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절사 한치형보다 앞서 돌아온 통사가 듣고 본 사목을 아뢰다
성절사(聖節使) 한치형(韓致亨)보다 앞서서 돌아온 통사(通事)가 듣고 본 사목(事目)을 아뢰었는데 그 대략에 이르기를,
"금년 10월 13일 이른 아침에 교위(校尉) 두 사람이 편지를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조선 사신(朝鮮使臣)은 정 태감(鄭太監)의 바깥채[外第]로 오시오.’ 하였습니다. 사신이 즉시 달려가니, 태감(太監) 곡청(谷淸)이 맞아들이며 말하기를, ‘어제 간곡하게 아뢰었더니, 황제(皇帝)께서 말씀하기를, 「생산(生産)되지 않는 것은 없애고 준비하기 어려운 것은 조선 국왕이 바치는 대로 하라.」 하였는데, 나는 그 성지(聖旨)를 받고 나대로 무척이나 기뻐하였소. 재상(宰相)의 의향은 어떠하시오?’ 하므로 사신이 앞으로 나아가 치사(致謝)하기를, ‘우리 전하(殿下)께서 들으시면 얼마나 기뻐하고 감격해 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술과 음식을 대접한 다음 사신이 앞에 나아가 청하기를, ‘비록 우리 나라에서 마련하기 쉬운 물건이라도 그 곳에서 그렇게 긴요한 물건이 아닌 것은 대인(大人)이 지시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니, 곡청이 말하기를, ‘전일에 재상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마음대로 정탈(定奪)1111) 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이미 성지(聖旨)를 받았소.’ 하였습니다. 사령(使令) 김저(金渚)가 별헌(別獻)하는 물목(物目)을 보이니, 곡청이 말하기를, ‘생산되지 않는 금(金)·상아(象牙)·초서피(貂鼠皮)·토표피(土豹皮)·융전(絨纏)·화초(花草) 등의 물건은 바치지 않아도 됩니다. 그 가운데 초서피와 토표피는 생산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으나, 내가 힘써 아뢰어서 또한 면제시킨 것이니, 재상은 그렇게 아시오. 그리고 자색 명주[紫綿紬]·황색 명주[黃綿紬]·유청색 면포(柳靑色綿布)·자색 면포(紫色綿布)·대홍색 면포(大紅色綿布)·백색 세저포(白色細苧布)·문어(文魚)·대구어(大口魚)·전복어(全鰒魚)·오징어[烏賊魚]·곤포(昆布)·향점(香簟)·인삼(人參) 등의 물건은 궁중에서 긴요하게 쓰이는 것이고, 녹색 면포(綠色綿布)·다갈색 명주[茶褐綿紬]·초록색 면포(草綠色綿布)·다갈색 면포(茶褐色綿布)·저사 겸직포(苧絲兼織布) 등의 염색물(染色物)은 그 곳에서 그렇게 긴요한 것이 아니니, 전부 감면해도 됩니다. 건광어(乾廣魚)·건수어(乾秀魚)·다시마[塔士麻]·미역[海莩耳] 등의 물건도 긴요한 것이 아니니, 전부 감면해도 됩니다. 백색 저포 삼아(白色苧布衫兒)·흑색 마포 삼아(黑色麻布衫兒)·녹대포(鹿大脯)·녹편포(鹿片脯)·소주(燒酒) 등의 물건은 반으로 감해도 되며, 강궁(强弓)·중궁(中弓)은 각각 5장(張)을 감하고, 약궁(弱弓)은 10장을 감하였습니다. 잣[松子]도 감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 곳의 잣은 그 알맹이가 충실하지 못한데 그대의 나라에서 생산되는 잣은 충실하면서도 향기로우니, 만약 어렵지 않거든 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호아(虎牙)는 비록 마련하기 어려우나 전부 감할 수는 없고, 이번에 가지고 온 수에서 반을 감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낭(繡囊) 등의 물건은 비록 융선(絨線)을 사용하지만 궁중에서 노리개로 삼는 물건이니 역시 전부 감할 수는 없으며, 인삼은 궁중에서 차[茶]로 쓰는 것이니 감할 수가 없습니다. 