 길(吉)하고, 흉한 그 반응이 가장 빠릅니다. 도선(道詵)이 삼천 비보(三千裨補)016) 를 설치하고, 또 경축진양법(經祝鎭禳法)017) 이 있었는데, 현재 비보(裨補)한 곳의 절이나 탑, 그리고 못과 숲을 거의 다 허물어뜨려서 없어졌으니, 산천의 독기가 흘러 모여서 병이 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신은 그윽이 의심하건대 악질이 유행하는 것은 비록 전쟁에 죽은 외로운 넋의 억울함이 맺힌 까닭이라고 하나, 또한 산천의 독기가 흘러 모여서 화(禍)를 빚은 소치로 그러한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청컨대 도선(道詵)의 산천 비보(山川裨補)하는 글에 의거하여 진양(鎭禳)018) 하는 법을 거듭 밝히소서.
1. 황주(黃州)의 성황당(城隍堂)은 비좁고 불결하여 소홀함이 매우 심하니, 청컨대 담장과 집을 수리하게 하소서.
1. 신이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를 상고하건대, 괴려(乖戾)한 기운이 산에 응하면 악한 물건이 나고, 사람에게 응하면 간휼(奸譎)이 난다고 하였는데, 지금 황해도·평안도에 악한 물건이 행하고 있으니, 괴려한 기운이 없지 아니합니다. 도둑이 일어나서 불을 지르고 사람을 해치는 자가 있고, 흉악한 짐승이 많이 날뛰어 집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잡아 먹는 것도 있으니, 이는 작은 변고가 아닙니다. 신은 청컨대 한 용맹한 장수에게 명하여 군졸을 거느리고 가서 낮에는 호랑이를 잡고 밤에는 도둑을 잡게 하여 백성의 해(害)를 덜어 주도록 하소서.
1. 황해도의 악질(惡疾)이 평안도에 흘러 들어와서 중화군(中和郡) 일대에 사람이 죽어서 거의 없어졌으니, 청컨대 중화군 지역에도 여제(厲祭)를 마련하게 하소서.
1. 황해도와 평안도 백성은 부방(赴防)과 물건 실어나르고 사람을 호송하기에 시달려서 부실(富實)한 자가 적고 빈궁한 자가 많으며, 죽은 사람은 대개 장사하지 못하였는데, 신축년019) ·임인년020) 에는 연달아 흉년이 들어서 굶어 죽는 자가 잇대어 생겼으며, 대다수가 구렁을 메워서 뼈가 모래 자갈에 드러 났습니다. 사람의 뼈를 덮고 묻는 것은 월령(月令)021) 에 실려 있는 어진 정치의 하나이니, 청컨대 여러 고을 수령으로 하여금 아내가 있는 중을 뽑아서 오작(仵作)022) 의 역(役)을 정하여 춘추로 거두어 묻게 하고, 또 행실이 있는 승도(僧徒)로 하여금 수륙재(水陸齋)를 베풀기를 권하여 굶주리고 목마른 넋을 위로하소서.
