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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63권, 성종 15년 2월 24일 신사 2번째기사 1484년 명 성화(成化) 20년

홍문관 부제학 이명숭 등이 안암사 중창의 부당함을 아뢰다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이명숭(李命崇) 등이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삼가 듣건대, 귀인(貴人) 권씨(權氏)안암사(安巖寺)를 국도(國都)의 비보(裨補)라 하여 성상께 중창(重創)하기를 청하니, 전하께서는 이를 허락하시고, 또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민전(民田)을 양급(量給)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전하의 지성(至聖)·지명(至明)으로써 이단(異端)의 사악함을 환하게 알고 계시는데, 어찌 복전(福田)의 이익(利益)을 구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 청함을 옳다 하셨겠습니까? 전하의 뜻은 내가 부처를 좋아하지 않으니 비록 이와 같이 하더라도 무엇이 해롭겠느냐고 생각하셨겠습니다마는, 신 등은 유악(帷幄)에서 가까이 모시며 진실로 성심(聖心)의 만분의 일이나마 살피었습니다. 사방(四方)은 넓고 만백성은 많은데, 어찌 연유를 다 알겠습니까? 반드시 전하께서 진심(眞心)으로 부처를 좋아한다 하여 전하를 위해서 사찰을 건립하는 자가 있을 것이며, 전하를 위하여 탑(塔)을 영건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석씨(釋氏)의 공덕지설(功德之說)이 분연(坌然)히 일어날 것이니, 그것이 성덕(聖德)에 누(累)를 끼치고 풍속(風俗)을 무너뜨리고 손상시키는 것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고려(高麗)의 비보(裨補)하는 요술(妖術)은 도(道)가 있는 군자(君子)는 일컫기를 부끄럽게 여긴 것인데, 어찌 다시 성조(聖朝)에 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권씨(權氏)의 청(請)을 마땅히 엄한 말씀으로써 책망하여 싹을 엄하게 끊으심이 옳았는데도, 전하께서는 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 민전(民田)을 취하여 주시었습니다. 이것은 전하께서 친히 스스로 영건하심과 다름이 없으므로, 비록 진심(眞心)으로 부처를 좋아하신다고 이르더라도 또한 지나친 것이 되지 않습니다. 대저 민전(民田)은 민생(民生)의 의식(衣食)의 믿바탕인데, 어찌 백성의 의식(衣食)의 밑천을 빼앗아서 쓸모없는 사사(寺社)를 영건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의 행동은 반드시 기록하여야 하는데, 기록한 것이 본받지 못할 것이면 후손이 무엇을 보겠습니까? 원컨대 깊이 생각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제 차자(箚子)를 보니 가소(可笑)롭다. 옛 터에 중창(重創)한다는 것은 《대전(大典)》에 실려 있는데, 어찌 안암사(安巖寺)만 불가하다는 것이냐? 또 옛 터 안을 경작하여 개간한 지 겨우 3, 4년인데, 그것을 빼앗아서 돌려준 것이 무슨 해(害)가 있느냐?"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163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57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비빈(妃嬪) / 사상-불교(佛敎) / 농업-전제(田制) / 건설-건축(建築)

○弘文館副提學李命崇等上箚子曰:

伏聞, 貴人權氏, 以安巖寺爲國都裨補, 請爲上重創, 殿下許之, 又命有司, 量給民田。 以殿下至聖至明, 於異端之邪, 固已洞照矣, 豈有求福田利益之心, 而可其請哉? 殿下之意, 以爲 ‘我不好佛, 雖如此, 何害?’ 臣等昵侍帷幄, 固已窺聖心之萬一矣。 四方之廣, 萬民之衆, 何由盡知? 必以殿下爲眞心好佛, 爲殿下建刹者有之, 爲殿下營塔者有之。 釋氏功德之說, 坌然而起, 其於忝累聖德, 敗傷風俗, 不爲少矣。 況高麗裨補之妖術, 有道君子之所羞稱, 豈可復行於聖朝乎? 殿下於權氏之請, 嘗以嚴辭責之, 痛絶萌芽, 可也, 而殿下不徒聽之, 又取民田以給。 是無異於殿下親自營建, 雖謂眞心好佛, 亦未爲過也。 夫民田, 民生衣食之資, 豈可奪民衣食之資, 以營無用之寺社乎? 君擧必書, 書而不法, 後嗣何觀? 願留三思。

傳曰: "今見箚子, 可笑。 古基重創, 載在《大典》, 何獨於安巖寺不可乎? 且古基內耕墾, 僅三四年, 其奪而還給, 何有害乎?


  • 【태백산사고본】 25책 163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0책 57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비빈(妃嬪) / 사상-불교(佛敎) / 농업-전제(田制) / 건설-건축(建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