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빈 박씨가 창원군 이성의 시호를 고쳐주기를 청해 대신들과 의논하다
근빈(謹嬪) 박씨(朴氏)가 아뢰기를,
"지금 죽은 아들 창원군(昌原君) 이성(李晟)에게 시호(諡號)를 여도(戾悼)라고 내렸는데, 주(註)에 이르기를, ‘전의 허물을 뉘우치지 아니함을 여(戾)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성이 어렸을 때에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고 계교함이 없었으며, 그 뒤에 심질(心疾)870) 을 얻어서 바깥 사람과 사귀지 아니하였는데, 이름을 여(戾)라고 하였으니, 이는 백세(百世)에 고치기 어려운 것으로서 매우 민망하게 여깁니다."
하였는데, 명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의정부에 의논하게 하였다. 정창손(鄭昌孫)·심회(沈澮)·윤필상(尹弼商)·홍응(洪應)·이극배(李克培)·윤호(尹壕)·김겸광(金謙光)은 의논하기를,
"성(晟)이 주색(酒色)으로 그 몸을 마쳤고, 또 고읍지(古邑之)를 때려 죽인 형적(形跡)이 이미 드러났는데 성상의 물음을 받고도 불복하였으며 그 밖에 드러난 행적(行蹟)이 없었으니,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하고, 한명회(韓明澮)·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시호(諡號)를 내려서 이름을 바꾸는 것은 임금이 대신을 우대하는 예(禮)이니, 그 사랑하는 영광이 지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평생의 행적을 살펴서 시호를 정하기 때문에 착하고 악함이 여기에 드러나며, 권장과 징계가 여기에 있는 것이니, 이는 천하의 공의(公議)인지라 바꿀 수 없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시호를 의논할 즈음에 선과 악을 마땅히 서로 맞게 할 것이요, 하나의 실수로써 그 큰 덕을 버릴 수 없으며, 작은 착함으로써 큰 악함을 덮을 수 없습니다. 평생에 행한 바를 통해 의논하고 강구(講究)해 정하면 거의 사실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정리(情理)에 합할 것입니다. 성(晟)이 고읍지(古邑之)를 죽인 일은 진실로 광패(狂悖)하나, 이는 특히 나이 어릴 적에 계획 없이 일시에 분(憤)을 발한 일인데, 어찌 이로써 그 평생이 모두 이와 같다고 평가하겠습니까? 성은 뒤에 허물을 고친 일이 있으니, 여(戾)라고 이름하는 것은 과할 듯합니다. 예전에 한(漢)나라 태자(太子) 거(據)가 군사를 일으켜서 승상(丞相)과 더불어 경사(京師)에서 서로 싸웠기 때문에 여(戾)로써 시호를 하였는데, 성의 악함은 이와 같은 데에는 이르지 아니한 듯합니다."
하고, 서거정(徐居正)·허종(許琮)은 의논하기를,
"이름을 유(幽)·여(厲)로 하면 아무리 효도한 아들과 사랑하는 손자라 하더라도 백세에 고칠 수 없습니다. 한(漢)나라 도태자(悼太子)는 선제(宣帝)의 조부인데 시호를 여(戾)라고 하였으나, 선제로서도 그것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임금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신하로서 이미 내린 시호를 받고서 다시 고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171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631면
- 【분류】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 [註 870]심질(心疾) : 심병(心病).
○戊辰/謹嬪朴氏啓曰: "今賜諡卒子昌原君 晟 戾悼, 註云: ‘不悔前過曰: 「戾」’。 晟, 年幼時, 直情而行, 無計較, 其後得心疾, 不交外人, 名之曰: ‘戾,’ 百世難改, 深以爲悶。" 命示領敦寧以上及議政府。 鄭昌孫、沈澮、尹弼商、洪應、李克培、尹壕、金謙光議: "晟以酒色終其身, 且樸殺古邑之形迹已露, 承上問不服, 而無他表表行跡, 改之爲難。" 韓明澮、盧思愼議: "賜諡易名, 君上所以優禮大臣, 其寵榮至矣。 然摭其平生行跡, 以爲諡, 故善惡斯著, 而勸懲存焉。 此天下公議, 不可易也。 雖然, 議諡之際, 善惡當相準, 不可以一眚, 而棄其大德, 以小善, 而掩其大惡也。 平生所行, 通議講定之, 庶不爽實, 而合於情理。 晟殺古邑之之事, 誠爲狂悖, 然此特年少無計, 一時發憤之事耳, 豈可以此諉其平生, 皆如是乎? 晟後有改過之事, 名之曰: ‘戾,’ 恐爲過矣。 昔漢太子據擧兵, 與丞相, 戰於京師, 故以戾爲諡。 晟之惡, 恐不至如此。" 徐居正、許琮議: "名之幽、厲, 雖孝子慈孫, 百世不能改。 漢 悼太子, 宣帝之祖也, 諡曰: ‘戾,’ 宣帝尙不能改, 人君尙然, 況人臣旣受賜諡, 可追改乎?"
- 【태백산사고본】 26책 171권 9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631면
- 【분류】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