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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70권, 성종 15년 9월 18일 임인 1번째기사 1484년 명 성화(成化) 20년

경연 후 영사 한명회의 건의로 공·사천의 추쇄 방법에 대해 논의케 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영사(領事) 한명회(韓明澮)가 아뢰기를,

"공·사천(公私賤)의 도망하여 누락된 자들을 국가에서 지금 바야흐로 추쇄(推刷)772) 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난날에는 추쇄한 수가 20만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번은 30만이나 됩니다. 그러나 지금 다 추쇄하지 못한 자가 어찌 10만이 되지 못하겠습니까? 공·사천을 용납하여 숨겨주는 자를 국가에서 금단하는 법을 엄중하게 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자수(自首)하게 될 리가 없고, 진고(陳告)하는 사람에게 상(賞)으로 주는 것도 단지 그의 자신까지만 한정을 하여, 진고한 사람이 죽고 나면 국가에서 도로 찾아옵니다. 이러므로 상으로 받은 노비(奴婢)가 만일 도망하게 되면 진고한 사람의 집이 도리어 해를 받는데 누가 달갑게 진고하려 하겠습니까? 국가에서 왜인들과 야인(野人)들을 접대하기에 비용이 매우 많아 온 경상도(慶尙道)의 것으로도 지탱하지 못하므로, 의논하는 사람들이 전라도의 저축을 실어다가 보충하려고 하게 되었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누락된 사람을 모조리 추쇄(推刷)하여 그들의 신공(身貢)773) 을 거두어 그 모자라는 것을 보충한다면 또한 되지 않겠는가 여깁니다. 지금 추쇄하지 못한 자가 무려 10여 만이나 됩니다. 만일 추쇄하려고 하면, 절린(切隣)774)색장(色掌)775) 들은 반드시 알지 못할 리가 없으니, 아울러 사변(徙邊)776) 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는데, 임금이 이르기를,

"정승(政丞)의 말이 옳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의 형편으로 본다면 삼절린(三切隣)777) 이 그 일을 알지도 못하면서 고신(拷訊)을 받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 또한 사변(徙邊)하는 것이 가하겠는가?"

하니, 한명회가 아뢰기를,

"신이 절린(切隣) 및 색장(色掌)들을 반드시 일체 사변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생각에 그렇게 한다면 절린 및 색장들이 서로들 적발하여 진고(陳告)하고, 반드시 용납하여 숨기는 사람이 없으리라고 여깁니다. 국가에서 비록 죄가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또한 사변하도록 하는데, 공·사천을 용납하여 숨긴 자의 절린 및 색장들을 사변하는 것이 어찌 방해롭겠습니까?"

하고, 지사(知事) 이파(李坡)는 아뢰기를,

"한명회의 말이 그럴듯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국가에서는 마땅히 시행할 만한 법을 세워야 하고 시행할 수 없는 것은 마땅히 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삼절린(三切隣)을 사변(徙邊)하는 법은 참혹하고 각박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진(秦)나라 법에 서로 수사 연좌(收司連坐)778)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였다. 한명회가 굳이 청하여 마지 않으므로 임금이 이르기를,

"이 법은 결단코 세울 수 없다. 다만 다른 조문(條文)에 의해 빠짐 없이 추쇄(推刷)하는 일을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의논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170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62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신분-천인(賤人)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호구-이동(移動) / 사법(司法) / 외교-야(野) / 외교-왜(倭)

  • [註 772]
    추쇄(推刷) : 조사하여 찾아냄.
  • [註 773]
    신공(身貢) : 노비(奴妃)가 신역(身役) 대신에 비치던 공물(貢物).
  • [註 774]
    절린(切隣) : 가까운 이웃. 곧 삼절린(三切隣)을 말함.
  • [註 775]
    색장(色掌) : 지방의 고을에서 잡다한 일을 맡은 향리(鄕吏). 대개 각 동리에서 농사를 권장하고 죄인(罪人)을 추고(推考)하고 조세(租稅)와 군역(軍役) 따위를 감독하였음.
  • [註 776]
    사변(徙邊) : 형벌의 한 가지로, 죄인(罪人)을 그 가족과 함께 변방으로 옮겨 살게 하던 일. 전가 사변(全家徙邊)이라 하여 세종(世宗) 때부터 북변(北邊) 개척을 위한 정책의 하나로 실시되었음.
  • [註 777]
    삼절린(三切隣) : 범죄 사건이 났을 때 그 사건이 난 바로 이웃에 사는 세 집을 말함. 사건이 일어나면 연대 책임을 지었음. 삼겨린.
  • [註 778]
    수사 연좌(收司連坐) : 10가(十家)를 한 조(組)로 하여, 그 중의 한 집이 죄가 있을 경우 다른 아홉 집이 고발하게 하여 연대 책임을 지우던 일. 만약 규거(糾擧)치 못할 시는 10가(十家)를 모두 연좌(連坐)시켰음.

○壬寅/御經筵。 講訖, 領事韓明澮啓曰: "公、私賤逃漏者, 國家今方推刷, 但曩者推刷之數, 不過二十萬, 而今則至三十萬。 然今未盡推者, 豈下一十萬乎? 公、私賤容隱者, 國家嚴其禁令, 然無自首之理, 陳告者賞給, 只限己身, 告者身死, 則國家推還。 以故受賞奴婢若逃, 則告者之家, 反受其害, 誰肯樂告乎? 國家待野人, 其費甚多, 以慶尙一道, 而不能支, 議者至有欲輸全羅之儲, 以補之。 臣意以爲: ‘盡刷漏丁, 收其貢, 以補其不足, 不亦可乎? 今之未推刷者, 無慮十餘萬, 若欲刷之, 則切隣及色掌, 必無不知之理, 竝徙邊何如?" 上曰: "政丞之言, 是矣。 然由今觀之, 三切隣不知其事, 而受栲訊者多。 不知者, 亦徙邊, 可乎?" 明澮曰: "臣非欲切隣及色掌, 必須一切徙邊。 臣意以謂 ‘如此, 則切隣及色掌, 爭相告摘, 必無容隱者矣。’ 國家雖無罪者, 亦令徙邊, 公、私賤容隱者之切隣、色掌, 徙邊何妨?" 知事李坡啓曰: "明澮之言, 似然矣。 然國家當立可行之法, 其不可行者, 不當立也。 三切隣徙邊之法, 無乃慘刻乎? 是與法相收司連坐, 何異?" 明澮固請不已, 上曰: "此法, 斷不可立也。 但以他條無遺推刷事, 議于領敦寧以上。"


  • 【태백산사고본】 26책 170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62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신분-천인(賤人)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호구-이동(移動) / 사법(司法) / 외교-야(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