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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163권, 성종 15년 2월 12일 기사 3번째기사 1484년 명 성화(成化) 20년

태조·태종의 도서(圖書)를 위조한 주지승 지성 등의 처벌을 논의하다

형조(刑曹)에서 개성부(開城府)의 계본(啓本)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화장사 주지승(華莊寺住持僧) 지성(至誠)이 권문(勸文)을 지으려고 하였으나, 문자를 해득하기가 어려워서 슬그머니 중 상명(尙明)에게 청하였더니, 상명(尙明)이 중 의철(義哲)의 권문(勸文)을 훔치었습니다. 그 글에 효령 대군(孝寧大君)·송씨(宋氏)·이씨(李氏)의 도서(圖書)가 있어 상명(尙明)이 본떠서 지성(至誠)에게 주었더니, 지성이 말하기를, ‘매우 아름다우나, 군상(君上)의 도서(圖書)가 아니라서 백성에게 신임을 얻기에 부족하니, 청컨대 나를 위하여 다시 모사(摹寫)하여 주게.’ 하므로, 이에 태조(太祖)·태종(太宗)을 종이 말미에 열서(列書)하고 효령 대군(孝寧大君)의 도서(圖書)를 그 아래에 찍어서 지성(至誠)에게 부쳐 학선(學禪)·죽변(竹辨) 두 중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일이 발각되어 지성을 고문(拷問)하니, 지성이 말하기를, ‘이것은 바로 상명(尙明)이 한 것입니다.’ 하여, 상명을 국문하니, 상명이 말하기를, ‘나는 지성(至誠)의 청(請)에 따라 의철(義哲)의 권문(勸文)을 훔치어 위조(僞造)하였습니다.’라고 하여, 또 의철을 국문하였더니, 의철이 말하기를, ‘나는 처음에 권문(勸文)을 신선(信仙)에게서 얻었는데, 그것이 위조(僞造)임을 알고 일이 발각되었음을 듣고는 즉시 불태워 버렸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명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의논하게 하였다. 정창손(鄭昌孫)·윤필상(尹弼商)·홍응(洪應)·노사신(盧思愼)은 의논하기를,

"지성(至誠) 등이 어보(御寶)를 위조(僞造)한 것은 강상(綱常)에 관계되니, 비록 사유(赦宥)를 경과하였더라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심회(沈澮)는 의논하기를,

"마땅히 주범과 종범을 분간하여 중전(重典)으로 처치(處置)하소서."

하고, 이극배(李克培)는 의논하기를,

"지성(至誠)이 범(犯)한 것은 사유(赦宥) 전에 있었고, 율(律)의 정조(正條)가 없으니, 비율(比律)202) 하여 참형(斬刑)에 처하는 것은 적당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고, 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의철(義哲) 등이 공초(供招)한 바는 지성(至誠)을 주범으로 삼는데, 계목(啓目)에는 의철을 주범으로 삼았으니, 다시 주범과 종범을 분간하게 하여서 율문(律文)에 의하여 논정(論定)함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또 승정원(承政院)에 물으니,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상명(尙明)신선(信仙)은 이미 죽었습니다. 의철(義哲)은 비록 신선(信仙)을 인하여 위조하였다 하나 그 도서(圖書)는 바로 효령 대군(孝寧大君)의 도서(圖書)이니, 죄가 죽는 데에 이르지 않으며, 죽변(竹辨)은 비록 위조(僞造)임을 알았더라도 또한 함께 모의(謀議)한 것이 아니고 다만 학선(學禪)과 더불어 권선문(勸善文)을 나누어 받았을 따름이니, 그 죄가 또한 죽는 데에 이르지 않습니다. 지성(至誠)과 같은 자는 군상(君上)의 도서(圖書)를 위조하였으니, 죽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자, 전교하기를,

"승정원에서 아뢴 것이 매우 마땅하다. 그러나 군상(君上)의 도서(圖書)를 위조(僞造)한 예(例)가 아니니, 사형을 감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승정원(承政院)에서 또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진실로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를 죽이지 않으면 뒤에 다시 이와 같은자가 있을 것이니,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 계교함이 백성들을 속여서 생계의 이로움을 자뢰하고자 함에 불과할 뿐이다. 죄의유경(罪疑惟經)203) 이라 하였으니, 사형을 감하는 것으로 논(論)하고, 나머지 중은 주범과 종범을 분간하여 과죄(科罪)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16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567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출판-인쇄(印刷) / 사상-불교(佛敎)

  • [註 202]
    비율(比律) : 죄에 맞는 정조(正條)가 없을 때 비슷한 조문을 비의(比擬)함. 조선조의 형사 제도는 원칙적으로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였으나, 법 조문에 기재된 내용이 사리를 다하지 못하였거나 죄를 결정할 조문이 없을 때에는 비슷한 조문에 의거(依據)할 수 있었음. 인율비부(引律比附).
  • [註 203]
    죄의유경(罪疑惟經) : 죄상이 분명하지 않아 경중(輕重)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에는 가볍게 처분(處分)함을 말함.

○刑曹據開城府啓本啓: "華莊寺住持僧至誠, 欲造勸文, 而苦不解文, 陰請於僧尙明, 尙明竊僧義哲勸文。 其文有孝寧大君宋氏李氏圖書, 尙明摹之, 以與至誠至誠曰: ‘甚佳。 然非君上圖書, 不足以取信於民。 請爲我更造。’ 於是列書太祖太宗于紙尾, 着孝寧大君圖書於其下, 付至誠, 分與學禪竹辨兩僧。 及事覺, 栲問至誠, 至誠曰: ‘此乃尙明所爲。’ 問尙明, 尙明曰: ‘我從至誠之請, 竊義哲勸文, 僞造。’ 又問義哲, 義哲曰: ‘我初得勸文於信仙, 知其僞造, 故聞事發, 卽焚之。’" 命議于領敦寧以上。 鄭昌孫尹弼商洪應盧思愼議: "至誠等僞造御寶, 關係綱常, 雖經赦, 不可蒙宥。" 沈澮議: "宜分首、從, 置之重典。" 李克培議: "至誠所犯, 在赦前, 律無正條, 比律處斬, 似乎未安。" 尹壕議: "義哲等所供, 以至誠爲首, 啓目則以義哲爲首, 更令分首、從, 依律文, 論定何如?" 又問于承政院, 政院啓曰: "尙明信仙則已死矣。 義哲雖因信仙僞造, 然其圖書乃孝寧大君圖書, 罪不至死。 竹辨雖知僞造, 亦非同謀, 但與學禪, 分受勸善而已, 其罪亦不至死。 若至誠, 則僞造君上圖書, 不可不誅。" 傳曰: "政院所啓, 甚當。 然非僞造君上圖書之例, 減死何如?" 承政院又啓曰: "上敎允當。 然此而不誅, 後復有如此者矣, 不可不懲。" 傳曰: "其計不過誣民, 欲資生利耳。 罪疑惟輕, 其減死論, 餘僧分首、從, 科罪。"


  • 【태백산사고본】 25책 16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10책 567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출판-인쇄(印刷) / 사상-불교(佛敎)