자황색(紫黃色)의 명주[綿紬]는 용포(龍袍)를 만들어 항상 입는데, 다른 색은 수를 많이 감하였으니, 만약 여유가 있으면 지금 가지고 온 수에 더 보태는 것이 좋을 것이고, 다른 물건은 지금 가지고 온 수에서 적당하게 감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내가 비록 이렇게 지시하였으나, 만약 갑자기 그쪽에서 한꺼번에 너무 많이 감하면 조정에서 반드시 내가 그대의 말을 듣고 조선 국왕으로 하여금 편리한 대로 바치게 하여서 이렇게 감소(減少)되었다고 할 것이니, 그렇게 되어서는 안될 것이오. 더구나 조정에서 전하(殿下)를 대우함이 친왕(親王)과 다름없이 하는데, 어찌 갑자기 감하겠소? 점차로 감하여 바치는 것이 좋을 것이니, 재상은 이러한 뜻을 가지고 자세히 아뢰어서 내가 조정의 원망을 듣지 않게 해야 할 것이오.’ 하였습니다. 사신이 앞에 나아가 청하기를, ‘비록 이러한 성지(聖旨)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다만 전하는 말로만 회계(回啓)할 것 같으면 전하께서 미안(未安)하게 여길 것이니, 성지를 받기를 원합니다.’ 하니, 곡청이 말하기를, ‘성지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마땅히 재상이 돌아갈 때에 다시 아뢰어서 취품(取稟)하겠소.’ 하였습니다. 14일에 교위(校尉) 두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곡 태감(谷太監)이 성지를 받고 사신을 불러 바깥채[外第]에서 서장(書狀)을 주려고 합니다.’ 하므로 사신이 즉시 달려가니, 곡청이 말하기를, ‘성지가 있습니다.’ 하기에, 사신이 즉시 꿇어앉자 곡청이 탁자 위의 성지를 집어서 주었습니다.
성지에 이르기를, ‘조선국(朝鮮國)에서 차견(差遣)하여 온 배신(陪臣) 한치형(韓致亨) 등에게 말해주니, 알도록 하라. 돌아가거든 국왕에게 전하여, 궁중에 바치는 방물(方物)은 본국(本國)에서 생산되지 아니하여 마련하기가 어려운 것은 없애고, 다만 본국에서 생산되는 것과 제조하는 것은 전번의 수에 구애하지 말고 임의대로 마련하여 와서 바치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곡청이 말하기를, ‘재상의 뜻에는 어떠하시오? 나는 요즈음 재상을 위하여 호의를 베푸느라 가슴을 태웠소. 어제 다시 아뢰기를, 「조선국에서 별헌(別獻)하는 물건 중에는 거기에서 생산되지 아니하여 마련하기 어려운 것이 있으므로, 국왕은 무한한 세월을 두고 계속하기가 어려워 매우 가슴을 태우고 있다는 일을 한치형이 여러 번 나에게 말하며 성지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하였더니, 황제(皇帝)께서 즉시 사례감(司禮監)에게 전교(傳敎)하였소. 나는 재상을 위하여 이렇게 마음을 씁니다.’ 하고, 이어 전하에게 하사하는 저사(紵絲) 6표리(表裏), 화은(花銀) 1백 냥(兩)을 주었고, 사신에게는 저사 2표리, 화은 20냥을 주었습니다. 별도로 상아(象牙) 5매(枚), 화은 5백 냥을 주면서 말하기를, ‘이 물건은 전과 같이 제조하되 될 수 있으면 세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바칠 것이며, 소유한 물건 중에 은(銀)으로 만든, 호로고아(葫蘆鼓兒)·중합아(中蛤兒)·소합아(小蛤兒)는 될 수 있는 대로 속이 비게 만들어 가져오는데, 중합아·소합아는 많이 만드시오.’ 