1. 경기(京畿)와 황해도는 해마다 흉년이 들어 역로(驛路)가 조잔(彫殘)하고, 마필(馬匹)이 피곤하여 정해진 수가 모자라는데, 만약 중국 사신의 행차가 있으면 감당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청컨대 따로 조신(朝臣)을 보내어 점고(點考)하여 계문(啓聞)하게 한 뒤에 상의하여 조처하소서."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의논하기를 명하니, 정창손(鄭昌孫)은 의논하기를,
"제1조는 《사전(祀典)》023) 의 제품(祭品)이 이미 상세히 정해져 있는데, 어찌 보태거나 덜어서 《사전》을 모독하겠습니까? 제2조의 전물(奠物)은 《사전》에 이미 정하였는데, 어찌 다시 고쳐서 다른 고을에 옮겨 정할 수 있겠습니까? 제3조의 폐백(幣帛)이 있고 없음은 다시 예문(禮文)을 상고하여 시행할 것입니다. 제4조 풍수설(風水說)은 신이 알지 못하나, 황해도 악병(惡病)의 상태가 어찌 풍수의 까닭으로써 그러하겠습니까? 이는 바로 괴탄(怪誕)한 말이므로 족히 믿을 것이 못됩니다. 제5조의 성황(城隍)은 그 도의 감사(監司)로 하여금 다시 수정(修整)을 가하게 할 것입니다. 제6조는 오활(迂闊)024) 한 듯합니다. 제7조의 중화(中和) 지방에 여제(厲祭)를 설치하는 것은 이치에 그럴듯하나, 황해도에 악병이 처음 발생한 뒤에 해마다 향축(香祝)을 내려 기도하였지만 그 효과를 보지 못하였으니, 여제를 실시하라는 말도 거리가 먼 듯합니다. 제8조의 사람의 뼈를 덮어 묻는 것은 이미 국령(國令)이 있으니, 거듭 밝혀서 거행할 것입니다. 제9조는 조관(朝官)을 보내어 심검(審檢)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홍응(洪應)은 의논하기를,
"최호원(崔灝元)의 단자(單子)는 불경(不經)025) 한 말이 많으니, 족히 취신할 것이 못되나, 해조(該曹)에 내려서 적당한 여부를 마감(磨勘)하게 하소서."
하고, 한명회(韓明澮)·심회(沈澮)·윤필상(尹弼商)·이극배(李克培)·노사신(盧思愼)·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최호원의 아뢴 바를 해사(該司)로 하여금 마감하여 아뢰게 한 뒤에 다시 의논할 것입니다."
하였는데,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해조(亥曹)에 내려서 곡진(曲盡)하게 마련(磨鍊)하게 하였으나, 역시 행할 수 없는 것과 믿을 수 없는 일이 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174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662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사법-치안(治安) / 재정-역(役) / 교통-육운(陸運) / 농업-농작(農作) / 풍속-예속(禮俗) / 과학-생물(生物)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보건(保健) / 식생활-기명제물(器皿祭物)
- [註 014]지롱(支壠) : 가지처럼 내려온 작은 산.
- [註 015]
수파(水破) : 파구(破口).- [註 016]
삼천 비보(三千裨補) : 도선(道詵)이 국내(國內) 산천(山川)의 기운을 살펴서 악기(惡氣)가 있는 곳에는 절이나 탑을 세우고, 못을 파거나 숲을 만들어 화(禍)가 생기는 것을 막게 한 것을 이름.- [註 017]
경축진양법(經祝鎭禳法) : 불경을 외고 기도하며 액풀이하는 방법을 이름.- [註 018]
진양(鎭禳) : 액풀이.- [註 019]
신축년 : 1481 성종 12년.- [註 020]
임인년 : 1482 성종 13년.- [註 021]
