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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71권, 성종 15년 10월 11일 을축 2번째기사 1484년 명 성화(成化) 20년

우의정 홍응이 창덕궁에 임금이 거처할 것이라고 한데 대해 변명하다

우의정(右議政) 홍응(洪應)이 와서 아뢰기를,

"신이 전일에 계달한 뜻은 다름이 아닙니다. 비록 선왕(先王)·선후(先后)의 능침(陵寢)을 경영해 이룩하였다 하더라도 논공(論功)은 오히려 여기에 이르지 아니할 것인데, 하물며 창경궁은 전하께서 양전(兩殿)을 모시고 스스로 거처하시는 곳이겠습니까? 논상(論賞)이 과중한 듯하여서 아뢴 것입니다. 사인(舍人) 이감(李堪)이 상교(上敎)를 듣고는 다만 신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스스로 거처하는 곳임을 알았느냐고 하신다’ 하고, 다시 물어서 도로 계달하라는 전교는 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신이 다시 아뢰지 아니하였었는데, 신이 지금 예궐(詣闕)하여 비로소 그 말을 듣고는 신이 황송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스스로 거처하실 곳이라고 아뢴 것은 창경궁 안에 승정원(承政院)과 제사(諸司)의 제도가 갖추어 있기 때문에 신의 생각으로는 이것이 스스로 거처하실 곳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내가 있는 창덕궁은 좁고 누추하며 쓰러질 위험이 있어서 수선(修繕)하고자 하였는데, 정희 왕후(貞熹王后)께서 일찍이 하교하시기를, ‘만약 창덕궁을 수리하려면 마땅히 먼저 수강궁(壽康宮)을 수리하여 옮긴 뒤에 점차로 수리할 것이다’고 하셨고, 또 듣건대 세종(世宗)께서 일찍이 문종(文宗)께 이르시기를, ‘경복궁은 비록 장려(壯麗)하나 이 도성(都城)의 바른 명당(明堂)은 바로 창덕궁이다.’고 하셨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를 임금은 반드시 남면(南面)하고 다스리는 것인데, 창경궁은 동향인지라 임금이 정치하는 곳이 아니라고 여긴다. 다만 창덕궁을 수리할 동안 잠시 옮겨 있을 뿐인데 정승(政丞)이 스스로 거처할 곳이라고 말하니, 이는 오로지 이 궁(宮)을 내가 거처할 곳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전일 경연(經筵)에서 이경동(李瓊仝)이 말하기를, ‘《실록》을 상고할 때에 홍응이 이르기를, 「태조(太祖)께서 경복궁이 지나치게 크고 화려하다고 하시어 상(賞)을 논하지 아니하셨다.」라고 합니다.’ 하였는데, 태조께서 만일 크고 화려하다 하여 상을 논하지 아니하셨으면 이는 진실로 아름다운 일인데, 역사에 빠뜨리고 쓰지 아니하였으니, 이로써 보면 사관(史官)의 기록도 족히 다 믿을 수 없다. 내가 이런 까닭으로 《실록》에 의하여 논상(論賞)하지 아니하였는데, 이제 스스로 거처할 곳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였다. 홍응이 아뢰기를,

"선왕(先王)·선후(先后)의 능침(陵寢)의 논상도 오히려 이와 같지 아니한데, 이제는 양전(兩殿)을 봉양(奉養)하고 스스로 거처하실 궁(宮)에 포전(褒典)852) 이 지나치기에 신이 이로써 아뢴 것뿐이며, 다시 다른 뜻은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171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631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인사-관리(管理) / 역사-편사(編史) / 정론-간쟁(諫諍)

  • [註 852]
    포전(褒典) : 포상(褒賞)하는 은전(恩典).

○右議政洪應來啓曰: "臣前日所啓之意, 無他, 雖營先王、先后陵寢, 論功尙不至此, 況昌慶宮, 殿下侍兩殿自處之所? 論賞似過重, 故啓之。 舍人李堪聞上敎, 但言於臣云: ‘何以知自處乎?’ 不言更問還啓之敎, 故臣不更啓。 臣今詣闕, 始得聞焉, 臣無任惶悚。 臣以自處啓之者, 昌慶宮內承政院及諸司制作俱備, 故臣意謂: ‘是自處之所耳。’" 傳曰: "予所居昌德宮, 隘陋傾危, 欲繕修。 貞熹王后嘗敎曰: ‘若修理昌德宮, 當先修壽康宮移御, 漸次修理耳。’ 且聞 ‘世宗嘗謂文宗曰: 「景福宮, 雖壯麗, 然此都正明堂, 乃昌德宮也」。 予意 ‘人君必須南面出治, 昌慶宮東向也, 非人君出治之所。’ 但昌德宮修理間, 暫移御耳, 政丞以自處言之, 是專以此宮爲予居處也。 且前日經筵李瓊仝言: ‘考實錄時, 洪應云: 「太祖景福宮過壯麗, 不論賞」’。 太祖若以(社)〔壯〕 麗而不賞, 則此實美事, 史闕而不書。 以此觀之, 史官之錄, 亦不足盡信。 予以故不依實錄論賞, 今以自處言之, 何也?" 曰: "先王、先后陵寢論賞, 尙不如此, 而今則奉養兩殿自處之宮, 褒典過中, 臣以此啓之耳, 更無他意。" 傳曰: "知道。"


  • 【태백산사고본】 26책 171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631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 인사-관리(管理) / 역사-편사(編史) / 정론-간쟁(諫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