하고, 또 말하기를, ‘이번에 가서 상아로 만드는 노리개[要兒]는 만약 명년에 다 만들지 못할 경우에는 마땅히 그 다음에 만들어 바쳐도 됩니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차씨(車氏)·장씨(藏氏)의 집에는 예전과 같이 통신(通信)하도록 성지(聖旨)를 전하라고 하였으며, 또 차씨·장씨가 회간 왕비전(懷簡王妃殿)1112) 에 바치는 홍초복(紅綃袱) 1봉(封)을 주었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173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649면
- 【분류】외교-명(明)
○聖節使韓致亨先來通事, 啓聞見事目。 略曰: "本年十月十三日早朝, 校尉二人持簡曰: ‘朝鮮使臣, 於鄭太監外第, 來赴。’ 使卽赴之, 太監谷淸迎入, 言曰: ‘昨日曲奏, 帝曰: 「不産的罷; 難備的, 隨王所進。」’ 我承此聖旨, 私喜萬萬, 宰相意何如?’ 使就前致謝曰: ‘殿下聞之, 喜感何量?’ 設酒飯饋訖, 使前請曰: ‘雖我國易備之物, 這裏不打 緊之物, 深望大人指揮。’ 淸曰: ‘前日聞宰相之言, 未能自擅定奪, 今也已取旨耳。’ 使令金渚示別獻物目, 淸曰: ‘不産金、象牙、貂鼠皮、土豹皮、絨纏、花草等物, 可勿進也。 其中貂鼠、土豹(布)〔皮〕 , 不可謂不産, 然我力奏亦免, 宰相知道。 紫綿紬、黃綿紬、柳靑綿布、紫綿布、大紅緜布、白細苧布、文魚、大口魚、全鰒魚、烏賊魚、昆布、香蕈、人蔘等物, 內裏打緊。 綠緜布、茶褐綿紬、草綠綿布、茶褐綿布、苧絲兼織布此(羕)〔樣〕 染色, 這裏不打緊, 全減可也。 乾廣魚、乾秀魚、塔士麻、海菜耳等物, 亦不打緊, 全減可也。 白苧布衫兒、黑麻布衫兒、鹿大脯、鹿片脯、燒酒等物, 減半可也。 强弓、中弓, 各減五張, 弱弓減十張。 松子亦可減, 然此處松子, 其仁不實, 爾國松子, 實而香肥, 若不難, 可勿減也。 虎牙雖難備, 不可全減, 於今來數, 減半可也。 繡囊等物, 雖用絨線, 內裏戲玩之物, 亦不可全減。 人蔘, 內裏茶用, 不可減也。 紫黃色綿紬, 做袍恒御, 他色多有減數, 若有餘於今來數, 加增可也。 餘物件, 於今來數, 量宜而減可也。 我雖如此指揮, 若遽爾一時太減, 則朝廷必謂: 「我爲因汝言, 使朝鮮國王, 隨宜來進, 以致如此減少云爾」, 則不可矣。 況朝廷待殿下, 與親王無異, 豈宜遽減? 漸次減進可也。 宰相須將此意詳啓, 勿使我見過於朝廷。’ 使就前請曰: ‘雖有聖旨如此, 若但以傳言回啓, 則殿下以爲未安, 願受聖旨。’ 淸曰: ‘聖旨, 我不敢擅, 當於宰相將還時, 更奏取稟。’ 十四日, 校尉二人來曰: ‘谷太監承聖旨, 招使書狀于外第, 使卽馳往。’ 淸曰: ‘有聖旨,’ 使卽跪, 淸取聖旨于卓上授之。 聖旨曰: ‘說與朝鮮國差來陪臣韓致亨等知道。 回還傳與國王, 內進方物, 不係本國所出, 艱於措置者罷。 但係本國所産所製, 不拘前數, 任意造辦來貢。’ 淸曰: ‘於宰相之意何如?’ 我近日爲宰相, 好生憔心。 昨日更奏云: 「朝鮮國別獻物件內, 有不産難備之物, 國王以天長地久難繼, 十分憔心事, 韓致亨屢屢說我, 要領聖旨。」 帝卽傳司禮監。 我爲宰相, 用心如此。’ 仍受欽賜殿下紵絲六表裏、花銀一百兩, 使絲紵二表裏、花銀二十兩。 別給象牙五枚、花銀五百兩曰: ‘此物件, 照依前製, 務要細巧, 精造來進。 所有物件內, 銀做的葫蘆皷兒、中蛤兒、小蛤兒, 須要內空造將來, 中蛤、小蛤, 多多做。’ 又曰: ‘今去, 象牙所做要兒, 若於明年, 未能畢造, 當於後製進可也。’ 又車氏、藏氏家, 依舊通信事, 傳聖旨。 又授車氏、藏氏所進懷簡王妃殿紅綃袱一封。"
- 【태백산사고본】 26책 173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649면
- 【분류】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