월령(月令) : 《예기(禮記)》의 편명(篇名).- [註 022]
오작(仵作) : 시체를 주워 맞추는 일을 하던 하인.- [註 023]
○先是, 兵曹參知崔灝元以厲祭獻官, 自棘城還, 陳言九事。 "一, 《五禮儀》註, 城隍一位, 有脯、醢、實果, 無祀鬼神位, 飯、羹二器, 羊、豕二俎。 戰亡將士之魂, 不無尊貴, 過城隍之神, 而奠物豐簡逈異, 似乎褻慢。 本道多獐、兎、實果, 請無祀鬼神位, 加脯、醢各一器, 實果二器。 一, 黃州使客輳集之地, 文化殘敝之邑, 物産不多, 春、秋祭奠物, 難於供辦。 請分定隣近諸邑。 一, 敎書內有牲、幣不潔四字, 考《五禮儀》註, 實無幣帛。 臣竊念, 州常行厲祭, 則無香祝、幣帛, 例也。 他餘降香祝岳瀆、山川, 皆有幣帛, 而城隍亦山神之類也, 特降香祝, 別祭時, 獨無幣帛, 於理未穩。 請考《五禮儀》註, 改詳定。 一, 黃海道惡病, 北道則鳳山、黃州, 南道則文化、豐川爲甚。 其間安岳、信川, 無此病。 臣竊審山川形勢, 安岳、信川, 類皆土山, 形勢端厚, 支壠盤旋, 山川回抱, 惡疾不作, 宜矣。 黃州、鳳山, 則石山嵯峨, 皆廉貞、獨火之象, 支壠分擘, 水破不收, 皆鬼刦之形, 山川不無毒氣, 爲疾爲厲, 此其宜也。 我國, 山高水麗, 爲吉爲凶, 其應最急。 道詵設三千裨補, 又有經祝鎭禳之法, 今也裨補之處, 寺社、塔表、池藪, 毁撤殆盡, 山川毒氣, 注爲疾厲, 亦不可知也。 臣竊疑, 惡病流行, 雖云: ‘戰亡孤魂冤結之所 使,’ 亦莫非山川毒氣, 流注釀禍之致然也。 請據道詵山川裨補之書, 申明鎭禳。 一, 黃州城隍堂, 隘窄不潔, 褻慢太甚。 請令修葺墻屋。 一, 臣按《皇極經世書》, ‘乖戾之氣, 山應之, 則惡物生焉; 人應之, 則奸譎生焉。’ 今也黃海、平安, 惡物之行, 不無乖戾之氣。 盜賊興行, 縱火害人者, 有之; 惡獸繁多, 毁屋食人者, 亦有之。 此非細故。 臣請命一勇將, 領軍卒以遣, 晝則捉虎, 夜則捕賊, 以除民害。 一, 黃海惡病, 流入平安, 中和一郡, 死亡殆盡。 請中和地面, 亦設厲祭。 一, 黃海、平安之民, 困於赴防、騎載、護送, 富實者少, 貧窮者多。 死者類皆不葬, 加以辛丑、壬寅, 連年凶險, 餓莩相望, 多塡溝壑, 骨曝沙礫。 掩骼埋胔, 《月令》所載, 仁政之一端。 請令諸邑守令, 抄有妻僧人, 定仵作之役, 春秋拾(理)〔埋〕 , 又令有行僧徒, 勸設水陸, 以慰飢渴之魂。 一, 京畿、黃海道, 連年凶險, 驛路彫殘, 馬匹疲困, 不盈額數。 脫有天使之行, 似難支當。 請別遣朝臣, 點考啓聞, 後蘇復之策, 商議措置。" 至是, 命議于領敦寧以上。 鄭昌孫議: "第一條, 祀典、祭品, 旣已詳定, 豈可加減, 以瀆祀典哉? 第二條, (鄭)〔奠〕 物祀典已定, 豈可更改, 移定他邑? 第三條, 幣帛有無, 更考禮文施行。 第四條, 風水之說, 臣未知, 然黃海道惡病之狀, 豈以風水而然哉? 是乃怪誕之說, 不足信也。 第五條, 城隍, 令其道監司, 更加修整。 第六條, 似乎迂闊。 第七條, 中和地面, 設厲祭, 似乎理然, 然黃海道惡病始發之後, 歲降香祝祈禱, 未見其效, 設厲祭之說, 亦似迂遠。 第八條, 掩骼埋胔, 已有國令, 申明擧行。 第九條, 遣朝官審檢爲便。" 洪應議: "灝元單(字)〔子〕 , 語多不經, 不足取信。 然下該曹, 便否磨勘。" 韓明澮、沈澮、尹弼商、李克培、盧思愼、尹壕議: "灝元所啓令該司, 磨勘以啓, 後更議。" 御書曰:
下該曹, 曲盡磨鍊, 亦有不可行、不可信之事。
- 【태백산사고본】 26책 174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662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사법-치안(治安) / 재정-역(役) / 교통-육운(陸運) / 농업-농작(農作) / 풍속-예속(禮俗) / 과학-생물(生物)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 보건(保健) / 식생활-기명제물(器皿祭物)
- [註 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