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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66권, 성종 15년 5월 7일 계사 1번째기사 1484년 명 성화(成化) 20년

지평 정이교 등이 사사전의 징세를, 김종직이 유향소 설립을 청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지평(持平) 정이교(鄭以僑)가 아뢰기를,

"지금 공신전(功臣田)·직전(職田)의 세(稅)는 모두 관(官)에서 징수하면서 사사전(寺社田)만은 징수하지 아니하는데, 신(臣)은 사람들이 성상(聖上)께서 중들을 보호함이 사대부(士大夫)보다 지나치다고 할까 염려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중들이 비록 머리를 깎았으나 역시 나의 백성이다. 오직 그 전지만을 바라보며 사는데, 갑자기 징수하게 되면 혹 일어나서 도둑이 될까 염려된다. 또 나는 본시 이단(異端)을 믿지 아니하는데, 누가 중들을 보호한다고 하겠는가?"

하였다. 대사간(大司諫) 유윤겸(柳允謙)이 아뢰기를,

"지금 이미 형편으로 인하여 직전과 공

신전에서 조세를 징수했으니, 사사전(寺社田)도 마땅히 권도로 징수했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좌우(左右)에게 물었다. 영사(領事) 홍응(洪應)이 아뢰기를,

"사사전(寺社田)을 둔 것은 조종조(祖宗朝)의 법이니, 진실로 졸지에 고칠 수는 없습니다. 대간(臺諫)의 말은, 나라의 용도가 족(足)하여질 때까지 임시로 징수하자는 것입니다."

하고, 지사(知事) 허종(許琮)은 말하기를,

"대간(臺諫)의 말은 조짐을 막자는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나는 불교(佛敎)를 좋아하지 아니하는데, 무슨 조짐이 있겠는가?"

하였다. 홍응(洪應)이 말하기를,

"태종(太宗)이 초년(初年)에는 사사전(寺社田)을 혁파하였으나 말년(末年)에 와서는 개경사(開慶寺)를 세웠으므로, 지금 대간의 말은 그 조짐을 염려한 것입니다."

하고, 정이교(鄭以僑)는 말하기를,

"신(臣) 등은 진실로 성상(聖上)께서 불교를 믿지 아니함을 알고 있지만, 다만 소민(小民)들이 주상(主上)께서 불교를 믿는다고 할까 염려되어 그러는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대행 대비(大行大妃)께서 항상 나에게 불교를 믿지 않는다고 원망하였고, 또 나는 직접 유교(遺敎)를 들었으므로 차마 졸지의 개혁을 하지 못한다."

하였다. 우부승지(右副承旨) 김종직(金宗直)이 아뢰기를,

"고려 태조는 여러 고을에 영(令)을 내려 공변되고 청렴한 선비를 뽑아서 향리(鄕吏)들의 불법을 규찰하게 하였으므로 간사한 아전[奸吏]이 저절로 없어졌는데, 5백년 간의 풍화(風化)를 유지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조정에서는 이시애(李施愛)의 난리 후부터 유향소(留鄕所)458) 가 혁파되자 간악한 아전들이 불의를 자행하여서 건국한 지 1백 년도 못되어 풍속이 쇠퇴해졌습니다. 열 집이 사는 마을에도 반드시 충신이 있다고 하는데, 한 고을이 아무리 적다 하나 어찌 한 고을의 착한 선비가 없겠습니까? 청컨대 다시 유향소를 설립하여 향풍(鄕風)을 규찰하게 하소서."

하고, 홍응(洪應)은 말하기를,

"유향소는 고려 때의 사심관(事審官)인데, 다시 세움이 좋을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조정에서 수령(守令)을 가리고자 하여도 오히려 알맞은 자를 얻지 못하는데, 향중(鄕中)을 규찰하는 데 어찌 알맞은 자를 얻기가 쉽겠는가? 시골 풍속이 아름답지 못함은 나라에도 관련이 있으므로 나는 이것을 근심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166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590면
  • 【분류】
    역사-전사(前史) / 왕실-비빈(妃嬪)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재정-전세(田稅) / 재정-국용(國用) / 농업-전제(田制) / 사상-불교(佛敎)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註 458]
    유향소(留鄕所) : 여말 선초(麗末鮮初)에 지방 수령(守令)의 정치를 돕고 백성들의 풍속을 교화(敎化)하기 위해 설치된 지방 자치 기관. 나라의 정령(政令)을 백성에게 전달하고, 향리(鄕吏)의 횡포를 막고, 조세의 부과와 징수를 도와주었음.

○癸巳/御經筵。 講訖, 持平鄭以僑啓曰: "今功臣、職田稅皆官收, 而獨不收寺社田。 臣恐人謂: ‘上護僧徒, 過於士大夫也。’" 上曰: "僧徒雖剃髮, 亦吾民也。 專仰其田, 而遽爾收之, 則慮或起而爲盜。 且予本不崇信異端, 誰謂護僧徒乎?" 大司諫柳允謙啓曰: "今旣以權宜收職田、功臣田, 則寺社田, 亦當權收也。" 上問左右, 領事洪應曰: "置寺社田, 祖宗朝法, 固不可卒改。 臺諫之言, 乃欲限國用周足, 權收耳。" 知事許琮曰: "臺諫之言, 欲杜漸耳。" 上曰: "予不好佛, 有何漸乎?" 洪應曰: "太宗初年, 革寺社田, 晩年乃建開慶寺, 今臺諫之言, 慮其漸也。" 以僑曰: "臣等固知聖上不信佛也。 第恐小民謂主上信佛而然也。" 上曰: "大行大妃, 常恨予之不信佛法, 且予親聞遺敎, 不忍卒改也。" 右副承旨金宗直啓曰: "前朝太祖, 令諸邑擇公廉之士, 審察鄕吏不法, 故奸吏自戢, 五百年間維持風化者以此。 我朝自李施愛煽亂之後, 革罷留鄕所, 奸黠之吏, 恣行不義, 建國未百年, 而風俗衰薄。 十室之邑, 必有忠信, 一鄕雖小, 豈無一鄕之善士乎? 請復建留鄕所, 紏察鄕風。" 洪應曰: "留鄕所, 卽前朝事審官也, 復立爲便。" 上曰: "朝廷欲擇守令, 猶未得其人, 鄕中紏察, 豈易得人乎? 鄕風不美, 有關國家, 予其憂之。"


  • 【태백산사고본】 25책 166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590면
  • 【분류】
    역사-전사(前史) / 왕실-비빈(妃嬪)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재정-전세(田稅) / 재정-국용(國用) / 농업-전제(田制) / 사상-불교(佛敎)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